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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이섭 (‘문화교육연구소田’ 소장,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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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 양산으로 돌아와 연구소를 설립하고, 타지의 문화행정 현장과 지역의 문화예술 현장에서 갖가지 활동을 하며 여러 언론에 기고한 글과 나의 활동이 소개된 글을 모아보니 300여 편에 이른다. 나름 치열하게 동분서주했던 나의 흔적을 숫자로 확인해보며 또 다른 숫자가 보여주는 지역문화의 현실과 숫자 이면에 가려진 허와 실을 짚어보고자 한다.
8년 전, 지방선거를 앞두고 썼던 글 ‘삶과 함께 하는 문화예술교육’과 4년 전, 지방선거를 앞두고 썼던 글 ‘위기(危機)의 양산문화에서 위기(爲己)의 문화를 이야기하다’를 다시 꺼내어보며 여전히 내 글이 유효하다는 사실은 양산 문화의 정지된, 아니 퇴보된 시간을 증명하는 서글픈 지표이다.
당시에도 양산의 문화 현실에 개탄하며 변화를 호소했으나 결국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공감대를 넓히는 길 외엔 답이 없음을 절감했다. 그렇지만,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는 글에서 이미 가독성이 떨어지고, 시정 반대 인사로 분류되는 듯 했다. 그래서 사람들의 실질적인 소리를 모으기 위해 공론의 자리를 만들어보고자 수 차례 애를 쓰기도 했다. 그 또한 허공에 맴도는 허울 좋은 말 잔치로 끝났기에 이후로는 지역의 공연예술인들과 머리 맞대어 행동으로 옮겼다. 지역의 역사적 장소에서 자력으로 공연을 펼치며 지역민들과 공감대의 자리를 확장해서 수년째 진행 해오고 있다.
누군가 판을 깔아주지 않는다면 스스로가 무대를 만들어 자존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었고, 다행히도 동참자들이 있어 또 다른 형태의 지역문화예술 저변과 자생성을 만들어 가는데 일조하고 있다고 자부하며 위안하고 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그 허상과 실상을 반증하고 있다. 양산시의 재정 공시와 예산서를 들여다보면 놀라운 수치들이 발견된다. 유사 지방자치단체에 비해 총액은 많지만, 2026년 양산시의 재정자립도(돈 버는 능력)는 24.1%(4.1%↓)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재정자주도(돈 쓰는 자율성) 역시 48.6%(4.3%↓)로 하락했으며 경남의 평균이 52%인데 비해 양산이 더 낮은 이유는 중앙 의존형으로 재정의 독립성이 약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최근 3년간의 문화예술 예산 추이를 보면 2024년 약 198억 원(1.19%), 2025년 약 262억 원(1.55%), 2026년 약 402억 원(2.21%)으로 급증했다. 관광 예산의 추이를 보면 2024년 약 38억 원(0.22%), 2025년 약 68억 원(0.4%), 2026년 약 124억 원(0.68%) 으로 약 2조 원대의 살림 규모 속 이러한 숫자의 팽창은 글쎄 허상에 가깝다.(*본예산 기준)
여전히 많은 부분이 과거의 유산을 보존하는 데 많이 치우쳐져 있으며 지역 예술인들의 자생적 생태계와 시민 향유권 확대를 위한 기초예술 지원이나 문화예술교육은 ‘양산 방문의 해’를 기점으로 홍보비 인상 폭에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여러 축제, 음악회, 미술대전, 경관개선 등이 신규 편성되거나 증액되었다. 문화관광과에서 분리된 문화예술과 관광은 치적을 드러내기 위한 여러 하드웨어와 축제, 일회성 행사, 그리고 이를 알리기 위한 방송 노출 및 홍보성 예산으로 많이 편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도 상반기에 많이 집중되어 있다.
시민의 소중한 세금으로 꾸며진 화려한 무대와 카메라 렌즈는 과연 시민의 삶을 비추고 있을까? 아니면 어떤 개인의 치적을 비추고 있을까? 공교롭게도 지방선거를 얼마 앞두고 있는 시점이다. 지금 양산의 문화 행정은 시민을 위한 문화가 아니라 지자체장을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한 세트장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4년 전의 글에서 나는 우리들을 위한 위기(爲己)의 문화, 시민 개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가꾸는 문화자치를 염원하며 이야기했는데, 지금은 나(한 사람)만을 위하는 위기(危機)의 문화가 그 실상이지 않을까?
이제 위기(爲己)를 넘어 위민(爲民)의 문화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시민이 특정인의 무대를 꾸며주는 엑스트라 관객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지역문화의 주인이 될 것인가? 진정한 대안은 명확하다. 보여주기식 일회성 예산을 과감히 줄여 지역 예술가와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지속 가능하게 활동할 수 있는 문화 인큐베이팅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문화 조직의 실질적인 독립성을 보장하여 정치적 풍향에 휘둘리지 않는 전문성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위에서 아래로 쏟아붓는 낙수효과(Top-down)가 아니라 시민이 직접 기획하고 생산, 향유하는 분수효과(Bottom-up) 중심의 문화자치를 실현해야 한다. 그 실상은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선거철만 되면 유권자는 갑이 된다고들 한다. 적어도 우리가 주인임을 증명해야 한다. 나만을 위하는 ‘위기(爲己)의 문화’를 멈추고, 시민의 삶을 진정으로 보듬는 ‘위민(爲民)의 문화’로 전환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바야흐로 봄이다. 양산의 거리에 피어날 것은 화려한 미사여구로 장식된 현수막이 아니라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문화적 권리가 꽃피워져야 한다.
“위정자들이여! 이제 양산의 문화시스템에 정직하게 응답하라!” “유권자들이여! 문화자치권을 주인의 시선으로 바르게 행하자!” 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