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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상사람들의 삶을 말하다(46)-하

물과 우리생활
웅상뉴스 기자 / 입력 : 2018년 05월 27일
<지난호에 이어> 물 때문에 이웃간에 화합의 요인도 되지만 어려운 사이가 되는 수도 있었다. 가뭄이 오면 자기논에 서로 물을 많이 대기 위하여 갖가지 수를 쓴다. 보도랑 물을 서로 잘 나누어 갈 수 있는 물고를 조정해 두었다. 한밤중이나 아무도 보지 않는 틈을 이용해 물을 자기 논으로 다 들어갈 수 있도록 하거나 자기 논 쪽으로 더 많이 들어갈 수 있도록 조정하기도 한다.

성질이 거칠고 힘센 사람은 완력으로 상대를 제압해 자기 논에 물을 독차지하기도 한다. 아무리 욕심이 없는 사람도 논이 말라가는 지경을 보고 물 욕심을 내지 않는 농사꾼은 없다. 홀로 된 미망인들은 기와 힘에 밀려 악을 다해 물을 대려고 하지만 남자들은 약한 여자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많아 어떤 여자분은 물수통 근처에서 나체로 하루 종일 물에 들어가 목욕을 하면 남자들이 얼씬도 못하는 극한적인 방법으로 물을 자기 논에 대려고 애를 태웠다.

가뭄이 오면 논이 말라 거북등처럼 금이 가고 벼가 말라 털어지는 현상이 온다. 골짝논은 생각할 수도 없지만 넓은들 논에서는 가뭄이 오면 경작자 중에서 책임자를 지정하여 논마다 순서를 정하여 차례대로 물을 댄다 이를 구불디라고 했다.

지역에 물관계로 문제가 발생하여 필자가 직접 관여한 일이 몇 가지가 있다. 낙동강 물을 회야댐으로 인수하기 위하여 지하에 관로공사를 했다. 이로 인하여 몇 백년간 농사를 지어오면서 단 한번도 마른 적이 없는 구능지시비기가 다 말라 버리고 골짜기에 내려오는 물마저 엄청 줄어들게 되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수자원공사와 양산군에 해결책을 강구해 달라는 진정서를 여러 차례 제출하였지만 관로공사와는 하등에 관계가 없다는 문서만 보내오고 피해농민들을 걱정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공무원의 자세가 자기책임만 회피하면 된다는 의식이 한탄스럽다.
수자원 공사 울산지사를 방문하고 수자원공사 본사를 방문하여 항의하고 숙식에 필요한 솥과 그릇, 쌀, 이불을 챙겨들고 10여명 노인들을 모시고 가서 수자원 공사 사장실 입구에서 밥을 지어먹고 이틀간 잠자리까지 하는 투쟁을 했다. 그때서야 수자원공사 사장이 관로공사 피해가 확실하다면 대책을 마련해 주겠다는 협상을 하고 1983년 3월부터 10월까지 한달에 2회씩 수자원공사 담당직원과 경작자 대표에 필자가 선발되어 관련들의 수량변화를 조사하여 수자원 공사에서는 관로공사로 인한 갈수현상임을 인정하고 수자원공사에서 명동피해지역 갈밭골, 머구밭골, 마산밭들 일부, 솔밭골에 피해보상금 2억5천만원의 보상을 받아 농로개설, 전기시설을 하고 지하수를 10여곳에 굴착하여 논마다 관로를 매설하여 스위치만 켜면 논마다 물을 될 수 있는 시설을 했다. 당시 피해농지일대 평균지가는 7000원 정도였다. 당시 2억5천만원은 인근농지 3,500평을 매입할 수 있는 금액이다.

지금은 해당농지 대부분이 토지구획정리에 포함되어 대지가 되고 7번 우회국도에 편입되고 일부 남은 농지는 당시 굴착했던 지하수로 농사를 짓고 있다.

1985년 7번국도를 2차선에서 4차선 확장공사를 할시 국도변 벌들 농업용수공급 물도랑 위치가 이동개설되어 이도랑을 타고 들어오는 농업용수는 회야강물이었는데 당시 회야강물은 제지공장 어분사료공장 아교공장에서 정수과정 없이 바로 강으로 방류하여 강물이 극도로 오염된 상태였다. 이 물이 명곡소정마을 30여 세대 집집마다 있는 우물에 스며들어 식수와 생활용수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당시 우물의 깊이는 15m~20m 정도였는데 주변의 토양층은 하천변이라 지하 2m 정도부터 자갈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30m이하는 암반층으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보도랑 물이 우물에 그대로 스며들었던 것이다.

우물물의 색깔도 혼탁하고 악취가 나 도저히 식수로 사용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부산지방국도 관리청을 여러 차례 방문해 항의를 하고 대책마련을 요구하였지만 도로확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우물에 보도랑 물이 스며들어온 것이 아니라 회야강물이 스며들었다는 주장을 계속했다.

회야강 바닥은 우물보다 더 아래에 있다는 증명을 제출하고 우물을 그릇에 담아 부산지방
국도 관리청에 가서 관리청장에게 이 물을 당신이 마시면 우리도 이 물을 먹고 살겠다 하며 물을 마시라고 하니 혼탁하고 악취가 나는 물을 마시지 못하고 현지를 청장이 직접 방문하여 집집마다 우물물을 확인하고 국도관리청에서 지하수를 굴착하여 집집마다 공급시설을 하여 식수해결을 하였다. 10여년간 사용하다 명곡마을 간이 상수도 시설로 교체할 시에도 국도관리청에서 해준 시설을 이용하였다.

웅상에는 아직 마을 간이 상수도를 이용하는 마을이 평산,매곡,주진,명동,주남,신흥,백동,용당들 자연마을 대다수가 마을 간이 상수도를 사용하고 있고, 시상수도가 아니면 대책이 없는 아파트에는 시상수도를 이용하고 있다. 아파트에도 아직 마을 간이 상수도를 이용하는 마을도 있다. 새진흥4차, 원진, 대동아파트에는 지하수를 굴착하여 마을자체 상수도를 이용하고 있다. 시상수도 관로가 마을마다 들어와 있어 시상수도 신청만 하면 설치가 가능하지만 마을 간이 상수도를 이용하는 주민들은 대다수가 시상수도 이용하기를 기피한다.

시상수도 설치 비용도 만만찮고 상수도 사용료가 마을간이 상수도보다 엄청 비싸다. 그보다 시상수도에도 대한 애정이 없다. 마을 상수도는 깊은 산중에서 오염이라고 없는 물이지만 웅상에 공급되는 시상수원은 전적 낙동강물이다. 시에서는 과학적으로 정수된 물이라 최고급 물이라고 하지만 시민들의 정서는 낙동강물을 아무리 정수해도 낙동강물이고, 정수과정에 투여되는 각종 화학물질에 대한 거부반응을 가지고 있다.

식량보다 식수가 더 소중하다. 천성산 너머 양산시민들은 밀양댐물을 마시고 웅상주민들은 같은 물 값을 부담하고 전적 낙동강물을 마신다. 생명탄생과 유지의 원천인 식수공급에도 차별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기본권중에 기본권을 하대받는 것이다. 웅상주민도 좋은 물을 먹을 권리가 있다. 웅상주민의 식수 공급대책에 특단의 획기적인 방법이 강구되어야 함은 웅상주민의 당연한 권리이고 양산시 지도자의 절대적 사명이다.

우리지역과 물과 관련된 사안중 가장 지역의 큰 영향을 미친 사안은 회야댐과 관련된 사안이다. 1981년 건설부로부터 사업인가를 받아 ADB차관 자금으로 1982년 12월 31일 착공하여 1986년 5월 14일 울산시민의 식수원 공급을 위해 건립준공된 회야댐으로 인해 1986년 7월 20일 건설부 312조에 의거 회야댐 상류지역인 웅촌면 지역, 웅상지역, 용당일대가 환경보존지역으로 지정됨을 알게 되었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회야강 하류지역에 울산시민 식수공급을 위한 댐 건설을 착공할 때도 착공이 완료될 때까지 우리지역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인양하고 남의 마을 불구경하는 격으로 보고 있다.

막상 용당일원에 건축건립 신고를 하고 보니 환경보존지역으로 지정되어 건축물 건립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발등에 불이 떨어져 뜨겁다는 느낌을 안 이후에 큰일이 생겼다는 긴박감을 가지게 되어 웅촌면과 합세하여 웅촌면 해제 추진위원장은 석천에 거주하고 이후 울주군의원으로 재임했던 이동석이 맡았고, 웅상 해제추진위원장에는 이후 경상남도 도의원 이었던 박봉수가 추진위원장을 맡게 되었다. 추진과정에 확인 된 정말 경악스러운 일은 댐건설 계획과 건립과정과 환경보존지역 지정과정에 여러 차례 주민설명회와 공청회를 개최했다는 문서가 제출되었다는 사실이다.

지역의 최고유지라고 평생 양지만 찾아다니며 힘주고 다니며 힘 있는 자와 결탁하여 자기 이권을 챙기는 몇몇 사람들과 멋모르고 따라 다니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참여했다는 서명한 서류를 발견하게 되었고, 댐건설 이전부터 연차적으로 웅상 전지역을 환경보존지역으로 지정하고 차후 웅상 전지역을 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할 계획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더욱 경악스러운 일은 당시 관계공무원이 우리지역 출신이였다는 사실이다. 당시 관계 공무원은 설명회도 공정회도 하지 않고 이에 참석했다고 서명한 지역 유지인사들을 웅상을 걱정해온 현재 60중반 이상된 분들은 다아는 사실이다.

굳이 거명을 하지 않는다. 해지 추진과정을 이야기 하자면 한권의 책으로 서술해도 부족할 것이다. 해지추진과정 회의 장소마저도 행정관청에서 하지 못하게하여 당시 필자는 웅상농협조합장에 2선으로 당선되었을 때였다. 모임이 단결되도록 주선하고 모임 장소를 웅상농협 회의실에서 하도록 자리 제공을 하고 차와 식사대접을 농협에서 감당하고 상당부분의 경비를 개인적으로 부담했다.

농협조합장 3선을 하면서 가장 보람된 일은 환경보존 해제 추진에 불씨노릇을 하고 불소시게 역할을 했던 일이 자랑스럽고 보람된 일이다. 공인이 시위의 막후에서 중심이 되어 추진하고 있다하여 권력기관의 노골적인 압력을 받았고 이로 인하여 검찰, 경찰에도 여러차례 출석명령을 받고 해제추진과정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농협업무로 압력을 가해왔다. 농협조합장을 사임할 각오와 구속될 각오를 하고 추진에 참여했다.

필자만 그런 자세로 임한 것이 아니라 당시 해제운동에 앞장선 분들은 모두 그런 자세로 임했다. 추진과정에 소요된 경비는 오천여만원을 주민자진 협찬에 의하여 모금했다. 필자도 힘에 겨운 협찬을 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과도한 금액을 협찬한 것이 아니라 조합장 선거를 하게되면 많은 경비가 소요되는게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논1,000평을 평당 10,000원에 처분하여 천만원을 조합장 선거운동에 사용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으나 경선자가 없어 무투표로 당선되어 선거비용을 사용하지 않았기에 지역민들에게 꼭 필요한 곳에 사용하리라 했는데 같은 시기에 환경보존지역 해제란 태산을 들어 옮겨야하는 과제가 지역에 발생하여 준비중인 천만원 중 오백만원으로 땅 500평을 평당 10,000원에 매수하고 나머지 500만원은 추진경비로 주민중 제일 먼저 협찬했다.

이와 같은 금액을 협찬한 분은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소남에 거주하였고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이었던 차정웅이 협찬했고 동부산컨트리에서 확실한 금액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500만원 협찬한 것으로 기억된다. 이외 금액은 다수 주민들이 자진하여 백만원에서부터 5천원을 협찬한 분도 있다. 경비를 언급하는 것은 그때당시 토지가격과 지금의 토지가격을 비교하고저 함이다.
만약 그때 환경보존지역이 해제되지 않았다면 웅상은 농촌상태로 그대로 보존되었을 것이다. 당시 만원에 구입했던 인근토지 매매가격이 지금은 평당 200-300만원 거래되고 있다. 이를 기준해도 웅상지가는 당시 보다 200-300배 상승했다. 그때 소요된 경비 오천만원을 당시 땅면적을 현재 환산하면 100억원에서 150억원 가량된다. 이런 금액을 지역현안 문제로 지금 모금이 가능할지 자신이 없다. 그때보다 더 많이 배우고 더 큰 부자들이 많은 지역이 되었는데 과연 지역이 바로 발전하고 있는 것인지 대답하기가 어렵다.

물 해결 문제로 김혁규 도지사는 명곡마을에 직접 2번이나 방문했다. 자기가 도지사 취임한 이래로 도지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한마을에 2번 방문한 것은 유일하게 명곡마을 뿐이라고 했다. 1995년경 평산 봉우 태원 아파트 일대에 지하수를 굴착하여 식수 및 생활용수로 이용하다 인근에 아파트가 건립되고 신설아파트마다 기존 아파트 보다 더 깊이 굴착하여 한정된 지하수는 고갈되어 인근 아파트에 물난리를 당했다. 고층 건물에 물이 없다고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주민들의 생활은 전쟁난민 수용소 보다 어려운 생활을 해야만 했다.

식수는 길러다 먹는다 해도 집집마다 수세식 변소에 용변도 보지 못하는 이런 비극의 난리가 어디있는가 당시 도의원이였던 박봉수가 주축이 되어 지역민들과 협력하여 청와대부터 중앙관계부처마다 방문하고 갖은 방법을 연구, 제시하다 최종적인 방법은 명곡 시명골 저수지물을 일시 아파트까지 인수공급하고 명곡 시명골 저수지 몽리농지 절대농지를 주거지역으로 지정해 달라는 건의를 양산군에 하니 정신병자취급을 하고 양산군에서는 서류도 접수 받지 않았다.

청와대 영남담당관도 아파트와 시명골 저수지를 방문하고 도지사는 경상남도에 지정되어 있는 절대농지 면적을 시명골 저수지 몽리면적 만큼 확보하기 위하여 서부경남 모 지역 상대농지에 경지 정리를 해주고 저수지를 건설하여 절대농지로 변경지정하고 시명골 저수지 몽리답을 주거지역으로 지정하는 계획을 하고 아파트에 공급할 제반시설 공사를 실시함과 동시에 관계부처란 부처마다 문턱이 닳도록 방문하였다. 추진과정에 수고한 분들을 열거하자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대충 열거하면 봉우, 태원아파트 김종식 운영위원장과 주민, 명곡저수지 몽리민, 당시 현직에 있었던 공무원은 김혁규 도지사, 강길부 건설부 차관(울산 울주 상북 출신), 현,국회의원 김태수 농수산부 차관(웅촌 출신), 안광기 국무총리 비서관(이사관 주남 출신), 농수산부 신현관 서기관(편들 출신 현,농협중앙회 상무이사), 나오연 국회의원, 김진만 시의원, 이부건 한나라당 경남도당 부위원장 등 이외분도 많다.

명곡 시명골 저수지 몽리지역의 농지는 모두 주거지역으로 지정되어 지금은 아파트가 즐비하고 계속 대형건물들이 건립중에 있다. 1998년 웅상 정수장이 준공 가동되어 아파트에 정수장물을 공급하고 시명골 저수지 물은 중단하였다. 추진과정에 소요된 경비도 엄청나게 소요되었다. 여러 명이 한 두번도 아니고 여러 차례 서울등지로 오고간 경비와 숙식비만 해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소요되었다. 필자도 처음부터 끝까지 동참했기에 추진과정을 너무 소상하게 알고 상당부분의 경비도 감당했다. 지금유지라 어깨 힘주고 다니는 웅상 젊은이들 중 지역 현안문제로 자기 사비로 중앙부처에 방문하여 지역의 어려움을 해결 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걱정스럽다.

많이 배우고 똑똑한 사람은 자꾸만 많아 저 가는데 지역을 가슴으로 사랑하는 이는 귀하고 입으로만 사랑하는 이가 많아 저 가는 현상이다.<끝>
↑↑ 박극수
시인
(현)양산문화원 이사
양산시 향토문화연구회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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