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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장영주 칼럼

충무공 이순신과 충무공 제갈량

원암 장 영 주
국학원 상임고문
웅상신문 칼럼위원

웅상뉴스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24년 04월 27일
ⓒ 웅상뉴스(웅상신문)
오는 28일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 탄신 479주년이 되는 날이다. 장군은 1545년 조선 한성부의 건천동(마른내)에서 태어났다. 현재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인현동이다. 아버지(덕수 이씨) 이정과 어머니 (초계 변씨)의 삼남으로 태어나 평생의 지기였던 서애 유성룡(문충공)과 이웃하여 자랐다. 7년의 왜란이 끝나고 45년이 지난 1643년, 인조는 ‘이순신’에게 '충무(忠武)'라는 시호를 내렸다. 그러니 이순신 장군께서는 살아생전 자신이 충무공이 될 것을 알 수 없었다. 무인으로써 최고의 시호인 ‘충무’를 받은 분은 고려과 조선조의 ‘조영무’, ‘이준’, ‘남이’, ‘이순신’, ‘김시민’, ‘이수일’, ‘정충신’, ‘구인후’, ‘김응하’ 등 모두 9분이었다. 그중 임진왜란을 헤쳐 간 충무공은 네 분이었고 그중 두 분이 마지막 전장에서 승리와 자신의 목숨을 맞바꾼다. ‘충무공 이순신’과 ‘충무공 김시민’으로 각기 이웃한 향리인 아산과 천안출신이다.

2백여 년 뒤, 조선의 22대왕 정조는 이순신을 영의정으로 증직하고 신도비를 세웠다. 세종 이래 가장 학문이 출중하고 치적이 높았던 정조의 바른 안목에 의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비로소 문무겸전의 위인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다. 정조는 이순신을 “천고 이래의 충신이요 명장”이라고 상찬하며 “제갈 공명과 자웅을 겨룰만한 전략가이기에 흠모하는 마음이 일어난다.”고 하였다. 제갈 공명의 본명은 제갈량(諸葛亮 181년~234년)으로 후한 말 주군인 유비를 도와 촉한을 건국하는 업적을 이루고 5차 북벌 중 진중에서 병사한다. 공명은 지략과 충의의 전략가로 많은 이들의 추앙을 받으며 훗날 무흥왕으로 추존된다. 그가 위나라 토벌을 시작하면서 유비의 아들 유선에게 올린 출사표는 현재까지 중국교육에 중요한 지표가 되고 있다. 제갈공명과 이순신의 시호는 ‘충무’로 똑 같은 나이인 54세의 죽는다. 후인들은 ‘이순신’이 제갈 공명과 능력이 혹은 같고 혹은 오히려 뛰어나다 한다. 공명은 황제인 유비로 부터 모든 것을 다 받았고 이순신은 전투 중임에도 오히려 ‘선조’의 시기와 방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정유년, 조선에 건너와 이순신과 함께 싸운 명나라 수군제독 진린(1543~1607) 역시 이순신 장군을 제갈 공명에 비유하였다. 1598년 11월 17일 이순신과 함께 순천 외교성의 고니시를 공격하고 있던 진린은 이상한 징후를 보고 이순신에게 알리고 비방을 세우라고 권한다. “내가 밤이면 천문을 보고 낮이면 인사를 살폈는데 동방에 대장별이 희미해 가니 멀지 않아 공에게 화가 미칠 것이오. 공이 어찌 이를 모른다 하겠소. 어찌하여 ‘무후(제갈 공명)’의 예방하는 법을 쓰지 않습니까?” 하였다. ‘제갈 공명의 예방법’이란 급한 전세를 앞두고 자신의 명을 조금이라도 늘여 달라고 간절하게 하늘에 기원하였던 일을 말한다. 그러나 이 고집불통의 54세 조선의 장수 이순신은 이미 적군을 단 한명도 살려 보내지 않으리라는 각오를 금석처럼 다지고 다져 온 터이다. "이 원수를 무찌를 수만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나이다. 오늘 진실로 죽기로 결심했사오니 하늘은 반드시 이 왜적을 섬멸시켜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此讎若除死即無憾 今日固决死願天必殲此賊). 이순신은 담담하게 진린에게 답한다. “나는 충성심이 무후만 못하고, 덕망이 무후만 못하고, 재주가 무후만 못하여 세 가지 모두 무후만 못하니, 비록 무후의 법을 쓴다 한들 하늘이 어찌 들어줄 리가 있겠습니까?” 육신은 사라지지만 다만 뜻은 대장 검처럼 빛나고 있었다. 이튿날 과연 큰 별이 바다에 떨어지는 일이 있었다. (진린 도독 묘비문)

만화방초가 저마다 아름다움을 시세 우는 계절이다. 가득했던 애기연두색이 제법 짙어지고 있다. 모든 생명은 꽃피고 열매 맺고 번식하지만 개체는 결국 명을 다하여 죽음을 맞는다. 거룩한 소멸의 행진이지만 개중에는 영원히 지지 않는 꽃도 있다. ‘논개’는 가녀린 아녀자의 몸으로 ‘신의 칼’로 불리 운 왜장 ‘게야무라 로구스케’를 끌어안고 스스로 진주 남강의 한 송이 낙화가 되었다. 사기가 크게 꺾인 일본군은 서쪽으로의 진군을 포기하니 승리의 발판인 호남이 살아남는다. 이로써 논개는 영원히 지지 않는 붉은 꽃이 되었다. 1805년 10월 21일, 호레이쇼 넬슨(Horatio Nelson)은 트라팔가르 해전 막바지에 저격을 당한다. 기함인 빅토리 호의 바닥에 누워 가쁜 숨을 내쉬면서도 전투를 지휘하던 넬슨은 완승을 전해 듣고서야 숨을 모아 마지막 한마디를 토한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는 저의 의무를 다 하였습니다.” (Thank god! I have done my duty).

임무를 다하고 지는 꽃은 비로소 아름답다. 지금 세계를 풍미하는 한민족의 문화가 인류의 생명 꽃으로 더욱 거룩하게 승화되고 지속되기 위해서는 후손들의 ‘필사즉생(必死則生)’의 실천이 꽃처럼 만발해야 한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탄신을 영원히 기리는 이유이다.
웅상뉴스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24년 04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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