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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떠나다(35) /몽골 여행13, 허르헉을 먹다

강명숙 시인 / 글과 사진
웅상뉴스 기자 / 입력 : 2024년 05월 02일

ⓒ 웅상뉴스(웅상신문)
봄인가 했더니 겨울 끄트머리보다 오히려 기온이 낮아 꽃피는 시기가 예상을 빗나갔다. 그 바람에 개화가 늦어 지역마다 펼치는 꽃축제가 갈팡질팡했다. 그러더니 며칠 만에 한낮 기온이 30C°를 기록하는 때아닌 초여름 더위로 당황하게 만들기도 한다. 들쭉날쭉한 일기 속에서도 봄꽃들은 피어 향연을 즐긴다. 나무들이 숲으로 자라는 사이 산에는 아직 남은 산벚나무가 봄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그마저 지고 나면 숲이 싱그러워지는 계절이 된다. 오월의 숲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리의 오월을 닮은 몽골의 유월 여행은 이제 일정의 끝을 향하고 있다.


유월의 하순, 초원에서 떠돈 지 하마 열흘이 흘렀다. 풀잎 위에서 잠들고 하늘을 이불 삼은 여행이 끝자락을 보이고 있다. 밤하늘의 별자리에서 북두칠성 첫 별이자 큰곰자리 알파성인 두베(Dubhe)를 찾는 즐거움과 행복도 접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간간이 빗금을 그으며 내리는 살별도 이젠 만나지 못하리라. 오늘의 아쉬움이 몽골을 떠난 후에는 긴 그리움으로 남을 것이다.

딸아이가 가르치고 있는 과의 한 학생(체기) 부모가 우리 일행을 초대했다. 유목민이라 게르를 찾아 자릉유스는 달렸고 한 시간쯤 지나 게르를 찾았다. 진정 인간 GPS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허로운 벌판에 길을 만들어 가며 달려 정확히 목적지를 찾아내는 일은 초원을 떠도는 시간 내내 경이로웠다. 게르에 도착하니 양 한 마리가 땅에 누워 있었다. 아마 양을 도축할 모양이었다. 그 자리를 피해 풀밭을 거닐다 왔더니 양피를 벗기고 있었다. 피 한 방울 흔적도 없이 도축하고 양피를 벗기고 있는 작업이 신기롭기도 했지만, 희생된 양에게 미안함도 가졌다.
ⓒ 웅상뉴스(웅상신문)
 
구덩이에 불이 지펴지고 불구덩이에 큼직한 몽돌을 넣어 달구었다. 한쪽에서는 감자, 당근, 양파 등의 채소를 손질했다. 채소라고 해야 짧은 재배 기간 탓에 감자는 우리 밥상에 오르는 조림 감자만 하고 당근은 손가락 보다 조금 더 굵은 것이다. 자흐(시장)에 가면 중국에서 들여온 좋은 채소들이 있지만, 역사적 감정 때문인지 몽골에서 생산된 채소가 질이 떨어져도 중국 상품을 ‘호짜(중국을 낮추어 일컫는 말이라 했다)’ 라 하여 잘 안 사 먹는다 하였다. 잠시 후 애니메이션 영화 <프란다스의개> 파트랴슈가 끌던 수레의 우유 통 닮은 스테인리스 통이 불구덩이 옆에 자리 했다. 그리고 도막나 손질 된 양고기와 채소 그리고 불에 달군 몽돌을 스텐레스 통에 켜켜이 넣고 뚜껑을 덮어 몽돌의 열기로 음식을 익혔다. 바로 허르헉이다.
ⓒ 웅상뉴스(웅상신문)

그때였다. 트럭 한 대가 우리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차량 적재함을 덮고 있던 비닐 덮개를 걷으니 한 무리의 청년들이 적재함에 타고 있다. 다르항 대학의 학생들이 MT를 다녀오는 길이라 했다. 참가 학생들을 각자의 집으로 데려다 주는 중인 듯했다. 음식을 만들던 사람들이 학생 모두를 차에서 내리게 했다.

1시간 남짓 지났을까. 스텐레인스통 뚜껑을 열고 내용물을 큰 대야에 쏟았다. 체기 아버지가 당신의 자식을 가르치는 선생의 어머니라고 나에게 큼직한 갈비를 먼저 권했다. 가만 보니 몽골 현지인들은 고기보다 기름을 먹어 반질반질한 몽돌부터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뜨거운 돌을 서로 돌려가며 만졌다. 몽골인들은 이런 행위를 하며 건강을 비는 것이라 했다. 

나는 양고기에 익숙하지 않아 주변 눈치를 살피며 슬그머니 갈비를 내려놓고 말았지만, 그 따스한 마음은 아직 내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
몽골의 역사지를 탐방 여행 하였다는 대학생을 실은 트럭이 떠났다. 허르헉을 먹은 우리 일행도 그 자리를 떴다. 나에게도 초원의 꽃과 나무와 독수리와 밤하늘의 별과 이별을 고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걷다가 죽고 싶다/ 때로 한 줄 유언은 오랜 꿈보다 멀고// 고원을 떠도는 발자국들이 다른 무리를 만났을 때 꼭 건네는 질문이 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향하는 길이지, 왜 이 길을 택했지/ 바람의 무리도 없이 걷고 또 걷는 자신 스스로를 질문한다/ 풍경을 빌려 떠도는 동안에도 재차 묻는다는 건 더 이상 묻지 않아도 된다는 뜻// 고원의 후면(後面), 그늘에 고여 있을 바람/ 어떤 발자국도 되돌아가지 못하므로 길은 끝이 없고// 어디쯤 할 일을 마치고 누운 말 한 마리를 본 적 있다 허공의 묘지기, 독수리가 파먹은 텅 빈 눈 속으로 내리던 눈(雪)/ 안 보이는 검은 눈에 박히던 적막, 펄럭이던 말갈기만 바람을 불러왔다/ 흰 눈을 이불처럼 덮고 잠들었지/ 언젠가 고삐를 놓아 떠나보냈던 그 말이 맞기를, 아니기를// 걷다가 쓰러질 발자국을 떠올린다/맴돌던 검은 날개가 접히고 목 쉰 묘지기의 배웅 너머 텅빈 눈 속으로 내리는 눈(雪)/ 그늘에 얼어붙은 적막, 남은 몇 올 눈썹만 바람을 부리겠다/ 언젠가 언 손등에 입김으로 쓴
 언이 완성되지 않기를, 되기를/ 흰 눈을 수의처럼 덮고 잠들겠지// 눈썹이 불러올 먼 곳의 바람/ 빈 동공으로라도 닿고 싶은, 행선지 쪽으로 부는

- 이은규 詩 [고경(高景)] 전문 <문학동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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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명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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