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산을 경계로 양산 본도심과 떨어진 웅상은, 단순히 지리적으로만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웅상과 양산 본시가지 사이에는 도보로 연결되는 생활권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으며, 산을 넘거나 터널을 지나야만 닿을 수 있습니다. 이런 지형적 단절은 결국 행정, 교통, 의료, 교육 등 시민 생활 기반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행정기관, 광역교통망, 주요 공공시설 대부분이 본도심에 집중되어 있고, 웅상 시민들의 일상은 행정적 연결성보다는 고립에 가깝습니다. 같은 시 안에 속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인접한 다른 시의 외곽 지역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2024년 3월, 웅상지역의 유일한 종합병원이자 응급의료기관이었던 '웅상중앙병원'이 폐업하면서 불균형은 극에 달했습니다. 병원장의 갑작스러운 사망과 누적된 부채, 민간 인수 부진 등으로 결국 병원은 문을 닫았고, 주민들은 응급 상황 발생 시 30분 이상을 달려 부산이나 울산으로 이동해야 하는 불편과 불안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생명을 다투는 긴박한 순간, 거리와 시간은 너무나 잔인한 조건입니다.
임시 대책으로 보건지소가 보건소로 승격되었지만, 응급의료 기능은 여전히 공백 상태입니다. 야간 진료나 응급 수술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시민 불안은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웅상 시민들은 말합니다. "이 정도 인구에 이 정도 세금을 내는 도시인데, 왜 응급실 하나 없어?“
공공의료에 대한 요구, 그러나 돌아오는 건 기다림뿐
웅상중앙병원 폐업 이후 시민단체와 주민들이 앞장서 공공의료원 설립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1만 명 이상이 참여한 서명운동, 청원, 기자회견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진척은 보이지 않습니다. 공공의료원은 보건복지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부지 선정, 타당성 조사, 국비 확보 등 복잡한 절차와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웅상출장소를 통해 배정된 예산은 약 490억 원 수준으로, 주민 생활을 위한 행정과 일부 기반 시설 관리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응급의료 인프라처럼 대규모 예산이 필요한 사안은 양산시 본청의 정책 우선순위와 예산 편성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웅상 주민들이 원하는 방향과 시점에 맞는 추진은 구조적으로 어려운 상황입니다. 하지만, 자치군으로 독립해 지역 중심의 행정을 실현한다면 이런 구조 자체를 바꿀 수 있습니다.
어쩌면 자치군이었다면, 지금 웅상이 겪고 있는 의료 공백 문제에도 훨씬 빠르고 실질적인 대처가 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꼭 공공의료원이 아니더라도, 웅상에 꼭 필요한 중규모 의료시설이나 야간 진료가 가능한 공공의료 인프라를 먼저 만들어내는 선택과 집중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이대로 충분한가? 이제는 구조를 바꿔야 할 때
웅상은 양산시 인구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출장소' 체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지역 특성에 맞는 독립적인 정책 수립이나 예산 편성 권한이 없다 보니 시민들의 요구와 생활 속 문제들은 언제나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됩니다. 이 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어떤 대안도 단기적인 임시방편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할 때입니다. "왜 병원이 없냐"에서 "왜 우리 지역은 병원을 스스로 만들 권한이 없냐"로 말입니다.
응급의료 공백은 단지 하나의 문제일 뿐입니다. 이 공백을 해결할 실질적 권한과 구조를 갖추지 않는 이상, 다음엔 또 다른 공백이 우리를 덮칠 수 있습니다.
"지금 웅상에 필요한 건, 더 나은 구조입니다. 그 첫걸음은 시민들의 공감과 결심에서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