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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그림으로 떠나는 낚시 여행

-안국진 저서-

/이진오
부산대학교 예술문화영상학과 교수

웅상뉴스 기자 / 입력 : 2013년 07월 08일
ⓒ 웅상뉴스
흔히 이런 질문을 한다. “저 사람을 잘 아는가?”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당황한다. 사람을 안다는 것이 어느 정도라야 잘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더구나 내 자신도 내가 잘 알지를 못하는데.
사람을 잘 안다고 하는 기준을 일반적으로 정하기도 어렵겠지만, 특히 안국진에 대해서는 더욱 힘들다. 왜냐하면, 사람이 워낙 다재다능하여 내가 아는 것이 그 전모의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안국진은 불문학을 전공하여 프랑스 유학까지 갔다 왔는데, 불어보다도 한문을 더 잘하는 듯이 보인다. 어릴 때 할아버지에게 조금 배웠다고 하는 한문에 대한 이해는 전문가 수준이다. 제대로 배웠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이 되질 않는다. 여기다가 한의학에 대해 하는 이야기들도 들어보면 보통 깊이가 아니다. 안과전문 제약회사도 했고, 중국에 사업하러가서는 몇 개도시 경제고문도 맡았다는데, 지금의 직업은 엉뚱하게 '월간 바다낚시' 발행인이다. 정말 엉뚱함의 연속이다.
안국진이 ‘낚시와 그림’에 관한 책을 낸다는 것도 엉뚱한 일이지만, 또 어떤 측면에서는 당연하기도 하고, 과연 그다운 일이기도 하다. 세간에 그림에 관한 책도 부지기수이고, 낚시에 관한 책 또한 수없이 많겠지만, 옛그림을 소재로 하여 낚시에 관한 주제를 풀어낸 책은 보지 못하였다. 낚시 전문가이면서 예술에 조예가 깊고, 한학에도 대단한 식견을 가진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고 보니, 그가 음악과 미술에도 남다른 경지를 갖고 있음을 말하는 것을 앞에서 빠트렸군. 살짝 하나 더 첨가한다면, 그는 환경운동에도 상당한 경륜을 갖고 있다.
이번에 ‘낚시와 그림’을 주제로 내는 이 책은 낚시에 대한 전문적인 경륜과 그림에 대한 안목, 거기다가 한학에 대한 식견까지 융합되어 나온 역작이다. 이러한 작업을 해 낼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한 사람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어부’라는 단어에는 한자로 ‘漁夫’와 ‘漁父’의 두 가지 표기가 있다. 전자는 직업으로 물고기를 잡는 사람이고, 후자는 취미로 물고기를 잡는 사람이다. 그런데, 후자의 경우 동아시아적 문화 전통에서 취미 이상의 심장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여기에 다소 복잡한 내력이 있다.
먼저, 아주 오래 전에 ‘어부의 노래’라는 의미의 ‘어부사(漁父辭)’라는 작품이 있었다. 중국 초(楚)나라의 굴원(屈原)이 지었다고 하는데, 굴원이 살았던 시기가 B.C.300년 전후이니 지금으로부터 무려 2,300년 전에 지어진 작품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는 두 가지의 대조적인 인생관이 나타나 있어서 후세에 두고두고 회자된 명작이 되었다. 그 두 가지의 인생관이란 바로 굴원과 어부(漁父)로 대립되는 인생관이다. 굴원은 재능과 도덕성을 겸비한 엘리트였고, 어부는 물고기를 잡으며 이름 없이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굴원이 정치적으로 패배하여 유랑하던 시절에 어부를 만났다. 어부는 굴원을 보고 자기 정당성에 몰입하여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소외시켰다고 하면서 세상과 어울려 살기를 권유하였다. 이른바, ‘세상이 진흙탕이면 자신도 그 흙탕물을 함께 일으키고, 세상 사람이 다 취해 있으면 자신은 그 술지게미라도 먹으면서 어울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굴원은 이러한 제의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자신은 ‘새로 목욕을 한 자는 옷을 털어서 입게 마련인데, 어떻게 깨끗한 몸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받아들일 수가 있겠는가, 차라리 강으로 가서 몸을 던져 물고기의 밥이 될지언정, 그렇게는 할 수가 없다’고 하면서 자신의 방식을 고집한다. 어부는 마침내 대화를 포기하고 스스로 노래 한 소절을 부르며 배를 저어 떠나가 버린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면 될 것을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 웅상뉴스
굴원은 지사(志士)의 전형이요, 어부는 은자(隱者)의 전형이다. 지사의 눈에 보이는 세상은 모두가 더럽고 타락하여 함께 하기 어려운 존재들이다. 은자는 세상은 흘러가는 하나의 과정인데, 거기에 나를 지나치게 내세우는 것은 서로에게 도움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그래서 세속의 시시비비에 휩쓸리기보다는 자연의 근원적인 의미를 찾고 음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어부(漁父)’는 고기잡이를 단순히 취미로 삼는 정도를 넘어서서, 불필요한 세속적 시비를 떠나 유유자적하는 속에서 더 깊은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은자적 삶의 태도를 함축하고 있다.
조선시대 윤선도의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는 이러한 어부적 삶의 태도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기러기 떠 있는 밖에 못 보던 강 뵈는구나 / 배 저어라 배 저어라 / 낚시질도 하려니와 취한 것이 이 흥취라 /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 석양이 눈부시니 많은 산이 금수 놓였다 (秋詞 4) ”
우리말의 아름다음을 한껏 보여준 윤선도의 어부사시사! 여기서 낚시질보다는 취흥에 더 탐닉하고 있는 모습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그의 은자적 태도는 다음 구절에 더욱 잘 나타난다.
“物外의 맑은 일이 어부 생애 아니던가 / 배 뛰워라 배 뚸워라 / 漁翁을 웃지 마라 그림마다 그렸더라 /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 사철 흥취 한가지나 가을 강이 으뜸이라 (秋詞 1)”
외부의 사물에 대한 감각적 집착을 벗어난 세계가 물외(物外)의 한가로운 흥을 즐기는 세계이며, 그것이 바로 은자로서, 또한 현자로서 어부가 즐기고 추구하는 세계이다. 어부의 생애는 남 보기는 초라하지만 내면으로는 한없이 충만한 삶이며, 그러기에 그림마다 어부의 삶을 그렸더라는 것이다. 이 책이 주제로 내세운 ‘낚시와 그림’이 기실 ‘어부의 삶’을 풀어낸 것에 다름 아닐진대, 이 책을 쓴 안국진은 바로 자신의 삶을 낚시 그림을 통해 대변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어부의 뜻이 낚시에 있는가, 아니면 다른 그 무엇에 있는가? 송종원은 이렇게 읊었다. “청강에 낚시 넣고 편주에 실렸으니 / 남이 이르기를 고기 낚다 하노매라 / 두어라 취적비취어(取適非取魚)를 제 뉘라 알리오”
여기서 ‘적(適)’이란 ‘마음 편안함’ 정도의 뜻이지만, 좀더 적극적으로 해석하자면 ‘멋’이라고 할 만하다. 마음의 편안함과 더불어 어떤 미학적 가치를 함께 추구함을 의미한다. ‘물고기’라고 하는 외물(外物)에 탐닉하는 것이 아님을 천명한 것이다. 낚시에 관한 수많은 시문들이 그런 뜻을 펼쳤다. 그것이 동아시아적 맥락에서의 낚시이며 어부(漁父)이다.
월산대군의 잘 알려진 시조, “추강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 낚시 드리우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 배 홀로 오노매라”에서 ‘빈 배’는 ‘빈 마음’을 은유한다. 물고기라는 외물에 마음을 비운, 물외(物外)의 깊은 뜻을 노래한 것이다. 유명한 시조시인 김천택은 “영욕이 병행하니 부귀도 불관터라 / 제일 강산에 내 혼자 임자 되어 / 석양에 낚싯대 둘러메고 오락가락하리라” 하고 노래불렀다. 안국진은 낚시에 관한 잡지 발행을 생업으로 삼고, 낚시와 그림에 관한 책까지 내게 되었지만, 그 속마음은 낚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물외의 그 어느 곳을 꿈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옛 은자, 현자들이 강호에 은둔하여 낚싯대에 몸을 실어 세월을 지냈지만 지식은 문사철에 환히 통했고 마음은 우주를 소요하였듯이, 안국진은 그야말로 제일강산에 자기 혼자 임자 되어 독보청천하고자 하는 호연지기의 꿈을 담아 이 책을 저술한 것이 아닐까 하고 나 혼자 생각하며 슬며시 미소 짓는다.
웅상뉴스 기자 / 입력 : 2013년 07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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