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윤현주 (전 부산일보 논설위원)
|
|
※ 이번 호부터 윤현주 전 부산일보 논설위원의 ‘고전과 세태’를 연재합니다. 고전을 통해 동시대의 세태를 통찰하는 인문 칼럼입니다.
당신이 절대 권력을 가진 늙은 군주라고 치자. 권력을 자식들에게 양도하고 싶다면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 효심? 능력? 건강?
영국이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한 위대한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리어왕』은 ‘아부’를 선택한다.
고령의 리어왕은 노후를 홀가분하게 보내기 위해 세 딸에게 권력과 영토를 나눠 주기로 결심하고 ‘면접시험’을 실시한다.
“너희들 중에 누가 나를 극진히 사랑하느냐? 성품이 좋고 공로가 큰 딸에게 제일 큰 재산을 양도하겠노라.”
약삭빠른 큰딸 고네릴과 둘째 딸 리건은 온갖 감언이설로 아버지 마음을 사로잡는다. “시력보다, 무한한 공간보다, 자유보다도 더 아버님을 사랑합니다.” 검증할 길 없는 교언영색에 홀딱 넘어간 리어왕. 두 딸에게 기름지고 광대한 영토를 뚝 잘라 지급하기로 한다.
이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딸 코델리아 차례. 왕은 한껏 부풀어 달콤한 고백을 기대한다.
“아무 할 말이 없는데요.” 뭣이라? 깜짝 놀란 왕이 다그친다. “없다고? 다시 말해 보라.”
“불행하게도 저는 진심을 입 밖에 낼 줄 모릅니다. 자식의 도리로서 효성을 다할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저로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고지식한 성격의 막내딸의 나이브한 답변에 실망한 리어왕. 불같이 화가 난 왕은 그녀 몫까지 몰수해 큰딸과 둘째 딸에게 나눠주고 만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코델리아는, 그녀의 정직함에 매료된 프랑스 왕에게 시집 보내진다. 리어왕의 충직한 신하 켄트 백작은 “낮은 음성이라 할지라도 정성만 깃들어 있으면 그 사람의 마음은 빈 것이 아니다”며 코델리아를 옹호하려다 왕의 노여움을 사 해외로 추방된다.
평생 아첨꾼들의 감언이설에 빠져 절대 권력을 휘둘러 온 리어왕. 마침내 효성과 충성심의 참과 거짓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으로 불행은 시작된다.
리어왕의 권력과 재산을 물려받은 큰딸 고네릴과 둘째 딸 리건, 그리고 리건 남편 콘월 공작은 태도가 돌변한다. 갖은 이유를 대며 왕을 학대하고 사실상 권좌에서 내쫓는다. 수모를 참지 못한 리어왕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황야를 헤매고 다니다 실성하고 만다. 자업자득!
황야에 내팽개쳐진 리어왕. 그는 비로소 세상의 진실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한다. 광기 속에서 번득이는 지혜에 눈을 뜬 왕은 막내딸이 진실로 자신을 사랑했음을 깨닫게 되고, 그동안 소홀했던 서민들의 삶도 보인다. 만시지탄!
우직한 충신이지만 역시 지혜롭지 못한 글로스터 백작. 리어왕처럼 그도 효자인 에드거를 사악한 자식인 에드먼드 때문에 내쫓는다. 그는 리어왕을 도왔다는 이유로 에드먼드와 고네릴, 리건에게 찍혀서 눈알이 뽑히고 결국 죽음을 맞는다.
에드먼드를 놓고 연적이 된 고네릴과 리건 자매. 고네릴은 질투에 사로잡혀 리건을 독살하지만 그녀도 남편 알바니 공작에게 불륜이 들통나는 바람에 자살한다.
한편 추방당한 켄트 백작은 프랑스 왕비가 된 코델리아에게 비참한 리어왕의 상황을 알리고, 프랑스 왕은 브리튼으로 군대를 파견한다. 코델리아와 리어왕은 도버에서 극적으로 상봉한다. 리어왕은 막내딸에게 용서를 구한다. 프랑스군은 영국 군대에 패배하고, 리어왕과 코델리아는 포로로 잡힌다.
뒤늦게 죄책감을 느낀 에드먼드는 결투에서 입은 상처로 숨을 거두기 직전, 자신이 코델리아와 리어왕을 살해하라는 명령을 내렸음을 고백한다. 그는 코델리아를 구하기 위해 사람을 급파하지만 그녀는 이미 에드먼드의 지시를 받은 자객에게 살해된 뒤였다.
막내딸의 시신을 안고 통곡하는 리어왕. 노쇠할 대로 노쇠해진 리어왕은 막내딸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숨을 거둔다.
왕과 가족, 그 주변 사람들 대부분의 죽음으로 비극은 완성된다. 이 모든 비극 사슬의 최정점에는 리어왕의 어리석음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욕망과 질투가 비극에 박차를 가했다.
한 나라의 후계 구도를 ‘효성’이라는 지극히 사적 도구로 결정하려 한 것부터 잘못됐다. 거기다 진짜 효성과 가짜 효성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늙은 지도자의 아둔함까지.
권력은 태생적으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사실! 최고 지도자일수록 권력 행사에는 반드시 절제와 지혜가 필요하다.
작금의 비상계엄과 탄핵 사태를 생생히 목격하면서 우리는 어리석은 권력자의 욕망과 오판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현실에서 알게 됐다. 6월 3일 시행되는 조기 대선에서 사리 분별이 분명하면서도 민주주의자적 면모를 갖춘 인물을 선출해 국가 재도약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
 |
|
ⓒ 웅상뉴스(웅상신문)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