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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 웅상과 서양산을 보듬고 하나로 아우르다

양산문화원 향토사연구소 조사단,'원효의 발자취' 찾아서 매주 토요일 기초조사
현장 답사 중 원효성사가 주석했던 성지인 발굴

김경희 기자 / 입력 : 2019년 08월 22일

ⓒ 웅상뉴스(웅상신문)
<삼국유사 제5권 피은 제8>에 보면 원효는 낭지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초장관심론과 안신사심론을 지어 바쳤다. 일찍이 구름을 타고 중국 청량산을 오가는 신통력으로 화엄경 보살 제10지의 이름이 법운지인데 낭지법사가 구름을 탄 것은 불타가 삼지를 구부리고 원효가 백신을 나뉜 것과 같다. 원효가 낭지법사로 부터 가르침을 받기 위해 영축산을 찾은 때는 언제일까.


양산문화원 향토사연구소(소장 김용규)는 2019년 사업으로 <천성산과 원효의 발자취>를 주제로 원효의 발자취를 찾는 기초조사활동을 시작했다.

김용규 조사단장은 “웅상 사람들은 웅상이 양산지역의 소외된 지역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천성산은 웅상과 양산을 아우르고 있다. 천성산 문화를 통해서 하나가 된다”면서 원효는 양산에 오래 있었다. 그의 일대기가 천성산 문화로 거듭나서 양산과 웅상을 보듬고 하나가 되자는 마음에서 이 사업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조사단원은 김용규 단장을 비롯해서 김상삼, 김성곤, 김재동, 박극수, 박순천, 서중기, 안정의, 이상호, 이여울, 정웅, 지영태 등 12명으로 매주 토요일 원효의 발자취를 찾아서 현장답사를 하고 있다.

5월 18일이었다. 김 단장을 비롯한 조사단은 첫 답사를 범어사에서 시작했다. 그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원효가 15세 때, 태어난 집을 초계사라 하여 사찰을 창건한 이후에 창건한 사찰이 바로 금정산 범어사 원효암이었다.

김 단장은 “원효가 기장 불광산 척판암에서 척판구중의 이적설화를 나투고 난 이후 범어사 부근의 작 사찰(지금의 원효암)에서 수행하고 있었다. 당나라 산둥반도 법운사에서 <해동원효사미>라 적힌 판자를 보고 찾아온 대중들이 원효와 처음으로 만난 자리가 금정산 범어사 원효암으로 보고 있다”고 말 했다.

이러한 의미를 부여하고 첫 모임을 금정산 범어사에서 가진 조사단은 교무국장 범종 스님과 함께 원효와 관련한 간담회를 가지고 범어사 성보박물관을 둘러보았다.

범어사 원효암에는 부산시 유형문화 재 제11호로 지정되어 있는 <원효암 동편 삼층석탑>이 있고 부산시 유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된 <원효암 서편 삼층 석탑>과 <원효석대>가 현존하고 있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원효대사 진영은 범어사에서 소장된 원효의 초상화로<해동초조 화엄강사 원효대화상 진영>이 새겨져 있다.

↑↑ 미타암 굴법당
ⓒ 웅상뉴스(웅상신문)
천성산 미타암 굴법당에서 원효의 숨결을 찾다


5월 25일 조사단은 천성산 미타암 굴법당에서 원효의 숨결을 찾았다. 미타암 (주지 동진스님)은 천성산중턱에 위치하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 통도사의 말사로 경상남도 전통사찰 제18호로 지정되어 있다. 미타암 굴법당은 원효와 미타사상이 담긴 석조아미타여래입상이 있다. 원효의 미타신앙과 대중교화를 기원했던 기도도량이 바로 이 미타암 법당굴로서 당나라 대중들과 함께 하였다는 천성산 89암자 중 하나 이며, 아미타여래에 대한 기도처로 보 물 제998호로 지정되어 있다.

미타암 굴법당에는 다섯 비구가 있었 는데 아미타불을 엄송하면서 서방정토 극락세계를 염원했다. 이 불상과 관련하여 <삼국유사 포천산 오비구조>에 다섯 비구의 이야기와 삼국유사의 서방정토 극락세계로 날아간 설화는 미타암 굴법당 석조아미타래여래입상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법이여! 본래 법이 없음이로다.
없음이여! 또한 법이 없음이로다.
… 중략 …
문: 어떤 것이 불법 대의 입니까?
답: 일체 명상을 여윈 것이니라.
문: 어떤 것이 명산을 여윈 것입니 까?
답: 구구는 팔십일 이니라.


조사단은 굴법당 옆에 세워져 있는 금석문 새겨진 글을 바라보았다. 글은 바로 구한 말 우리나라의 선사상을 부흥시킨 경형스님의 제자 혜월 혜명선사의 오도송의 일부였다.

대둔사지 답사에서 천성산 새 역사를 쓰다

천성산 89암자 중에는 통도사 말사인 내원사가 있다. 1300년 전 선덕여왕 때 원효 창건의 역사 속에서 선해일륜의 동국제일선으로 비구니 승려의 마음 고향, 법기신앙의 참선도량으로 발전해 왔다. 내원사 이용 주지스님은 송고승전의 문헌을 인용하여 설하기를 원효가 해동사미구중척판의 이적을 나툰 이후 당나라에서 해동사미를, 원효를 찾아온 대중들을 데리고 원적산 게곡에 이르렀을 때 한 노인이 홀연히 나타나 원효를 맞이했다는 곳에 내원사 산령각을 건립했다고 한다.
천성산 89암자가 있었던 터에 현존하는 사찰은 미타암(굴법당), 안적암, 내 원사, 원효암, 노전암이 있고 특히 노전 암 뒤편에 대둔사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조사단은 6월 8일 아침, 김밥 한줄씩 허리춤에 차고 천성산 성불암 계곡을 따라 집북재(중봉)에 올랐다. 집북재에서 노전까지는 4.2km의 거리다. 자연의 신비를 품은 내원의 계곡과 공룡능선의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천성산 계곡의 자연유산이다.

그리고 조사단은 노전 대웅전에서 주지 능인스님을 만났다. 설화와 원효에 대한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가운데 대둔사지가 노전에서 약 300km 떨어진 곳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 지금은 폭우로 인해 지형의 변화와 버려진 성지가 되어버린 대둔사지다. 약 400여 마지기 (약8만평)의 전답이 있었고 그 가운데 대둔사지가 있었다고 하는 놀라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조사단은 현지를 찾아갔다.

↑↑ 대둔사지에서
ⓒ 웅상뉴스(웅상신문)
↑↑ 노전암 능인스님과 간담회
ⓒ 웅상뉴스(웅상신문)
크고 작은 바윗돌이 그대로 있고 전답을 이루기 위해 돌로써 언덕을 쌓았던 흔적이 사찰이 있었다는 암시를 주었다. 그 시대적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대둔사지의 정황은 그들의 가슴에 와 닿았다. 천성산 89암자 중심에는 대둔사가 있고 대둔사는 원효성사께서 주석했던 성지다. 그러나 그 성지는 버려진지 오래되었고 자연과 함께 흘러온 세월 속에서 조사단은 그곳이 대둔사지 임을 밝히기로 했다.

김용규 단장은 ”대둔사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2차 조사를 통해 밝혀져야 할 과제로 대둔사지 현지에서 수거한 기왓장을 양산시립박물관에 의뢰했다. 대둔사지에 대한 정황이 긍정적으로 평가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자료수집을 해야한다“며 척판암 <해동사미구중척판>의 이적설화에서부터 천성산 유래가 되기까지 많은 세월이 소요되었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천성산의 곳곳에 원효의 발자취가 있고 범어사 원효암에서 웅상을 지나 원적산(현 영산대학교 뒤편)을 올라 원효와 그 일행이 넘어왔던 공룡능선 자락 대둔사지가 있는 계곡과 한듬 마을을 지나 한듬계곡을 따라 내원사 입구에 당도했을 때 현 산령각이 있는 곳에서 당시 원적산의 산신할머니로부터 화엄벌로 가는 길 안내를 받은 것으 로 추측했다,

천성산에 89암자가 있었던 곳곳에는 토굴이 있고 비구니 스님이 많이 수행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떠나고 난 뒤에 자연 소멸되면서 지금은 그 흔적마저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조사단은 노전 주지 능인스님과의 간담에서 내원사 산령각에 모셔진 산신할머니의 영험이 천성산 곳곳에 비구니 스님들을 불러 들이게 된 이유를 알았다.

그 다음 토요일, 6월 22일 조사단은 울주와 양산의 경계 정족산을 사이에 두고 좌청룡, 우백호의 지형 형태를 이룬 울산시 웅촌면 고연리에 있는 울산광 역시 기념물 제 43호 운흥사지를 찾았다. 옛 운흥사는 신라 진평왕 때 원효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조선시대 운흥사는 불교경판의 간행으로 유명하였으며 1672년부터 1709년까지 많은 불경이 간행되었다. 운흥사지 목판부에서 나온 기록을 정리하면 16종 673관으로 이 목판은 현재 양산 통도사에 보관되어 있다.

조사단은 풍수지리가 박춘호 선생을 대동하고 운흥사지를 답사하면서 원효 와 관련한 해설을 들었다.
웅촌 검단리에서 정족산 자락 깊고 수려한 계곡을 들어서 운흥사지가 있고 크고 작은 건물지(발굴도형도)를 볼 수 있었다. 운흥사의 경내, 석탑이 있었던 곳에 운흥사지 부도(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호)가 있고 이는 신라시대 에 창건하여 폐사연도가 분명하지 않은 운흥사 고승들의 사리를 안치한 것으로 누구의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모두 7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 중 2기는 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어 인근 관음사에 있다. 마을 입구에 1기, 운흥계곡 하천변에 1기, 엣 절터에 2기 및 운흥사와 관련된 수조 등 각종 부재와 오랜 세월 동안 흩어져 있는 것을 한 곳으로 모아 정비하였으며 나머지 1기는 어디에 있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는 기록을 볼 수 있었다.

↑↑ 척판암
ⓒ 웅상뉴스(웅상신문)
원효가 다녀간 그 길 위에 서다

젊은 시절, 원효는 의상과 함께 당나라에 가서 수학하고자 요동까지 갔지만 고구려군에게 첩자로 몰려 갇혀 있다가 겨우 풀려나 신라로 되돌아왔다.

십년 후 두 번째로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가기 위해 백제국 항구로 가던 도중 하룻밤을 지내게 된 토굴에서 갈증이 나서 토굴 속에 고여 있는 물을 마셨는데 물맛이 매우 달고 시원했다. 그러나 아침에 깨어나서 보니 토굴이 아니고 오래된 공동묘지였고 물을 마셨던 그릇은 바로 해골이었다.

이를 계기로 대오한 원효는 발길을 되돌려 신라로 돌아왔다. 대오한 후 미친 사람이나 거지 행세를 하면서 거리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민중 포교에 들어갔다.
이후 요석 공주와 인연을 맺어 설총을 낳았고 그 후 파계했다. 파계한 후 속복으로 갈아입고 스스로 소성거사라 하면서 천촌만락을 돌아다니면서 노래하고 춤추며 교화하였다. 이로 인하여 가난한 사람, 어린이들까지도 모두 부처님의 이름을 알고 염불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원효의 대표적인 사상은 인간의 원래 본성인 일심으로 돌아가자는 일심사상, 모두가 실재의 모습으로 돌아가면 하나로 만난다는 화쟁사상, 모든 것에 집착을 버리는 무애사상이다. 말년에는 황궁에서 <금강삼매경>을 강설했으며, 십문화쟁론을 찬술했다. 분황사에서 화엄경, 사십회향품소를 지었다. 신라 신문왕 6년 70세의 나이로 혈사에서 입적했다. 입적 후 아들 설총이 원효의 유해를 화장하여 분황사에 모시고 추모했다. 분황사는 문무왕 때 원효에 의한 독창적 불교를 해동종이라고 부른 일이 있는데, 이는 또한 분황종이라고 할만큼 분황사와 원효와 깊은 인연이 있는 곳이다.

조사단은 최부자집 주변의 옛 월성 궁 궐터와 월정교 아래 유교가 있었다는 곳에서 <원효가 다녀간 그 길 위에 서 다>라고 하는 해설문을 읽었다.

원효가 어느 날 거리를 누비며 ” 누가 자루 빠진 도끼를 허락하려는가. 나는 하늘을 받칠 기둥을 다듬 고자 한다,라며 노래를 불렀다.
사람들은 아무도 그 노래의 의미를 알지 못했는데 태종무열왕이 그 노래의 의미를 알고 말햇다.
“아마도 스님이 귀부인을 얻어 훌륭한 아들을 낳고자 하는구나. 나라에 위대한 인물이 있으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없지”
… 중략 …
원효의 흔적을 찾아서 기초조사활동을 하고 있는 양산문화원 향토사연구소 조사단의 현장답사는 올해 말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Replica Watches


양산문화원 향토사연구소조사단 자료제공
김경희 기자

김경희 기자 / 입력 : 2019년 08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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