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13 / 가을 에세이 `無에 대한 고찰`
웅상뉴스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19년 11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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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남동 어느 한적한 시골 가을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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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비에 나뭇잎이 애잔하게 집니다.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시퍼렇게 한 생을 흔들던 나무들은 이제 삶의 누더기 훌훌 벗어던지고 레테의 강가에 섰습니다. “비워라 비우고 또 비워라. 속세의 삿된 것들 다 내려놓아라”. 사랑도 시련도 다툼도 그냥 다 놓아버려라. “방하착 방하착(放下着)”. 벌거벗은 나무들은 저마다 제 몸 사른 잎새에 경전 한 구절씩 받아쓰고 겨울 앞에 마주서려합니다. 사랑했노라, 아름다웠노라, 그리고 태웠노라,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연민은 마디 같은 꿈입니다. 스산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나(我)란 존재는 있는 것인가요, 없는 것인가요. 헤겔의 말대로 순수는 있는 것이고, 순수는 존재하는 것이고, 있음으로 해서 있는 것인가요? 그 있음 자체의 순수는 없음인가요? 있다는 것의 그 속에는 공허만이 존재할 뿐, 없는 것이나 다름없음이니, 고로 나는 없는(無) 것이니, 빛바랜 사색만이 가을에 젖어 흩날립니다. 몇 해 전 여름 어느 날 서울에서 대학 후배 C교수가, 나의 시의 스승이신 J교수님을 모시고 섬진강 시골집으로 찾아 왔습니다. 조각가인 후배는 중국 칭화대에서 강의 중이었는데 국내전시차 나왔다고 했습니다. J교수님은 대한일보 신춘문예 출신으로<나의 친구 우철동> 이란 시로 시단에 서신 분입니다. 아흔을 바라보는 연세에도 만년소년답게 후학들의 품에 싸여 지내시는 분입니다. 이날도 여섯 명의 여류시인들이 동행했습니다. 섬진강 하류는 언제 봐도 남정네의 넓은 가슴처럼 늠름합니다. 우리는 그 강가에서 재첩국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 날 점심자리에서 후배가 선물이라며 안겨 준 것이 <無>자였습니다. 유리 액자 속에는 큰 “無”자 한 글자가 가부좌 튼 부처님처럼 정좌하고 있었는데 그 위세에 영혼이 다 눌리는 기분이었습니다. “무당이 춤을 추는데 발 네 개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순간에 사라지는 것이 無자” 라며 오묘한 깊이의 주석까지 달아 직접 써서 준 소중한 선물이었습니다. “허허 내가 그리도 속 빈 사람이란 말인가” 웃었습니다. 교수님은 내친김에 시골집 당호를 짓자고 하셨습니다. 모두가 시인 작가들이니 멋진 이름이 지어질 것을 기대하며. 몇 개의 제안된 당호 중에서 무경당(無境堂)이라 짓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無”자를 걸었습니다. 경계가 없는 집,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집, 마음을 비워두면 누구라도 들어와 서로 합일체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비운다는 것은 곧 채움입니다. 바람이 쓸고 간 빈 거리에는 쓸쓸함이, 가슴에는 고독함이 가득합니다. 그래도 비워야 합니다. 그냥 비우라고 했습니다. 존재는 무를 부정하는 것, 불가(佛家)에선 무아(無我)란 자아는 없다고 했습니다. 모든 것은 자신의 경계를 확장하면 하나가 되고 전체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네가 될 수 있고 네가 내가 될 수 있으며 너와 나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없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일심(一心)이라 했습니다. 비 그치고, 나뭇잎 지고, 그 빈자리에 이내 겨울이 찾아들 것입니다. 하얀 겨울은 봄의 씨앗을 가득 안고 뚜벅뚜벅 걸어 올 것입니다. 비록 온기 없는 가슴일지언정 비워 두겠습니다. 가슴 뜨겁게 데우러 오실 그대를 위하여, 우리의 비움의 순수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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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백 약력 한국시인 연대 이사 계간문예 중앙이사 한국문인협회 회원 양산시인 협회 회장 역임 웅상신문 고문 시집: 자작나무 숲에 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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