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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주의 고전과 세태] 최인훈 『광장』-남과 북 모두에 안주하지 못한 어느 이상주의자의 사랑과 좌절

윤현주 전 부산일보 논설위원
웅상뉴스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25년 08월 26일
윤현주 전 부산일보 논설위원
소설의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등장인물도 몇 명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담론은 크고, 많은 생각 거리를 던져 준다.

이명준은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는 월북한 뒤 홀로 서울에서 대학(철학과)을 다니고 있다. 이데올로기에는 무관심한 이명준은 어느 날 경찰서로 불려가 취조와 고문을 당한다. 폭력과 부정부패로 얼룩진 남한 사회에 염증을 느낀 데다 강윤애와의 사랑도 지리멸렬하자 이명준은 밀항선을 타고 북으로 간다. 그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노동신문 기자로 일하게 되지만 진정한 혁명은 없고 혁명의 흉내만 내고 있는 북한 사회에도 실망하게 된다.

그곳에서 발레리나 은혜를 만나 사랑을 나누며 그토록 갈망해 온 ‘밀실’을 발견하게 되지만 전쟁은 둘을 갈라놓는다. 군관 신분으로 징집된 이명준은 낙동강 전선에서 극적으로 은혜를 만나 다시 사랑을 나누지만, 잉태한 은혜는 유엔군의 폭격을 받고 죽음을 맞는다.

포로가 된 이명준은 정전 후 중립국을 선택, 타고르호를 타고 동지나해를 통과하던 중 바다가 ‘푸른 광장’이라는, 뒤따라오는 두 마리의 갈매기는 은혜와 자신의 아이라는 환각 속에 바다에 투신한다.

이 소설은 시종 ‘광장’과 ‘밀실’이라는 이항대립 구조로 전개된다. 광장은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의 집단적·사회적 삶을 상징하는 반면, 밀실은 개별적 존재로서 인간의 독립적·사적 삶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이명준이 남한을 떠나는 것은 이곳의 광장이 닫혀 있거나 부패하는 등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의 광장’에는 폭력만 난무하고 ‘경제의 광장’에는 도둑이 넘쳐나며 ‘문화의 광장’은 부정과 불신이 득실댄다. 남한은 철저히 닫힌 ‘밀실 사회’다.

그래서 북으로 넘어간 이명준. 그러나 그곳에도 진정한 광장은 없었다. 그곳은 잿빛 공화국이었다. ‘사람’을 만나기를 간절히 원하던 명준에게 우연히 발레리나 은혜가 다가왔다. 상처받은 명준은 은혜의 육체에서 새로운 밀실을 모색한다. 하지만 달콤한 밀실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 은혜는 명준 몰래 모스크바로 공연을 떠나 버렸기 때문.

또다시 상처를 입은 명준은 6·25전쟁이 나자 군대에 징집돼 간다. 전쟁이 한창인 낙동강 전선. 어느 날 은혜가 찾아와 극적 상봉을 한다. 둘은 명준이 발견한 산속의 동굴에서 ‘포화 속 밀회’를 탐닉한다. 동굴은 그들에게 ‘원시의 광장’이 돼 준다.

남북 이데올로기에 신물이 난 명준은 이제 진정한 사랑만이 광장이자 밀실임을 실감한다. 하지만 전쟁은 둘의 행복을 오래 두지 않았다. 유엔군의 포탄에 은혜의 육체는 산산이 부서졌다.

거제 포로수용소에 수용돼 있던 명준은 종전 후 남·북 모두의 회유를 뿌리치고 중립국 행을 택한다. 제3국행 배 안에서 명준은 내내 환각에 시달린다. 어미 새 한 마리와 아기 새 한 마리가 그의 주변을 맴돌며 계속 따라왔다. 명준은 이 새들에서 은혜와 배 속 아이의 환상을 본다. 새가 손짓한다. 어서 오라고. 그는 크레파스보다 푸른 바닷속으로 몸을 던진다.

명준이 제3국행을 포기하고 은혜와 아이를 쫓아 바다에 뛰어든 것은 무엇 때문일까? 현실 세계에서는 진정한 유토피아를 발견할 수 없다는 좌절감 때문일까? 아니면 사랑만이 진정한 광장이자 밀실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뜻일까?

사회적 동물이자 개별적 존재인 인간.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그것은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살고자 고안해 낸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그것은 절대적 가치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 복무해야 마땅한 제도일 뿐. 따라서 그 제도를 운영함에 있어 인간에 대한 무한 애정이 없으면 그것은 껍데기에 불과할 것이다.

『광장』이 발표된 지 올해로 65년째. 『광장』은 스테디셀러로 여전히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그것은 아직도 우리 사회가 확 트인 광장과 사적 자유가 확보되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은 아닐까. 정치와 경제와 문화의 광장에는 자유와 평등이 넘실대고 있는가. 개인의 사적 삶은 충분히 보장되고 있는가.

『광장』이 발표된 1960년대나 지금이나 남북 관계는 여전히 한겨울이다. 내란수괴 윤석열이 파면되고 이재명의 국민주권정부가 들어선 지도 벌써 3개월이 돼 간다. 이제는 이데올로기의 덫에서 벗어나 남북 모두 광장과 밀실이 조화롭게 작동하는 행복한 세상이 앞당겨지기를!
웅상뉴스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25년 08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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