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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상뉴스(웅상신문) |
| 회야댐은 1981년 건설부 인가에 의하여 ADB차관을 받아 1982년 착공하여 1986년 5월 14일 울산시민의 식수 공급을 위하여 건립 준공된 댐이다. 식수원보호를 위한 계획은 댐 건립 계획 때부터 계획되고 있었다. 1986년 7월 20일 건설부 312호 의거 수원보호를 위한 재제를 가하기 시작하였다.
웅상과 웅촌 전역에서는 소규모 농가 창고, 농막, 어떠한 건물도 허가 신청 중단이 되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정신 들어 웅상과 웅촌에서는 해지 투쟁위원회를 결성하여 5여년간 피눈물 나는 투쟁을 하여 1991년 환경보전지역 해지와 수원보호구역계획 취소 통보를 받았다. 투쟁을 처음 시작할 때는 대다수 주민들도 나라와 싸워 어찌 이기느냐 하는 자세였다.
관련 공무원들은 투쟁에 나서는 사람들을 정신이 온당한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그래도 해야된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당시 면장을 맡고 있던 지역 선배님에게 찾아가 환경보전 지역 해지와 수원보호구역지정계획 취소 투쟁에 앞장서자고 논의하니 첫마디가 네 모가지 날아가고 형무소에 갈 일을 자처 하나 되지 않을 일을 시작해 봉변당하지 말고 그만두라고 크게 화를 내었다.
그래도 같이 투쟁에 앞장서자고 간곡하게 사정하니 국가 녹을 먹는 사람이 정부가 하는 일에 협조해야지 반대를 하면 어쩌냐고 그런 이야기 하면 면사무소 근처도 오지 말라며 화를 내며 폭력을 가할 자세로 밀쳐내었다. “예 알겠습니다. 면장 자리 지키는 일이 지역 지키는 일보다 소중하다면 면장 자리 오래오래 보전하세요. 저는 웅상농협 조합장 취임하는 날부터 내 책상 서랍속에 사직서를 써놓고 업무를 보아온 사람입니다.” 하고 나온 즉시 당시 웅상면 이장단협의회장을 맡고 있던 성종문 회장을 조합장실로 오시게 하여 그다음 날 이장단 긴급회의를 소집하여 웅상농협 회의실에서 투쟁운동을 위한 불씨를 지피게 되었다.
추진 기록을 맡았던 대통령 선거인단 차정웅과 양산군의회 의원 김진만은 타계하여 세밀하게 기록된 문서가 어디에 있는지 알수 없어 소소한 부분은 기억 못하지만 시종일관 뜻을 같이하며 행동하였던 처지라 대체적인 부분운 생생하게 기억한다. 당시 이장을 맡았던 분은 용당이장 이승갑, 서창이장 김천호, 주남이장 이명걸, 명곡이장 박인수, 소남이장 차인철, 백동이장 박영배, 평산이장 황창선, 외산이장 김재락, 덕계이장 장기성, 장흥이장 안병근, 매곡이장 서병훈 이런 분들이 기억나고 투쟁 운동에 적극 협조해 주셨다. 당시 내무부국장 후일 경상남도 지사를 역임한 윤한도 수자원공사 박이환, 과천정부청사 이석수, 국회의원 김동주, 거명한 분들의 사무실을 방문하여 본 현안 해결에 협조해 주실 것을 간곡하게 당부하였다.
래왕 과정상 소요된 일체 경비를 전인배가 부담하였다. 그 이후 수많은 회의를 하고 지역봉사단체들과 뜻있는 지역민들을 참여시켜 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투쟁위원장에 전직 대의원 박봉수의원을 추대하였다.
그간 소요된 만만찮은 경비 일체는 웅상농협에서 다 부담하고 향후 추진과정에 소요될 경비를 산출하니 엄청난 금액이었다. 관계 관청 면담 래왕 경비, 군중시위집회(여러차례), 중앙부처 청사 광장집회, 지역집회 회의비 전적 매달려야 할 인원도 여러 사람이 필요한데 이분 들에게 인건비는 지급 못해도 식대와 실경비는 지급 해야 할 사정이라 경비 모금을 하기로 결의하고 모금 계좌를 개설하고 마을별로 이장들이 모금 취지를 1회 방송하고 개별적으로 모금 협조를 구한 사실도 없는데 통장 개설 당일 무기명(당시는 무기명 입금도 가능하였음)으로 세 사람이 500만원씩 1,500만원이 입금되었다.
당시 500만원이면 웅상대로변 좋은 땅 500평을 구입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백만원부터 오천원을 협찬한 분도 있고 일주일 이내에 5천만원이 모금되어 그 이상 모금은 마감했다. 정관계 힘이란 힘은 다 빌리고 집단시위 할 수 있는 방법은 다하였다. 김동주 국회의원이 가장 많은 힘을 보태 정치적으로 해결한 사안이다. 그때 투쟁을 하지 않았다면 웅상은 전역이 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웅상행정구역은 웅상면으로 유지 되었을 것이고, 인구는 1만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전형적인 농촌 고장이었을 것이다.
투쟁 시기의 정권은 전두환 독재 정권이었다. 앞장선 분들의 당한 고통과 모멸감은 형언하기가 민망스러워 상상에 맡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