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어느 국가나 도시도 문화발상지는 강변이다. 강물을 식수와 농업용수로 이용할 수 있고 서식하는 고기를 잡아 먹거리로 구할 수 있다. 사냥감도 강변에서 찾기가 쉽고 강은 뗏목만 이용하면 이동수단과 물류운반도 할 수 있다. 강변은 완만하여 육로로 행보하기도 용이하고 농토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웅상의 최초 부족국가인 우시산국도 회야강에서 이루어졌다. 우시산국의 권역은 웅상, 웅촌, 청량, 온양, 온산, 서생으로 회야강을 접한 지역이다. 우시산국이란 국가 명칭은 울산 지명의 모체가 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학자는 없다. 웅상에 선조들이 발을 들여 놓은때부터 지금까지 주 생활영역은 울산이다. 부산이 울산과 같은 웅상주민의 생활영역이 된 것은 근세이다.
천성산 넘어 양산지역과는 부족국가때 국가 영역을 넓히기 위한 전쟁도 하지 않았던 지역이다. 임진왜란때 출병한 웅상지역의 의병들은 기장, 동래, 언양, 울산, 경주, 대구 지방의 의병과는 협력하여 왜구와 싸웠다는 기록은 많지만 양산 병력과 협력하였다는 기록은 단 한줄도 없다. 5일장을 이용해도 남창장, 언양장, 좌천장, 기장장, 동래장, 울산장을 이용했지 양산장은 이용하지 않았다.
양산과는 역사성 생활권이 별개지역이라 혈연, 지연, 학연은 거의 전무한 지역이다. 양산과 관계를 가질 수 밖에 없게된 것은 1906년 일정의 일방적 폭정에 의하여 웅상은 양산에 병합되고 부터이다. 국가에서 발급하는 모든 증명이나 국가의 통제와 지원도 양산군청을 통할 수 밖에 없다보니 양산군청에 갈 수 밖에 없게된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 사정은 1905년 을사보호조약으로 우리나라 통수권을 일정에게 빼앗기고 고종은 임금으로 허울만 가질뿐 나라 다스릴 아무런 힘도 없었고 친일파 일색으로 이루어진 대신들은 백성들의 안위에는 관심도 없고 일정에 아부하며 자신들의 배채우기에만 급급하였다. 그렇다보니 일정은 자신들의 저의대로 우리나라를 맘대로 유린하였다. 일정이 웅상을 양산에 병합한 저의는 임진왜란시 우리 의병들이 얼마나 많은 왜구를 사살했는지 북부마을에는 왜구들의 시신이 큰 등을 이룬곳이 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지명이 왜시등이란 지명이 되었다.
그때 왜구들을 향해 활을 쏜 곳이 우시산국 때 건립되었다는 우불산성이다. 우불산성과 왜시등은 일본의 치욕적인 장소이다. 우불산 자락에는 신라때부터 조선말까지 조정에서 보낸 향촉과 축문으로 울산지방의 수령이 제주가 되고 지방유림이 협력하여 매년 춘추로 국태민안의 제사를 지냈고 심한 가뭄이 들거나 국가와 지방에 어려움이 있을시 수시로 제사를 모셨던 곳이다.
이곳에 단을 모신 이유는 영남일대에서는 풍수지리설이 가장 뛰어난 곳이며 이 단에서 지성으로 기도하면 왕이 될 수도 있고 일본을 전복할 만한 큰 인물이 배출된다는 구전이 있다. 이에 불안을 느끼고 역사적 앙심 때문에 웅상의 정체성을 말살하기 위하여 웅상을 양산에 병합시키고 우불산 지맥을 끊기 위하여 쇄말뚝을 박고 광산을 개발하였다.
지금도 승용차를 이용해 서창에서 울주군청까지 가는 소요시간은 15분이면 갈수가 있고 양산시청까지 가려면 25분이 소요된다. 택시 이용시 울주군청은 2만2천원 정도고 양산시청은 2만8천원 정도이다. 웅상에서 양산시청에 갈려면 부산시를 경유하지 않고는 갈수가 없다. 객관적 입장에서 볼 때 이런 불합리한 행정구역 통합을 시민을 위한 통합이라고 하는 이는 단 한사람도 없을 것이다.
기장군은 1973년 양산군에 통합되었다. 1986년 기장출장소를 개설하고 양산군에서 1994년 12월 31일 독립하여 기장군을 찾았고 1995년 3월 31일 부산광역시에 통합되어 기장군으로 그대로 개편되었다. 양산군에 통합된 이후부터 지역의 뜻있는 인사들이 양산군에 편입된 부당성을 내세우며 계속 복군을 요청했다. 1986년 기장군 복군 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본격적으로 고향군 찾기에 나서 이루어 내었다.
1994년 웅상읍에서도 행정구역 개편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주민여론조사를 실시하였다. 주민 75% 이상이 행정구역 개편을 찬성해 전체주민 80% 이상이 서명한(30,000여명 서명날인) 청원서를 작성하여 나오연 국회의원과 국회 청원하여 줄 것을 약속하고 제출하였으나 국회 청원 여부에 관한 어떤 답변도 듣지 못했다.
동일한 청원서를 부산시의회 접수하였다. 긴급 정식 안건으로 상정하여 만장일치 찬성으로 결의하여 부산시에서는 부산시 인구증가 전진기지로 웅상을 활용하겠다며 대환영을 하였다.
박봉수 도의원, 추진위원장 전종태, 사무국장 박극수는 당시 내무부장관직을 일주일전에 사퇴하고 한나라당 대권주자로 유력하게 부상하고 있던 구기동, 최형우댁을 방문하여 웅상 행정구역 개편에 힘이 되어 줄 것을 요청하니 한달전에만 민원을 접수했다면 성사 될 수 있는 민원이었다 하며 기장군 부산편입건이 국무위원회에 상정될 때 같이 상정되었다면 웅상주민 뜻이 이루어 질 수 있을것인데 기장군민들의 접수한 민원은 국무위원회에 결의되어 국회여야 총무단에서 합의된 사안이라며 애석해 했다.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책임지고 웅상이 독립되도록 조치하겠다고 약속하였지만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선후보 경선준비 하는 과정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약속은 수포로 돌아갔다. 1999년 김대중 정권시절 박태준 국무총리실을 방문하여 총리를 면담해 웅상 행정구역 개편의 필요성을 건의하자 당정과 협의하여 가능하도록 조치해 보겠다는 약속을 받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한동총리로 교체되어 이상 진전하지 못했다.
그 이후 웅상발전협의회 이태환 회장은 웅상 행정구역 개편 분석자료 용역을 부산대학교와 울산대학교에 공동의뢰하였다. 주민설문조사 부산, 울산, 양산 장단기 발전계획과 지역특성 주민생활 전반적인 사안을 연구 검토하여 제출받은 논문 결론은 웅상의 미래를 위한 최선 대안은 부산이나 울산에 속한 독립된 기초단체로 나아가는 길이 웅상주민이 행복해 지는 최선의 길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이태환 웅발협 회장은 논문에 근거하여 추진하자고 해도 현행법으로 광역시도간에 행정통합이 불가하다는 조항에 부디쳐 정치적으로 해결하고저 노력했다.
웅발협 회장 이부근, 직전회장 이태환, 웅상지역사지편집위원장 박극수, 웅발협 사무국장 이무환은 당시 국회의장 김형오 사무실을 방문하여 건의하니 행정구역 개편을 위한 여야합의된 사안이며 행정구역 개편 입법개정을 위한 업무를 총괄할 의원까지 내정된 상태라는 답변까지 들었음에도 여야간 당리당략으로 무산되었다.
웅상은 정체성 확립과 웅상발전을 위하여 독립된 행정체계를 이루어 가야할 사명을 부여받았다는 사실을 잠시도 잊지 않고 이어가야 하며 꼭 성취해 내어야 할 과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