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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상사람들의 삶을 말하다(51)-상

수난을 거듭하며 관리되어온 토지
웅상뉴스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18년 12월 04일
인간이 생명을 부지하기 위하여 집단이 생겨난 것이다. 개인이나 가족 단위로서는 힘이 미약하여 집단에 의하여 공동으로 양식거리를 구하고 구한 양식을 다른 집단에게 탈취당하지 않고 지키며 먹을거리가 떨어지면 타 집단이 확보한 양식을 탈취하기 위한 과정에서 결투를 하게 되고 결투과정에서 생명을 빼앗고 빼앗기는 일이 예사롭게 발생하다보니 집단을 이루어 무장을 하게되고 생존투쟁인 전쟁이란 불가피한 수단이 생겨난 것이다.

전쟁을 위하여는 더 많은 무리가 필요했기에 더 큰 무리를 형성하기 위하여 끝없는 전쟁이 이어졌던 것이다. 우리지역이 중앙정부의 체계적 지배하에 지방자치권으로 다스려지기 시작한 때는 지역 호족장이었던 박윤웅이 지역민들과 더불어 고려개국에 공을 세우게 되어 고려개국 공신이 되고 조정에서는 웅상지역과 울산일대를 흥려부로 지정하고 식읍지로 정하여 조세를 거두어들여 나라에 바치고 자치 운영하도록 한 것이 행정체계의 첫 시발이 된 것이다.

왕조시대는 국가 모든 재산이나 생명도 왕의 힘과 뜻에 의하여 지배되었다. 고려와 조선시대에 입안이라는 부동산 증명제도가 있었으나 근대적 등기제도는 1906년에 공포 시행되었다.

1893년 (고종30년)부터 지계와 가계라는 제도가 있었으나 널리 사용되지 못하였다. 왕조시대는 모든 재산과 생명을 국유화 아닌 왕의 사유화처럼 관리 되어왔다. 왕권의 특권을 더 보장하기 위하여 나라에서 봉산을 지정하여 벌채를 금지하고 관리해왔다. 왕이나 왕비의 묘를 보호하고 포의 (태아를 싸고 있는 막과 태반)를 묻기 위하여 정해진 태봉봉산 황실이나 국가 관리기관을 짓기 위하여 황장목을 생산하기 위하여 정한 황장봉산 수군의 배를 만들기 위한 목재를 생산하기 위하여 정한 수군봉산 밤나무 재목을 생산하기 위하여 정한 율목봉산 1436년(세종18년)의 기록을 보면 태실 수요군은 능실규정에 따라 봉산가까이 주거를 금하게 하고 3년마다 관원을 파견하여 순찰하게 하는 한편 잡목을 제거하고 1734년 (영조10년)에는 봉산에 관한 그간의 교령을 정리하여 신보수 교집록을 편찬하였고 봉산지역의 산 위로는 화전과 개간을 못하도록 하고 벌채 금지 화기 금지 등을 밝혀두고 이를 어기면 엄벌에 처하였다.

황장목이란 소나무 나이가 수 백년 되어 거목이 되면 심재가 적갈색으로 황색의 장기처럼 되어 황장목이라 한다.

일정은 등기제도를 시행하고 한국 경제를 침탈하기 위하여 한국 내에 국책회사인 동양척식 주식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자기들의 이권을 얻기 유리한 특수법을 제정 공포하고 동양척식 주식회사법에 의하여 창립하고 운영되었다. 창립위원은 116명이 임명되었고 일본인 위원은 83인 한국측 위원은 33인이 임명되고 설립위원장은 일본인 위원에는 일본정부의 고위관리와 한국주재의 일제통감부 관리가 임명되고 한국측 위원은 일본앞잡이 노릇을 하는 금융계인사 귀족 및 고위관리 조진태. 백완혁, 한상용, 이근배 등이다. 한국측 위원의 참가는 형식에 불과했고 일본인들의 저의대로 일사천리로 설립되어 운영되었다. 이 회사 설립 목적은 한국식민화를 위한 경제수탈과 장악이었다. 1909년 서울에 본점을 두고 영업을 시작했다. 이 회사는 설립과 더불어 우리 정부에 강제로 토지 17,714정보(논12,523정보 밭 4,908정보 잡종지283정보)를 출자하도록 하였고 1913년까지 한국내에서 매입한 토지는 47,147정보(논30,534정보 밭1,256정보 임야1,968정보 잡종지2,082정보)에 달하였다. 1920년 말 현재 소유토지는 9만700여 정보에 달하였다. 우리국유지와 우리국민으로부터 무상과 같은 헐값에 매입한 수많은 농토와 산지를 일본 농업 이민자들에게 헐값에 불하양도 되었다. 1920년 이후에는 임야매입에 주력하여 압력과 부정한 관리들과 결탁하여 무상이나 다를바 없는 가격으로 국유지 불하혜택을 받아 1942년에는 이 회사가 소유한 임야는 16만여 정보에 이르고 있었다. 이들의 농업이민계획은 경제적 목적보다 정치적 목적에 의하여 이루어 졌다.

일본의 대륙침략 일익을 담당하기 위하여 설립되었고 운영되었다. 조선의 주요 도시뿐만 아니라 농촌에서도 일인 촌락을 건설하여 조선지배의 거점으로 삼으려고 했다. 이 회사의 농업이민에 대하여 각종 특혜를 부여하게 되어 농업 이민모집에 대한 일본 농민들의 응모가 쇄도하여 조선 침략의 담당자가 될 만한 이들을 엄선하였다. 대다수 일인 농민들은 배당받은 토지를 자경하지 않고 소작 지주로 변신하여 우리나라 농민을 수탈하였다. 우리 농민들의 토지 상실이 급속화하여 피폐한 우리 농민의 실상은 더욱 처참하게 되어 1926년까지 무려 30여만명이 만주로 이주하게 된다. 그중에는 정치적으로 망명한 애국지사도 있었지만 대다수가 농업 이주민이었다. 동양 척식 주식회사의 일인 농업 이민정책에 의하여 생활기반인 농토를 빼앗기고 아무런 계획없이 무작정 만주이민을 감행한 영세 농민들이였다.

1945년까지 만주로 이주한 조신인은 150만명에 달하였다. 조선인 해외 이주 급증으로 1930년 이내의 대공황은 조선인의 생활고가 빚어낸 결과였다. 조선인 이민정책도 이들이 조정한 정책이며 이는 이민정책이 아닌 기민정책이며 기만정책이었다.

의열단원 나석주는 일제의 한국경제 침략의 총본산인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져 불발로 폭파하는데 실패하였으나 우리 민족에게 일본인들에 대한 증오심을 유발하여 독립염원을 가지는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준 쾌거이다.

일정은 1921년 8월 토지조사령을 공포하여 우리나라 토지조사와 소유자 사정에 착수하였다. 사정은 토지소유자의 신고에 따른 토지조사 바탕으로 소유권을 결정하였다. 1914년 4월 조사사정의 결과를 토대하여 토지대장을 작성하여 이를 기초하여 등기부를 작성하게 되었다. 1918년에는 조선임야 조사령을 공포하여 전국에 임야 조사에 들어갔다.

토지 소유자 신고 절차를 엄청 어렵게 하여 자료를 제출하지 못하면 국유화 하거나 일인들과 일본 앞잡이들에게 무상 또는 헐값에 불하 소유하게 하였다. 이때 일본앞잡이가 되어 많은 토지를 소유하게 된 이들은 후손들까지 부를 누리고 사는 사람들이 전국에 많다. 우리지역에도 여러 명이 있다. 소작제도는 삼국시대부터 유래되었으나 소작으로 인한 토지지주들의 본격적 수탈행위는 토지조사로 인하여 부정하게 많은 토지를 취득한 이들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소작료 률은 토지 소유자의 일방적 결정에 의하여 집행되었다. 소작인은 농사에 소요되는 모든 경비와 농지와 수세까지 부담하고 전체수확량의 절반 이상을 토지 지주에게 납부하고 나면 소작인이 차지하는 량은 20~30%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농사말고 할 짓이 없는 농민들은 이런 수탈과 모멸감을 당하면서 소작이 떨어질까 불안해하며 토지지주들에게 잘 보이지 못할까 갖은 아양을 떨며 생명을 부지할려고 했다. 일정은 토지조사로 인하여 엄청난 국유지를 확보하였다. 특히 산지는 일부 선산을 제외하고는 그게다 국유화가 되었다. 산지를 맘대로 이용하던 농민들에게 이용을 제약하고 세수확보를 위하여 마을별 공동 산지를 배당하여 마을 주민들의 공동 소유로 하고 세금을 납부하도록 하였다.

마을 공동 산에서만 땔감을 구하고 목초와 나물을 채취하도록 하였다. 이때 배당받은 산지는 마을 안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산지가 부족한 마을에서는 다른 마을산지를 배당하기도 하였다. 서창마을과 소남마을의 공동관리산지는 마을 안 산지에서 일부 받고 명곡 시명골의 산지를 배당받아 마을 소유화하고 땔감도 하고 세금도 납부해오다 2000년경 개인에게 매도하였다. 당시 배정받은 산지를 마을마다 소유하여 지금까지 관리해온 모습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용당 공동산지 위치는 탑곡저수지 위쪽이며 면적은 약100만평으로 해당마을은 용당 당촌 생동죽전 편들이며 1970년경 약 80만평을 매도하여 전기시설을 하였다. 웅상지역 중 덕계에서 서창까지는 1968년경 한전에서 무상으로 전기시설을 하였으나 용당에는 예산부족으로 2-3년 후 예산이 확보되면 무상으로 전기시설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조급한 주민들은 기다리지 못하겠다하며 공동산지를 매각하자는 결의를 하고 매도하였다. 매도금액은 180만 5천원으로 전액 전기시설에 투자하였다.

당시 추진위원은 박반식, 김이규, 정문석, 김규붕, 이승갑, 안상원, 박종대였으며 전기시설에 관한 일체 권한을 주민들로부터 위임받아 추진하였다. 추진위원회의시 공동산지 매도를 반대한 사람은 이승갑 한사람 뿐이었다. 반대 사유는 2-3년만 기다리면 전기는 무상으로 공급받을 수 있고 그때까지만 기다리면 공동산지는 처분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며 후일 공동산지는 주민을 위하여 용이하게 사용하자고 강력하게 주장하였으나 이외 추진위원들은 늙은 우리는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전기불 밑에서 살다 죽을란다는 주장에 의하여 매도하기로 결의하고 추진하였다.

20여만평 산지는 처분하여 농지 1,200평을 대토하여 마을 공동소유로 관리하다 마을과 반별로 분할하여 관리하다 현재는 어떤 마을과 반은 매도하고 어떤 반은 그대로 소유하고 있다. 2018년 현재 공동소유였던 산지 가격은 평당 50만원 가량에 매매되고 있다. 지금까지 소유하다 마을공동 사업으로 사용했다면 훨씬 큰 일을 한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가져진다. 북부마을은 마을 동편쪽 7번우회국도를 개설하고 있는 마을 건너편쪽에 공동소유 산지 면적은 20여만평이 되었을 것이라 했다. 매도하여 마을 주민중 일부 해당 주민을 선별하여 배분하였다고 한다.

서창마을 공동소유산지는 명곡 시명골에 약30만평이었고 서창 큰골에 약 10만평이었다. 공동산지 전체를 매도하여 오래 거주한 일부 주민들이 배분하려고 하다 최근에 전입한 주민들이 반발하여 법적시비까지 준비하자 절반금액은 마을 공동기금으로 활용하기로 하고 주민 개별 배분금액은 당시 거주한 모든 주민들에게 주거년도에 따라 4등급을 조정하여 차등하여 전 주민에게 배분하였다. 공동기금은 동부, 서부 분배하여 사용처는 마을회관 건립기금으로 사용하고 지금까지 마을 운영자금으로 활용하고 있다.

주남마을은 당초 배당받을 때부터 반별로 배당받았다. 주남 상동은 마을 위 험준한 주남 산 160번지 일대에 배당받아 이석근, 이재진, 이동만, 이수철(이준걸 부)외 1인 명의로 등기하여 관리하고 있고 사기점 마을은 마을 뒤 산지를 배당받아 관리하고 있으며 아랫마을은 우불둥 위쪽산을 배당받아 관리하고 있다. 아래마을은 산지권리자 명부를 작성하여 관리하고 있으나 권리자 선정과정에 누락된 일부 주민들이 공정성이 없다는 불평이 지금도 있다.

소남마을은 명곡 시명골에 배당받은 산지와 마을 뒤 천성산에 배당받은 산지 중 경사가 심하지 않은 곳은 매도하여 주민 중 권리자를 선별하여 배분하였고 천성산 경사지가 심한 산지는 아직 소유하고 있다.

소주마을은 배당받은 천성산 물골일대 배당받은 수십 만평의 산지를 매각하여 일부는 마을공동 기금으로 활용하고 그 이외 금액은 개별 배분하였다.

백동마을 배당 산지는 물골이었다. 수십 만평의 산지를 매도하여 마을 상수도 설치 등 전액 마을공동 기금으로 사용되었다. 산지를 매수한 분은 백동 울산박씨 댁이 외가이며 주진출생 김해 김씨 김화국이 일대 엄청난 산지를 매수하여 미타암에 기부하였다. 필자의 조부님과 부친께서 산지 배당받을 시 백동에 거주하였다. 백동마을 주민들이 매도금액을 공익을 위하여 사용하지 않고 힘 있는 기득권 몇 사람에 의하여 배분되었다면 필자도 정의로운 행동이 아니라고 항의하였을 것이다.
↑↑ 박극수
시인
(현)양산문화원 부원장
양산시 향토문화연구회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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