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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상사람들의 삶을 말하다(42)-하

웅상에서 가장 근면성실하고 검소한 소정부
웅상뉴스 기자 / 입력 : 2018년 01월 29일
휴가를 끝내고 부대로 가 제대를 하고 그 다음날부터 계속 5일장을 하루도 쉬지 않고 장사를 했다. 1967년 27세때 주남 월성이씨댁 규수와 결혼을 했다.

5일장 장사를 한 기간이 20년이 넘고 보니 그간 벌이도 만만찮게 했다. 서창에 현재 거주하는 서창동사무소 북쪽방향에 초가집을 매입하고 서창초등학교 북쪽편에 있는 700여평의 농지를 구입했다.

지금 서창토지구획정리조합지구에 편입되어 토지구획정리사업을 시작한 지가 15년을 훨씬 넘었음에도 아직 준공이 되지 않아 원만한 재산 활용을 하지 못하고 있다. 농협중앙회 서창지점 건너편 주남입구에 현재 운영하고 있는 점포건물 토지 129평을 90만원에 구입하였다.

평당 7만원 정도가 되었다. 당시 토지 상태는 농지도 하천도 아닌 아무짝에도 소용 없는 토지를 비싼 가격으로 사느냐 하며 주변 친한 분들이 말리기도 했다. 여름 장마기에는 하천물이 범람하여 하천 상태가 되어 버리기가 예사였다. 운수업을 하든 동갑내기 친구 정상모에게 돌과 자갈 운반을 부탁하여 축대를 쌓고 매축을 하여 현상태 토지를 만들었다.

민영철대장간 별채 건물도 구입하였다. 서창집은 도로변에 위치해 접도 구역으로 지정되어 일체 증축이나 신축을 하지 못하게 했다. 공무원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시간인 토요일 오후에 블록 쌓기 작업을 시작해 일요일까지 마무리 할 의향으로 기초공사를 하고 블록을 몇 단 쌓아 가는 판에 면직원 백동 출신 김○○가 발로 블록을 차 넘어뜨려 버렸다. 이런 반복된 행위를 여러번 했다. 사정도 하고 애원도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너무나도 위압적인 자세로 많은 주민들의 원성의 대상이 되었다.

몇차례나 공사 상태에 있는 구조물을 무너뜨려 버렸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다 토요일 밤에 여러 명의 미장공과 목수를 동원하여 일요일 오전까지 건설부 허용 구조건축물을 건립하고 나니 월요일 담당 직원이 노발대발하며 고발조치하며 강제로 건물을 헐어 버리겠다고 하고 압력을 가해 건설부에 진정을 하여 받은 회신을 보여줬더니 모호한 해석을 하며 건물존치 할 수 없다고 하여 나도 고발조치 하겠다고 하며 맞대응을 하며 받은 회신의 내용이 의심스러우면 당신이 건설부에 다시 질의해 보라 하였더니 질의를 했는지 아무 말이 없었다.

공무원이 주민을 도우려는 의지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주민을 중죄인 취급하며 폭력을 가하는 자세로 업무를 이행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원망스러움이 5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음에도 가시지 않고 생생하게 떠오른다. 실랑이를 하고 있는 과정에 담당공무원과 친하게 지내는 이웃 어느 분이 담당공무원에게 얼마의 금액을 주면 묵과하고 넘어간다고 하며 자기가 책임지고 해결할 것이니 얼마의 금액을 달라고 하였다. 돈도 아깝지만 하는 소행도 화가 나 무시해버렸다. 담당하는 공무원도 세상을 떠나고 내 나이도 80이 가까워지고 있음에도 그때 상처가 아직 지워지지 않는다.

세상은 좁고도 넓은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딸이 초등학교 입학하던 날 아내가 입학식에 참석했는데 정부의 동광초등학교 같은 반 짝꿍이 담임선생님이라 하더라 하며 학교에 한번 찾아오라고 했다. 어찌 알았는고 하니 담임선생님은 가정 실태조사서에 기록된 내용에 정부가 동광초등학교 재학했다는 기록을 보고 파악했다고 했다. 짬을 내어 학교를 방문하니 오랜 세월이 지나 본듯도 하면서 몰라보겠기에 담임선생님은 누구시며 당시 반급장 이름과 앞자리 뒤자리에 앉은 친구들이 딱 맞아 금세 확인이 되었다.
생활에 어느 정도 안정도 되고 마을 새마을지도자를 맡고 정치에 관여하여 모정당의 마을 활동장을 맡아 지도자 역할도 활동장 역할도 열심히 하며 장기간 소요되는 연수원 교육도 입소하여 교육도 자주 받았다. 교육의 내용중 부동산 투기는 국가의 적이며 아주 부도적한 경제행위라는 인식이 각인되어 있는터에 북부에 소유하고 있던 토지를 건축물건립을 위한 자금으로 북부 정성모에게 팔았는데 정성모는 이전등기서류를 다 갖추어 주었는데
무슨 사유인지 이전등기를 하지 않고 있다 5년의 세월이 지난 후 다른사람에게 그 토지를 매도하여 정부에게 이전 등기를 해달라 하기에 아무 생각없이 정성모에게 토지를 매입한 사람에게 이전등기를 해 주고 난 후 1년 뒤 세무서에서 양도세 고지서가 왔다. 부과된 세액은 정성모에게 정부가 처분한 전체 토지금액보다 더 많았다. 여러차례 방문하고 세무회계사에 자문도 받아 그간 경과를 서면과 구두로 알리고 반년가량의 세월을 보내며 세금전액을 감면 받긴 해도 토지를 잘못 팔면 세금으로 다 빼앗긴다는 두려움이 각인되었다.

당시는 공시지가에 의하여 세금부과를 했는데 세월도 지나고 농지였던 토지가 대지로 변해 공시지가가 많이 올라 그렇게 되었다. 상품구입을 위한 국제시장 도매업자 중 가장 존경하는 분이 있었는데 이분은 6.25동란 이전에 신의주에서 월남한 분인데 물건 구입하러 가면 점심도 자주 사주며 세상사는 이야기를 잘 들려주는 분이셨다. 신의주에서 농지를 가장 많이 소유한 부농의 아들이었다고 한다

. 머슴을 여러명 거느리고 농사를 지었는데 이북에 공산당 정권이 들어서고 브로조아를 처단할 시기에 가족같이 지내던 자기 집에 머슴을 살던 사람이 공산당 간부가 되어 활동하고 있었다 한다. 그 사람은 어느날 밤에 찾아와 가족 전체가 브로조아 가족으로 몰려 며칠 안으로 처단 대상이 되었다 하며 생명이 위태로우니 남한으로 내려가라고 알려주었다.
어른들은 짐을 꾸려 뒷날 월남하기로 하고 그분과 그분의 남동생은 그날 저녁 남으로 향해 오기를 시작하여 국제시장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 이후 가족과의 연락이 두절되었다 했다. 그분은 세상에 가장 서러운게 외로움이라 했다. 정부 너는 참 행복하다. 가족들과 아우다웅하며 살아가니 얼마나 행복하냐고 했다.

이분의 철학은 돈은 먹고 살만큼만 있으면 된다. 아끼고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은 말할 여지도 없지만 지나친 과욕은 자신을 불행하게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하셨다. 이분의 인생관이 정부의 삶의 가치관 선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분은 정부의 근면 성실과 검소함에 반했다 하며 전화도 자주 주시고 친형님처럼 대해 주셨다.
그 당시 정부의 능력으로 땅을 매입하려고 하였다면 웅상 일등농지 만평은 수월하게 살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만약 그때 땅에 욕심을 내었다면 이웃에 사는 동갑내기 친구이며 웅상에서 가장 부자로 알려진 정상모 보다 더 큰 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정부는 하늘은 공평하다. 내가 만약 큰 부자가 되었다면 오래 전에 하늘나라로 갔을 것이라 하며 살아간다.

55세때 뇌졸중으로 죽다 살아 났고, 58세때 뇌경색으로, 2015년에는 뇌진탕으로 쓰러져 오랜 병원생활을 하였음에도 지금 성한 몸으로 생명을 지탱하고 점포운영에 참여하고 있음을 욕심이 과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했다. 아버지와 관련된 유산은 주남과 웅촌면 와지 경계지점인 중뫼산 자락 떡고개 길목에 14,000평 임야가 있다. 이 산은 종조부님 소유 토지를 종조부님이 와지에서 장흥으로 거처를 옮길 때 아버지가 쌀 몇 가마니 값을 종조부에게 드리고 산을 매수하였음에도 이전등기를 받지 않고 있다.

종조부도 아버지도 돌아가셨다. 두 분이 돌아가신 후 종조부님의 아들 당숙에게 정부가 산을 이전등기 해줄 것을 요청하니 아버지 토지란 걸 인정하면서 이전등기를 해주지 않고 땅값을 요청하기에 달라는 땅값을 치르고 이전등기를 받아왔다. 이곳에 목장지 조성을 위해 개간신청을 하였더니 회야댐 수원보호를 위하여 환경보존지역 지정 예정지로 지정되어 며칠 내 허가를 득하지 않으면 허가 접수마저 될수 없다고 하여 설계사무소에 독촉하여 밤낮없이 인가서류 준비하여 3,000평 정도를 개간허가를 받아 장비를 들여 개간작업을 하는 과정에 환경보존지역으로 지정되었다. 허가된 토지라 개간에 재제를 가할 수 없는 처지라 목장지로 준공받았다.

며칠만 늦게 허가 접수하였다면 허가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이로 인하여 웅촌과 웅상 용당 일대가 환경보존지역지정을 정부가 가장 먼저 알고 와지 노진일과 용당 이승갑에게 알리고 경남도청을 방문하여 환경보존지역으로 지정된 절차를 알아보니 웅상면과 웅촌면에서 환경보존지역 지정된 토지 지주들에게 지정전 서면으로 알리고 공고까지 하여 공람명부까지 다 제출되었다고 하며 공청회도 하였다고 보고가 되어 있었다. 당시 웅상면장과 웅촌면장은 허위 서류를 작성하여 보고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부터 웅상면민과 웅촌면민이 총궐기하여 환경보존지역 해지를 하는 계기가 되었다.

정부는 일생 장사를 해오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여름에는 새벽 5시에 문을 열고 저녁 10시에 문을 닫고, 겨울에는 아침 6시에 문을 열고 저녁 9시에 문을 닫으며, 쉬는 날 없이 장사를 한다. 지금 78세다. 아침 여섯시 점포문을 손수 열고 주변 청소를 하고 난 후 손님을 기다리며 중앙일보, 부산일보, 양산신문, 웅상신문을 구석구석 다보고 아들이 9시 경에 출근하면 10시 경까지 점포에 있다 낮에는 외부일을 보다 저녁시간에 점포에 나온다.

아버지 때부터 하던 장사를 정부가 하다 지금은 아들이 점포 주인이 되어 있다. 3대 째 같은 업종의 장사를 하고 있다.

손자가 점포 운영을 하겠다는 뜻이 있다면 물려주고 싶다. 장인정신으로 점포 운영을 한다.
↑↑ 박극수
시인
(현)양산문화원 이사
양산시 향토문화연구회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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