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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기행소설/ 꽃분홍빛(1)

파타고니아 토레스 델 파이네의 세자매봉을 배경으로 쓴 소설
웅상뉴스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19년 10월 07일

ⓒ 웅상뉴스(웅상신문)
오후 늦게 그는 캠프장에 도착했다. 거대한 거인처럼 버티고 있는 설산과 탑처럼 뾰족하게 솟아 있는 세자매봉이 바로 올려다보이는 곳에 있는 캠프장은 적막하고 을씨년스러웠다. 사무실과 화장실과 샤워장인 듯한 건물의 주변은 나무들이 우거져 있고 텐트도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아까 매표소에서 긴 줄을 이루고 있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그는 나무 밑에 배낭을 내려놓으면서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본다. 민둥산인 산에는 푸르스름한 색이 옅게 깔려 있고 푸른 하늘은 안데스산맥을 따라 길게 늘어선 설산과 뚜렷한 선을 만들고 있다. 그 모든 것이 어우러진 자연은 광활하고 장엄했다.


잠시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사무실에 갔다 올게.

그는 사뭇 경이로운 눈빛으로 산 쪽을 쳐다보고 있는 강우에게 말한 뒤 사무실로 향했다. 서너 사람만 들어가면 꽉 찰 정도로 좁은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계산대에는 텐트에 사람을 안내해 주고 오겠다는 메모가 놓여 있다. 일단 밖으로 나온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무실 옆 대형 텐트를 살짝 들여다보니 긴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다. 인터넷으로 검색할 때 파티할 수 있는 공간이 있던데, 여기인가. 그러고 보니 근처에 사람들이 제법 앉을 수 있는 긴 테이블과 의자도 놓여 있고 샤워실과 수돗가에 뜨거운 물도 콸콸 나왔다. 나름대로 캠핑하는 사람들을 위해 신경을 쓴 흔적이 보였다.

대한 거인처럼 버티고 있는 설산
탑처럼 뾰족하게 솟아 있는 세자매봉
캠프장은 적막하고 을씨년스러웠다.
건물의 주변은 나무들이 우거져 있고
텐트도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 웅상뉴스(웅상신문)
나중에 밤이 되면 기온이 더 내려갈 건데, 텐트에서 자도 될까요?
배낭에서 파카를 꺼내 입는 그에게 강우가 말했다. 생각보다 날씨가 쌀쌀했다.
침낭이 있으니까 아마도 괜찮을 거야.
그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십여 분이 지나서야 나타난 직원은 사람들을 안내해 주고 침낭을 갖다 주느라 좀 늦었다면서 앞장서서 걸었다. 나무 사이로 좁은 길이 나 있고 3분 정도 걸어가자 야영장이 나타났다. 나무 밑이나 공터에 처져 있는 텐트는 서로 거리가 뚝 떨어져 있었다. 그가 배정받은 텐트는 사무실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고 바로 앞엔 나무 테이블과 의자가 있었다. 강우는 약간 오르막의 평지에 납작 엎드려 있는 텐트를 배정받았다. 일단 나무 테이블과 가까이 있는 그의 텐트에다 배낭 속의 물건들을 모아 두기로 하고 강우와 그는 배낭에서 장비렌탈 가게에서 임대한 코펠과 버너, 스틱과 프라이팬, 컵, 종이컵, 수저 세트, 건전지, 랜턴, 쌀, 라면, 김치, 참치통조림, 감자, 밑반찬 등을 꺼냈다.
쌀은 제가 씻어올게요.
강우는 코펠에다 쌀을 담고는 잽싸게 걸어갔다. 나무 사이로 사라지는 강우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가슴 한쪽에서 짠한 기운이 올라왔다. 약 3년간 매달렸던 공무원 시험을 포기하고 몇 년간 사귀던 여자친구와도 헤어진 아이. 공무원 시험을 접고 여기저기 일자리를 알아보던 강우가 해외 취업을 해야겠다고 했을 때 그는 알아서 해라고 했다. 뉴욕 인근 도시인 뉴저지에 있는 회사에 취직한 강우는 1년 계약직이지만 일을 잘하면 몇 년짜리 비자를 받아서 연장할 수도 있고 회사에서 필요하다 싶으면 영주권도 준다고 말했다. 그래? 그럼, 열심히 해 봐. 한국에서는 별로 할 것도 없는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은 아니었다. 그것이 말처럼 쉽나. 후회가 밀려왔다. 공무원 시험준비는 학교 다닐 때도 공부에 크게 관심이 없던 강우가 하는 게 아니었다. 알면서도 강우가 원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정말 강우를 생각해서 그랬을까. 다른 것은 없었을까.

얼굴이 마주치자 그들은 그에게 미소를 지었다.
친밀감이 느껴지는 미소였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미소를 보내는 저 여유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이 대륙의 사람들은 눈길만 마주쳐도 활짝 미소를 짓는다.
그도 미소를 지었다.
입 주변의 근육이 굳어졌는지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았다.
그들처럼 자연스럽게 웃고 싶었다.


그는 감자의 껍질을 벗겨서 네모나게 썰고 코펠에다 물을 적당히 부은 뒤 된장과 고추장을 풀었다. 숟가락으로 간을 맛보고 있는데, 새 두 마리가 주변에서 얼쩡거렸다. 점점 가까이 온 새는 그의 발밑에서 부리를 땅에 대고 쪼았다. 사방은 조용했다. 새의 움직임도 버너에 불을 붙이는 그의 손길도 조용했다. 수억 년 전 지각의 활동으로 산과 바위가 솟아오르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조용함이랄까. 커다란 배낭을 멘 젊은 남녀가 산에서 내려왔다. 남자는 머리가 어깨까지 치렁치렁 내려와 있고 여자는 긴 머리를 뒤로 넘겨서 고무줄로 묶고 있다. 얼굴이 마주치자 그들은 그에게 미소를 지었다. 친밀감이 느껴지는 미소였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미소를 보내는 저 여유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긴 이동 시간 그가 알게 된 것은 이 대륙의 사람들은 눈길만 마주쳐도 활짝 미소를 짓는다는 것이었다. 그도 미소를 지었다. 입 주변의 근육이 굳어졌는지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았다. 그는 집중해서 근육을 최대한 움직였다. 그들처럼 자연스럽게 웃고 싶었다.
나무 테이블 모퉁이에 둔 휴대폰이 진동했다. 액정에 뜬 이름을 보면서 그는 잠자코 숨을 들이마셨다.
도착했어요?
아내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지금 강우랑 같이 있나요?
아니.
그는 짧게 끊어내듯이 말했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혹시, 나한테 할 말이 없어요?
아내가 물었다.
없어.
정말 없어요?
그래.
그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알았어요.
아내가 전화를 뚝 끊었다. 그는 휴대폰을 손에 쥐고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정말 아내한테 하고 싶은 말이 없나. 그때 강우가 왔다. 약간 상기된 얼굴이었다.
아버지, 아까 오면서 본 건물 있었잖아요. 그것이 호텔이라고 하네요.
강우는 직원에게 들었다면서, 마치 대단한 정보라도 알고 온 듯 호들갑을 떨었다. 그리고 호텔에는 레스토랑과 커피숍, 편의점이 있다면서, 휴대폰 배터리 충전도 하고 뭐 좀 사러 가겠다고 말했다.
해가 지면 금방 어두워질 건데.
그가 구름에 들어가서 보이지 않는 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빨리 갔다 올게요.
그래. 그동안 밥하고 있을게.
네.
ⓒ 웅상뉴스(웅상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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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는 말이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걸어갔다. 강우가 뭐 좀 사겠다는 것은 아마도 담배일 것이다. 강우는 틈만 나면 담배를 피웠다. 그는 그것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도 담배 애호가이기 때문이다. 한때 5년간 담배를 끊었다가 다시 피웠고 1년 전, 다시 담배를 끊었다. 담배 생각이 간절하게 났다. 가슴 밑바닥에 박혀 있는 감정을 뿌리까지 뽑아서 담배 연기와 함께 내뿜고 싶었다.
그는 찌개를 다 끓인 뒤 밥을 안쳤다. 얼마 되지 않아 코펠에서 하얀 김이 나기 시작했다. 버너의 불을 낮추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 코펠 뚜껑을 열어 밥이 어느 정도 되었는지 확인했다. 모락모락 김이 올라왔다. 곧이어 하얀 쌀밥이 눈으로 들어왔다. 밥은 윤기가 잘잘 흐르고 찰져 보였다. 마치 밥알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생기가 감돌았다. 구수한 밥 냄새가 코끝으로 몰려왔다.
밥 냄새가 제일 좋아요.
문득 숙희가 떠올랐다. 그녀는 구수한 밥 냄새를 맡고 있으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고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베트남의 땅끝 마을인 까 마유에서 온 그녀의 원래 이름은 보탄투이다. 나이가 열다섯 살 많은 박씨 문중의 남자와 결혼을 한 그녀는 10년 동안 중풍에 걸린 시아버지를 정성껏 모셨고 2명의 아이를 낳아서 키우고 있다. 연년생인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때 그녀는 돈을 벌어서 미용기술도 배우고 조금이나마 생활에 도움이 되겠다는 야무진 생각으로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녀가 그의 식당에서 일하게 된 것은 약 2년 전으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난 뒤 출근했고 식재료를 다듬고 밥도 하고 제일 고참 아줌마가 반찬 만드는 것을 도왔다.
왜 그렇게 밥 냄새가 좋아요?
한 번은 그녀에게 물었다. 그날, 그는 주방의 한쪽에서 농수산물 시장에서 사 온 배추를 소금에 절이고 있었고 그녀는 가마솥에 밥을 짓고 있었다. 그의 식당은 가마솥에다 밥을 지었고 그것을 전기밥솥에다 옮겨서 보온했다. 그러니까 그날도 그녀는 하얀 쌀밥을 전기밥솥에 담으면서 밥 냄새가 너무 구수하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어렸을 때 밥을 배부르게 먹는 것이 소원이었어요. 농사를 지어도 집에 쌀이 없어요. 다 팔아도 먹고 살기 힘들었어요. 한국에 와서 밥을 먹고 사니까 너무 좋아요. 밥 냄새를 맡고 있으면 힘이 저절로 생겨요. 밥은 사람이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잖아요. 원동력이잖아요. 그리고 돈을 벌게 해 주고요. 그래서 너무 좋아요.
숙희는 또박또박 한국어로 말했다. 한국에 오자마자 한국어 공부를 시작한 그녀는 지금은 웬만한 글은 읽을 수 있고 누군가 교정을 봐줘야 하지만 긴 글도 쓸 수 있다고 했다. 사실, 주방일은 고된 노동이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늘 생기가 넘쳤고 잘 웃었다. 무슨 일을 시켜도 생글거리는 그녀의 웃음은 주변 사람들의 기분을 밝게 해 주고 주방의 침침한 기운들을 몰아냈다.
 <다음호에 연재>


↑↑ 김서련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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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상뉴스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19년 10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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