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24-05-17 오후 12:51:21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뉴스 > 특집

서창시장과 덕계시장의 변천(44)-상


웅상뉴스 기자 / 입력 : 2018년 03월 13일
원시농경생활에서 농산물의 잉여와 생필품의 수요에 따라 상호 물물교환이 이루어지게 되면서 상거래는 이루어졌다.

국가가 형성되고 왕도와 지방관위가 발담함에 따라 정기 시장인 장시가 발전하게 되어 시장 시전에 불하하여 팔도록 한 것이 상업의 시초가 되었으며 지역간의 장시를 연결하여 도모하게 한 것이 보부상이다.

보상은 봇짐장사 부상은 등짐장사라 불리었는데 이를 보부상 조직으로 혜상공국 상무사가 있었는데 이 조직에는 대표로서 접장 실무담당원으로 공원 집사 등이 있었다.
이 장시가 점차 상설화 됨에 따라 이 상설시장을 중심으로 상업도시로 발달하게 되었다.
웅상에 시장이 형성된 유래도 타 지역과 유사하게 발달과정을 답습하면서 발전해왔다.

울산읍지에 의하면 서창시장은 조선시대 현종 10년(1669년) 울산 부사 류지립이 창건하였다 하며, 1960년대까지는 울산과 동래사이에는 서창시장밖에 없었다. 장이라 함은 우리가 흔히 부르는 장시를 말함인데 상인 또는 가까이 주민들이 정해진 날짜에 일정한 곳에 모여 물건을 팔고 사고 하는 곳을 뜻하는 것이다. 조선초기까지 한성에서만 장이 서게 되었으나 이러한 장이 각지에 확대되어 중종 명종때에 이르러 충청 전라 경상 각지에서도 열리게 되었으나 구매력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의 5일시장과 같이 5일마다 정한 날짜에 한번씩 열리게 되었다. 서창장은 처음 열게된 4일 9일이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다. 1900년경 울산지방의 장은 울산읍장, 병영장, 내황장(반구동내황마을), 한티장(대현장), 목도장, 민등장(서생), 남창장, 서창장, 서생장이 있었다.

서창시장은 개장이 되고 1930년경까지는 장소만 정해놓고 골목길에서 이루어 지던 시장을 김석기면장이 주민들을 설득해 부지를 확보하여 시전에서 전근대적인 상거래의 시장을 형성했고 일정말기에 송석무면장과 문치선면장이 추가로 부지를 확장했다. 그후 여러차례 시장시설물이 개조 증축되었다. 시장부지 조성 및 형성과정을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대다수부지는 주민들의 희사에 의하여 이루어 졌다고 한다. 희사를 받고도 그간 부지에 대한 이전등기를 받아오지 않은 부분이 있어 1990년경 서창시장 부지내 이전등기 되지 않은 토지의 후손들이 권리 주장을 하여 토지반환소송을 하여 법정으로 비화되었다.

서창장에서 가장 많이 거래된 품목은 쌀과 보리쌀이었고 우시장에서는 소와 염소등 가축등이 매매되었고 웅상지역의 주소득원은 쌀과 보리쌀이었고 가계비중의 많은 영향을 차지했던 부분은 농우사육이었다. 소를 가축으로 사육한 시기는 신라 초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소는 가축이라는 개념보다 가족이란 개념으로 사육했다. 경운기가 보급되기 이전인 1970년경까지는 논밭갈이 작업은 전적으로 소에 의존해 갈이를 했고 무거운 짐 운반도 소에 의존했다. 장정 몇 사람의 힘을 가진 소가 어린아이에게도 고분고분하며 농사일이나 힘을 써야 할때는 있는 힘을 다해 사람에게 충성한다. 소는 우리나라 농촌 역사를 같이 해왔다. 소는 일생을 사람을 위해 헌신하고 죽어가면서도 몸뚱이 전체를 인간 생활을 위해 바친다. 쌀과 보리는 인간생명을 연명하는 가장 기본된 식량이었고 보릿고개가 있던 시대까지 농촌 주민들의 공통된 소망은 보릿고개를 무너터리고 한여름 흰쌀밥 먹는 것이 소망이었다.

서창시장의 가장 많은 매출금액도 쌀과 보리쌀이었고 다음으로 소의 매매 금액이었다. 쌀과 보리쌀과 잡곡 등 양곡을 매매하는 시전이 시장의 면적을 가장 많이 차지했고, 소를 팔고 사는 우시장은 시장근처 별개지역에서 이루어졌다. 서창우시장은 삼호리 468번지에서 자리하고 있다 1969년경 삼호리 620번지 일대 토지소유자 이영만이 자기 소유토지 약400평을 양산군에 증여해 우시장을 이전하게 되었다.

10여년간 이곳에서 우시장이 활기를 띠고 매매가 형성되었다. 우시장으로 인해 근처 식당이나 다른 가게도 성시를 이루었다. 농가 집집마다 먹이던 농우는 농기계로 대신하고 정부의 농정실패로 축산농가들이 한때 도산하는 지경에 이르러 한두마리 사육하던 농가는 사육을 포기하고 전문성을 가진 대량사육 농가들이 사육하는 비육우는 도축장에 직접 출하하고 번식우는 상인들이 농가를 방문하여 찾아다니며 거래를 한다. 현재 양산에는 우시장이 없어지고 인근 울산 축협에서 경영하는 언양 우시장이 경영되고 있다. 시장은 당시 주민들의 생활모습을 펼친 곳이라 해도 잘못된 표현이 아닐 것이다.

웅상이 도시화되기 이전인 1980년경 까지만 해도 서창시장을 이용하는 주민들은 거의가 낯익은 사람들이었다. 서창장을 이용한 주민들은 울주군 온양면 웅촌면 삼동 삼남 기장군 정관면 주민들까지 이용했다. 시장을 갈때는 시장에 내다팔 물건을 팔고 구입할 물건을 구입하고저 하는 목적도 있었지만 시장에 가면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 회포를 풀고 막걸리라도 한사발 나누고 국수라도 한그릇 나누고 오자는 재미로 장날마다 빠짐없이 간 사람도 있었고 도박을 좋아하는 사람은 윷놀이(동백이) 에미처 도박판에 가기 위하여 시장가는 사람도 있었다. 먹을거리가 귀한 때라 술을 조금만 마셔도 만취가 되고, 냉장고가 없이 먼거리를 이동한 상한 고기등을 먹고 배탈이 나는 주민들도 많았다. 장이 파할 시간이면 술에 만취가 되어 허우적거리는 사람이 장날마다 여러 명이 있었다.

고무신이 나오기 이전에는 짚신을 절고 나막신을 만들어나와 파는 이도 있었고 땔감인 나무를 몇십리 길을 지게에 지고와 파는 이도 있었다. 이 나무마저도 헐값에도 팔리지 않아 다시 집으로 지고 가는 사례도 있었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절이라 떨어지고 깨어진 물건을 고치는 곳이 시장곳곳에 있었다. 사기그릇 깨어지고 금이 간 곳을 때우는 작업을 하는 곳이 있었고 고무신 장화를 때우는 곳이 있었고 나무오줌동이와 통을 수리하는 곳 양철동이 비닐통 수리하는 곳, 대소쿠리, 키(체이), 얼기미 등을 수리하는 곳도 있었다.

농촌 시장에서 쌀을 구입하여 도시로 내다 파는 장사를 한분들이 많았다. 교통수단이 용이하지 못하고 이동수단이 불편하여 생산지 농산물 가격과 소비지가격이 차이가 많이 나 여러 사람이 구입한 농산물을 큰 차량을 이용하여 운반하게 되면 운반비도 저렴하게 들고 차량에 싣고 내리고 하는 과정에도 전문인력을 이용하여 수월하게 목적지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우시장에서 거래된 소는 주로 소몰이꾼에 의해 이동되었다. 시장에서 구입한 소를 다른 시장에 내다파는 소장사꾼도 있었고 매입한 소를 도축장으로 이동하는 소도 있었다. 소몰이꾼은 한사람이 열 마리를 넘는 소를 몰고 가는 이도 있었다. 소가 이동하는 시간은 시장이 파한 후 이동하기에 주로 밤에 이동하였다.

7번국도에는 주변 시장이 서는날 밤에는 많은 소때들이 이동하는 광경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차량이 있긴 해도 간혹 있었고 차비가 아까워 몇십리길도 걸어가는 일이 많아 신발이 달아 잘 떨어져 신발 파는 곳이 여러곳에 있었다. 5일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이나 학교를 통학하는 학생들이나 친인척댁을 방문해야 할 사정이 있을시에도 몇십리 길도 걸어 다니기가 일수였다.

필자는 외가가 두 곳에 있는데 어린시절 십리길 되는 주남 외가에 자주가도 단 한 번도 차를 이용해 본적이 없고 팔십리길 되는 울주군 청량면 신촌 외가에도 엄마 따라 여러 번 걸어 다녀왔다.
시장에 운반해야 할 물건은 대다수 무거운 것들이다. 여자분들은 무겁도록 머리에 이고 남자분들은 무겁도록 지게에 지고 소의 질메를 이용하는 이들도 많았다. 소가 질메에 운반할 수 있는 양은 장정 두 사람이 간신히 질수 있는 무게의 양을 운반할 수가 있다.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몇 십리 길을 요즘 등산객들이 지고 가는 배낭쯤으로 생각하며 비지땀을 흘리며 왕래했다.

그 당시 사람들의 삶의 고달픔의 척도는 먼길 무거운 짐을 나르는 무게만큼씩이나 되어도 숙명으로 알고 살았다.
<다음호에 계속>
↑↑ 박극수
시인
(현)양산문화원 이사
양산시 향토문화연구회 감사
ⓒ 웅상뉴스(웅상신문)
웅상뉴스 기자 / 입력 : 2018년 03월 13일
- Copyrights ⓒ웅상뉴스(웅상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포토뉴스
생활 정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의학과 .. 
부동산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 영향으로 .. 
사람들
“지역의 역량을 일깨우고 성장시키는.. 
단체
양산문화원(원장 박인주)과 원효함(.. 
따뜻한 이웃
지난 1일 웅상노인복지관(관장 이명.. 
지역행사 일정
많이 본 뉴스
제20회 양산천성산철쭉제 ˝천성산에서 꽃분홍 향연 즐기세요˝..
문화 속으로/ 오는 26일 ‘죽전 연 숲속 작은 음악회’열린다..
2024 양산웅상회야제 오는 25일 열린다...26일 양일간..
[수요드로잉] 발라툰호수의 티하니 마을..
[전문가탐방] 이주영 세무회계사무소 대표 “변화하는 세법 쉽게 간편하게 접근, 절세 전문가로 발돋움”..
“웅상 공공의료원 설립...과감한 행정적 지원 나서달라”..
[수요드로잉] 비오는 날..
덕계상설시장, ‘동네시장 장보기’..
웅상 수원보호구역 해지 투쟁사..
길을 떠나다(35) /몽골 여행13, 허르헉을 먹다..
신문사 소개 고충처리인제도 기사제보 제휴문의 광고문의 개인정보취급 편집규약 윤리강령 청소년보호정책 구독신청 찾아오는 길
상호: 웅상뉴스(웅상신문) / Tel: 055-365-2211~2,364-8585 / Fax : 055-912-2213
발행인·편집인 : 웅상신문(주) / mail: news2022@hanmail.net, news2015@naver.com
주소: 경상남도 양산시 덕계 2길 5-21 207호, (기장)부산시 기장군 월평1길 7, 1층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남, 아00194 인터넷신문 등록일:2012년 7월 11일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철근
Copyright ⓒ 웅상뉴스(웅상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
방문자수
어제 방문자 수 : 7,847
오늘 방문자 수 : 2,920
총 방문자 수 : 23,107,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