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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상뉴스(웅상신문) |
| 봄이 꽃의 계절이라면 여름은 나무의 계절이다. 그리고 가을은 단연코 단풍의 계절이다. 금수강산(錦繡江山), 우리나라는 말 그대로 비단에 수를 놓은 듯 아름다운 산천을 가진 나라다.
이 산천에 구분이 분명한 계절을 가졌으니 사계(四季)의 어느 계절이 아름답지 않을까. 입동을 지나 지금은 겨울로 가는 길목이다. 겨울이 깊숙이 다다르기 전, 계절 하나를 떠나보내는 아쉬움을 안고 늦가을 마지막 단풍 나들이를 했다. 가을의 화려한 흔적을 미처 떨구지 못하고 있는 가까운 곳 경주를 향했다.
경주의 봄날은 보문호 주변 벚꽃의 화려함으로 극치를 이룬다. 그리고 가을은 단풍으로 또 한 번 그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보문호 둘레 벚꽃 나뭇잎들이 붉게 물들고 그 풍경 속으로 간간이 서 있는 은행나무도 노랗게 이파리가 익어 그 풍경을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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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사에서 감포 바다로 나가는 길은 2014년 개통한 토함산 터널을 이용하면 이동이 쉽다. 하지만 이 가을 단풍에 흠씬 취하려면 토함산 석굴암 가는 길 불국로를 올라야 한다. 길 초입 오른쪽에 한국문학의 거봉인 김동리 선생과 박목월 선생의 문학관 ‘동리목월문학관’이 있다. 문학관을 지나 연달아 이어지는 고불고불한 길을 오르면, 마치 환상적인 파스텔화 같은 가을이 모자람 없이 온전히 내려앉은 풍경을 만난다. 아직 불국로의 단풍을 본 적이 없다면 내년 가을에는 ‘꼭 가보시라’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길의 정상 석굴암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난 감포 방향 길을 내려오다 풍력 발전단지에 들러 커다란 바람개비 발전기를 가까이에서 보게 되는 일 그것은 덤이다.
경주 불국로의 단풍에 버금가는 가을풍경을 품어 안은 곳이 세계문화유산인 불국사 경내이다. 경주 불국사를 모르는 이가 있겠는가. 석가탑 다보탑이 있고 자하문으로 드는 청운교 백운교, 안양문으로 오르는 연화교 칠보교 외에도 석굴암 등 많은 국보와 보물이 산재해 있는 사찰이다. 불국사를 이야기하면 먼저 떠오르는 기억이 ‘수학여행’이다. 1960대 부산의 한 초등학교 5학년 때 떠났던 수학여행, 그때 수학 여행비가 500원이었다고 기억한다. 형편이 어려워 함께 못하는 친구들도 더러 있었던 어려운 시절이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동해남부선 부전역에서 기차를 타고 지금은 폐역이 되어 버린 불국사역에서 내렸다. 그리고 시오리 됨직한 신작로 자갈길을 검정 고무신과 실내화 같은 운동화를 신고 걸어 수학여행지인 불국사를 탐방했다. 그리고 거친 토함산 산길을 올라 석굴암도 갔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에는 영양 상태가 열악한 빈곤 국가의 아이들이었음에도 먼 길을 걷고 700미터 고지의 산도 올랐다는 사실에 경이로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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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사 단풍 나들이를 위해 주차장에 차를 두고 들어선 불국사 후문, 들머리에서 불이문까지 줄지어 선 아기단풍은 갈바람이 지날 때마다 짤랑짤랑 붉은 손바닥을 흔들어 대고 있다. 불국사의 단풍을 제대로 즐기려면 정문 쪽으로 들어서야 한다. 일주문 앞 단풍 숲을 지나 해탈교에 서면 반야연지의 단풍 풍경을 만나게 된다. 반야연지에 반영으로 내려앉은 단풍은 말을 잃게 할 만큼 환상이다. 눈도 가슴도 호강하는 순간이다. 그 풍경을 렌즈에 담으려 해도 주변 관광객이 많아 제대로 된 단풍 사진 한 장 얻기가 쉽지 않다.
천왕문 반야교를 지나면 청운교 백운교를 만나게 된다. 불국사 사찰 건물이다. 청운교 백운교는 오래전 수학여행 때에는 계단에 줄지어 앉아 사진을 찍었던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문화유산 보호를 위해 오를 수 없는 계단이다. 불국사 전각 주변 색색의 물빛으로 곱다. 불국사 전각의 공포와 대들보에 아른대는 것이 단풍인 듯 단청인 듯 햇살 머금은 단풍이 기왓골과 어우러져 그 자태가 멋스럽기가 그지없다. 이때가 지나면 이렇게 멋들어진 늦가을 정취의 절정이 이별의 화려한 전주곡이 될 것이다. 그렇다. 곧 나무들은 비단 채색옷을 벗고 동안거에 들 것이다. 이별이 서툰 인간들은 계절의 틈새에서 허허로운 마음만 바쁠 것이다. 봄날 꽃보다 아름다운 단풍잎을 우수수 바람에 날리면서 지금 가을이 떠난다. 이 늦가을을 누군가에게 선물하며 하고 싶은 말 ‘불국사 단풍을 보신 적이 있나요? 지나는 바람도 붉게 취해 비척대는 걸음으로 허공을 걷는답니다.’
무어라 말씀하셨나/ 돌아서 옆을 보면/ 화들짝 붉히는 낯익은 얼굴// 무어라 말씀하셨나/ 돌아서 뒤를 보면/ 또 노오랗게 흘기는 그 고운 눈빛// 가을 산 어스름 숲 속을 간다/ 붉게 물든 단풍 속을 호올로 간다// 산은 산으로 말을 하고// 나무는 나무로 말하는데/ 소리가 아니면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 하루해는/ 설키만 하다// 찬 서리 내려/ 산은 불현듯 침묵을 걷고/ 화려하게 천자만홍(千紫萬紅) 터뜨리는데// 무어라 말씀하셨나/ 어느덧 하얗게 센 반백의/ 귀머거리/ 아직도 봄 꿈꾸는 반백의/ 철딱서니. 오세영 시 [단풍 숲 속을 가며]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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