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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세상] 죽음을 생각하면 삶이 보인다

정영나 에세이 글쓴이
웅상뉴스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25년 07월 23일
나는 꽤 이른 나이부터 죽음을 생각했다. 아마 초등학생 때부터였지 싶다. 나의 속마음을 주변의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생각은 해보지도 않고 그저 힘들고 속상하고 괴로우면 콱 죽어버리고 싶다고 매번 생각했다. 혼자 감내할 일이라 여겼고 이런 마음을 아무에게도 내보이고 싶지도, 들키고 싶지도 않아서 꽁꽁 숨긴 채 아무렇지 않은 척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 정영나 에세이 글쓴이

그러다 죽음에 대한 인식을 확 바꾼 일이 일어났다. 6학년으로 올라갈 무렵인 봄방학 때였다.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져 큰 수술을 받으셨다. 아빠는 엄마가 수술을 받는다는 사실을 딸들에게 말하지 않으셨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엄마의 상태를 알고자 찾아오신 아랫집 아주머니와의 대화를 엿들으며 그제야 알게 됐다. 엄마가 수술받는 사실조차 숨기신 아빠는 수술받는 날도 집에 있으라고 하셨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병원에 계신 엄마를 처음 마주한 그날이. 엄마는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 계셨다. 밖에서 엄마를 바라보면서 든 생각은 환자 중에서 가장 젊다는 거였다. 나이가 많아야 가는 곳인데, 생사가 오가는 곳인데, 왜 엄마가 그곳에 계셔야 하는 것일까. 어린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그때 엄마가 믿으시는 부처님에 빌었다. 엄마가 건강하게 집에 오게만 해주신다면 절대적으로 바르게 살겠다고. 간절한 기도가 부처님께 가닿았는지 엄마는 빠르게 회복하여 일상을 되찾을 수 있게 되셨다.

나는 바르고 반듯하게 열심히 살았다. 엄마가 죽을 위기를 겪은 이후로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건 아주 불온하다고 여겨 함부로 비유조차 하지 않았다. 누구나 흔하게 겪는 사춘기는 나에게 언감생심이었다. 내가 어긋나고 삐뚤어지면 엄마가 또 아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올바른 길을 걸어가게 했다. 가족 모두에게 큰 시련을 안겨준 일이었지만 나에게는 삶에 어떤 신념과도 같은 것을 얻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성실하게 살아온 삶에 죽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올라오는 일이 일어났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까지 나를 바르게 살게끔 이끌어 주었던 엄마로 인해 신념이 와르르 무너져 버린 것이다. 또다시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엄마는 기적적으로 살아나셨고 3개월간의 치료를 받으셨지만 돌봄이 필요했다. 엄마를 돌봐드리겠다고 한 건 스스로 한 선택이었지만 모든 게 온전히 기꺼울 수만은 없었다. 달라진 엄마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버거웠고 돌봄에서 비롯되는 가족과 잦은 다툼은 지겨웠다. 이 상황이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버텨내기란 불가능해 보였으니 벗어날 길은 오직 한 가지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죽어버리는 것.

그럴지라도 버티고 버텼다. 나는 겁이 많은 나약한 인간이라 죽을 용기도 없었다. 죽을 용기가 없으니, 안간힘을 쓰며 살 수밖에 없었다. 억지로라도 살다 보니 살아졌고 살아있다 보니 좋은 날도 누릴 수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던 시커먼 터널을 걷고 걸으니 드디어 빛이 보이기 시작하는구나 싶었다. 이제는 살만하다고 느껴졌다. 당분간만이라도 삶이 나를 힘들게 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삶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나의 삶에 든든한 버팀목이자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 주었던 아빠가 갑작스럽게 곁을 떠나셨다. 아빠가 없는 암흑과도 같은 세상에서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었다.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서 죽고 싶었다. 죽으면 아빠를 만날 수 있을 테니까. 매일 울면서 자주 죽음을 생각했다.

산다는 건 참 이상했다. 나는 아빠를 잃은 슬픔에 빠져 죽음을 생각하다가도 때가 되면 엄마의 식사를 차리고 약을 챙기고 있었으니. 어느 순간 내가 돌봐드려야 하는 엄마가 오히려 나를 살아가게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니 죽고 싶다는 생각은 점차 누그러들었다. 그러면서 어떻게든 살아가야겠다는 마음이 움트기 시작했다. 잘 살다가 주어진 생을 끝내고 난 뒤, 아빠를 당당하게 만나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이제는 죽음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

최근에 나는 깨달았다. 지금까지 진심으로 죽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느낀 감정과 기분을 어떻게 드러내야 할지 전혀 몰랐던 것뿐이었음을 알게 됐다. 그저 흔하디흔하게 쓰는 ‘죽고 싶을 만큼’이라는 비유를 힘들고 괴롭고 슬프다는 온갖 감정에 가져다가 쓰면서 미숙하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느낀 최고조의 감정들을 가장 극대화해 표현할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었고 이것만 한 표현도 없었다. 지금은 쓰지 않으려 애쓰고 있고 잘 쓰지도 않는다.

나는 여전히 죽음을 생각한다. 깊고 진지하게. 삶이 내게 죽음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도 하지만 죽음을 다룬 책을 읽으면서 죽음을 여러모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혼자만의 생각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독서 모임을 통해 여러 사람들과 죽음의 의미를 교류하고 내가 생각하는 죽음을 정리해서 얘기해 봄으로써 더욱 넓고 깊어질 수 있었다. 이는 죽음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차차 변하게 해주었다. 잘 죽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다 보니 잘 사는 길과 맞닿아 있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다. 죽음을 생각하다 보면 삶이 보인다.

잘 죽고 싶다. 죽음이 내게 직면했을 때 덤덤하게 잘 받아들일 수 있을지 알 수 없고 내게 잘 죽을 수 있도록 시간적 여유가 주어질지도 알 수 없다. 그렇다 할지라도 하루하루 주어지는 삶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려고 한다. 잘 살아가는 게 잘 죽는 것이나 마찬가지임으로. 이런 마음으로 곡진하게 살아가련다.
웅상뉴스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25년 07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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