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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박극수의 역사이야기

박봉수님 장례식을 양산시민장으로 치루어야 한다고 양산의 지도자님과 시민들에게 고합니다

문화유산회복재단 경남본부장 박극수
웅상뉴스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22년 07월 14일
↑↑ 지난 2013년 4월 10일 웅상 명동공원이 1단계 공사를 마무리 하고 개원식을 갖고 완전개방했다.
ⓒ 웅상뉴스(웅상신문)
해방 이후 웅상에서 웅상지도를 바꾸는데 가장 기여한 인물이 누구인지 묻는다면 단연 박봉수다. 1500년대 초반경 12대 조부님 박지영께서 울산에서 명곡으로 정착한 웅상토박이 중 토박이다. 6대 조부님 4형제중 맏형 래팔과 둘째형 문팔 두분이 명곡에서 백동으로 이거해와 살게되어 박봉수도 백동에서 1934년 출생하였다. 선대 때부터 쌀 100석을 훨씬 능가하는 유복한 선비의 가정이었다.

할아버지 박시현은 인척 어른들의 가르침으로 뛰어난 학문과 인품을 겸비한 분으로 벼슬길에 나아갈 수 있는 학식을 가지고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향리의 젊은이들을 훈도하는 정사 훈장으로 일생을 마쳤다. 정사는 백동에 사는 가까운 집안 어른들이 사재를 모아 설립하고 초대 훈장으로는 숭덕전 참봉을 역임하신 박상옥 훈장 차기 훈장은 소시에 초시에 급제하고 그 이후 과거에 응시하지 않은 박수묵 훈장을 이어 돌아가시고 장례식을 전적 제자들이 주선하여 치루고 공적비를 건립할 정도로 존경을 받았던 박한묵 훈장 그 뒤를 이어 할아버지가 훈장을 맏았셨다.

훈장을 맡으신 분들의 학문과 인품을 울산 고을의 최고의 선비라는 칭송을 받았지만 당파 싸움에 혈안이 되어 백성들의 삶에 대하여 안중에도 없는 벼슬아치가 되지 말라는 선대 어른들의 유지를 받들어 인척들은 모두 과거 응시하는 일을 거부하고 고을의 젊은 이들을 훈육하는 일에만 전심 전력을 다한 가문이다. 아버지 박택종 또한 선비의 겸양을 갖춘 분으로 웅상면의회 의원을 역임하고 유림과 문중 지역일에만 솔선수범했다.

↑↑ 박봉수 씨
ⓒ 웅상뉴스(웅상신문)
봉수는 타고난 성품이나 가정 분위기가 학자의 기품으로 성장할 수 밖에 없었다. 웅상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중,고등학교와 동아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고향 개운중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하다 5.16 군사정변 세력에 의해 창당된 공화당 창당 멤버로 정치사회 첫발을 내딛게 되어 공화당 양산지구당 부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이때부터 1년 365일 단 하루도 집에 있는 날 없이 바삐 쫓아다니는 행보를 시작해 최근까지 지치지 않고 계속하다 지금은 연세가 89세로 건강이 극도로 좋지 않아 집에만 계신다. 웅상에서는 비슷한 또래 분들 중 부모님 유산을 최고로 많이 받아 지역 살피는 일에만 열중하다 보니 기본 생계 유지도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1960년 초반경 백동 저수지와 명곡시명골저수지, 주진저수지 건립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 재원 확보는 미국에서 원조한 남은 농산물 밀가루 지원을 받아 충당했다.
당시는 국가 전체 산업중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고 웅상지역은 순수한 농사지역으로 전체 소득 중 농업소득이 80%였고 농업소득 중에서도 논 수입이 절대적이었다. 저수지를 건립하고 수혜를 입은 들에서는 수확량이 엄청 증대되어 소득이 많이 높아졌다. 당시 도지사, 시장, 군수, 읍면장이 모두 임명에 의하여 발령 받는 때라 국회의원의 뜻이 바로 임명이었다 할 정도였다. 지역 국회의원이었던 노재필에게 강력하게 요청하여 지원을 받게된 것이다. 중장비에 의존할려고 해도 장비가 귀했고 노임을 밀가루로 지급해야 하고 원조국 미국에서도 장비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인력으로 저수지 뚝을 쌓게 해 인력으로 저수지를 건립했다. 끼니를 이어가지 못하던 사람들이 저수지 공사에 품을 팔아 밀가루를 받아 끼니를 때우기도 하고 밀가루를 팔아 보리쌀과 쌀을 사먹기도 해 끼니걱정을 덜기도 했다.

1972년 10월 17일 유신 헌법이 국민투표를 통해 통과 되면서 통일 주체 국민회의 대의원을 통해 대통령 간접 선거와 국회의원 3분의 1을 선출하고 국회가 발의한 헌법 개정안 의결 확정권 등을 행사 하는 기구인 대의원 선거를 1972년 12월 15일 실시하였다.

↑↑ 명동공원
ⓒ 웅상뉴스(웅상신문)
초대 통일주체 국민회의 대의원에 웅상면 출신으로 당선되었다. 1981년 건설부로부터 사업인가를 받아 ADB차관 자금으로 1982년 12월 31일 착공하여 1986년 5월 14일 울산 시민 식수원 공급을 위해 건립 준공된 회야댐으로 인해 1986년 7월 20일 건설부 312호에 의거 회야댐 상류지역인 웅촌면 지역과 웅상지역 일대가 환경보존지역으로 지정 확정되고 이어 웅촌 웅상전역을 수원보호구역 지정계획 추진 확정을 하고 지정 확정 작업 진행중일 때 환경보존 지역해제 투쟁위원장을 맡아 주민들의 협조와 엄청난 힘을 쏟아 1991년 환경보존지역 해제 통보와 수원보호구역 지정계획 취소 통보를 받았다.
대한민국 건국이래 환경보존지역으로 지정되고 수원보호구역 지정계획 확정이 되어 해지된 곳은 웅상이 처음이었다고 했다. 만약 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면 웅상은 온전히 농촌지역으로 그대로 있었을 것이다. 당시 울산 시민 인구는 90만이었고 웅상 인구는 2만도 되지 않았다.

울산에는 국회의원이 5명 이었고 양산에는 국회의원이 김동주 한명 뿐이었다.
울산 시민 식수원 확보라는 대의 명분도 앞서고 물적 인적 열세한 입장에서 쾌거를 이룬 것은 역사에 길이 기록되어야 할 일이다. 명곡 외홈과 서창을 접하고 있는 지역에 웅상에서 가장 먼저 토지구획정리조합을 설립해 조합장으로 선출되어 1981년 5월 12일 인가를 받아 1985년 5월 1일 준공을 했다. 도시기반 시설이 조성되지 않은 상태로 무분별하게 도시가 형성되어 가고 있는 웅상에 정리 정돈된 정비를 위한 견본을 마련해 이후부터 토지구획정리조합이 정비된 도시형태를 이루는데 기여했다.
토지구획정리조합이 조성한 도로 공원은 양산시에 기부채납된다. 서창동 구역내 도로 소공원 80%는 토지구획정리조합에서 기부채납 하였다. 1991년 6월 20일 실시된 도의회 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소주공업지구 36만3천평이 건설부 고시에 의하여 지정되었으나 개발이 되지 않고 장기간 방치된 상태로 있었다. 효성그룹 소유토지 10만평과 웅상주민 소유토지 10만평을 합한 20만평을 토지 소유자들의 동의를 받아 공영개발에 의하여 공업지구를 조성했다. 지금 가동되고 있는 소주공단 공장들이 공영개발 이후에 들어와 국가와 지역경제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토지 대 지주인 효성그룹과 여타 토지 지주들에게도 공영개발 동의를 받을 수 있는 여건조성과 도 공영개발단에서 공사를 할 수 있도록 한 주역을 박봉수가 감당했다.
↑↑ 웅상출장소 인근
ⓒ 웅상뉴스(웅상신문)

1995년경 평산, 봉우, 태원아파트 일대 지하수를 굴착하여 식수 및 생활용수로 이용하였다. 인근에 아파트가 건립되고 신설되는 아파트 마다 기존 아파트 지하수 보다 더 깊이 굴착하여 한정된 지하수는 고갈되어 3,000여 세대 아파트에 물 난리를 당했다. 고층 건물에 물이 없다고 한번 상상해 보자. 그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주민들은 전쟁 난민 수용소 보다 더 어려운 생활을 해야만 했다. 식수는 길러다 먹는다 해도 집집마다 수세식 변소에 용변도 보지 못하는 이런 난리가 또 어디 있는가? 도의원 박봉수는 김혁규 도지사와 현지에 수차 방문하고 중앙정부와 청와대(김영삼 정권 시절)까지 방문하여 청와대 영남 담당관이 현지까지 방문하여 확인하여 해결방안을 관계부서에 조속하게 조치하도록 촉구하고 명곡 시명골저수지 물을 일시 아파트까지 인수하여 공급하고 시명골저수지 몽리 답 절대농지 20만평을 주거지역으로 지정하여 토지구획정리를 하였다. 이를 계기로 하여 웅상정수장의 준공 가동되는 시기가 앞당겨졌다.

웅상출장소와 웅상문화체육센터 일대 부지는 당초 도시계획이 공원지로 지정되었고 현 명동공원 부지 일대는 주거지역으로 지정된 도시계획을 명동 울산 박씨 문중 선산인 명동공원을 문중원들을 설득하여 공원지로 지정하도록 하고 현 웅상출장소 부지 일대를 주거지역으로 지정하도록 건의하여 도시계획구역이 교환 변경됨으로 인하여 현 출장소 일대 토지 소유자는 지가가 엄청 상승하는 이익의 대가로 출장소 부지와 문화체육센터 부지를 기증하였다.

명동공원 조성시 공원지로 지정된 명동 울산박씨 현재 소유토지를 양산시에 무상으로 임대하여 시민들이 이용하고 있다. 언급한 사안 이외도 박봉수가 중심이 되어 이룩한 사업이 많다. 앞서 언급한 몇 가지 사안만 해도 필자의 판단으로는 현존한 양산시민 어느 누구 보다 지역을 위해 큰일을 하신 분이다. 지금은 연세도 연로하시고 건강이 극도로 좋지 않아 얼마간의 기간에 하늘나라로 가실 것 같다. 이런 상태에서도 향토 걱정을 하시는 분이다.
이분이 돌아가시면 양산시민장으로 장례식을 치룰 수 있도록 하여 주실 것을 간곡하게 건의합니다.
↑↑ 문화유산회복재단 경남본부장 박극수
ⓒ 웅상뉴스(웅상신문)
웅상뉴스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22년 07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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