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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상사람들의 삶을 말하다(47)-상

기근을 일상처럼 생활했던 시절
웅상뉴스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18년 06월 11일
세상에 무엇이 서러웁다해도 배고픈 서러움 이상 큰 서러움은 없을 것이다. 먹을 거리가 떨어져 사흘만 굶으면 담 뛰어넘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속담이 있다. 가족들이 굶고 있는 절박한 처지에 처한 가장은 자기 자신의 배고픈 고통보다 가족들의 고통을 들어주지 못하는 아픔이 더 큰 아픔일 것이다.

윤회설에 의하면 가난하게 사는 것도 부자로 사는 것도 권력을 가진 자도 핍박 받고 사는 계층도 전생의 업보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불교를 숭상하는 태국같은 나라에서는 세계굴지의 부자집 담벼락에서 굶어죽는 백성도 굶어 죽어가면서도 가진 자들을 원망하지 않고 자신의 업보로 여기고 죽는다고 한다. 통치자들은 통치수단으로 국민을 무기력하게 만들기 위하여 윤회설을 세뇌시킨다.

우리 민요가락에 이런 가락이 있다. 나물 먹고 물마시고 팔을 베고 누었더니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만족하리, 양식이 떨어져 먹을 것이라고 나물과 물뿐이라 나물을 삶아먹고 물을 마시고 기운을 차리지 못해 자포자기하며 가장의 처절한 삶을 위안하며 살아가는 한탄이다. 조정이나 관아에서도 굶고 있는 수많은 백성들을 구제할 방법이 없고 이웃에서도 끼니를 구할 방법이 없다. 만족해 만족한 것이 아니라 대책이 없어 불러온 노래가락이다.

1960년대에도 굶어죽고 얼어 죽는 민초들이 고을마다 해마다 여러 명이 있었다. 필자의 어린 시절만 해도 질병의 대다수가 영양실조에 의하여 발생되었다. 1950년대 초등학생들의 절반 이상 얼굴에는 마른버짐이 피어 있었다. 빈혈증세도 많았고 이런 현상도 영양실조에서 온 증세이다. 1960년 초등학교 6학년때 웅상에서 경주까지 하루 수학여행을 다녀오는 길에 절반 이상이 차멀미를 하고 세 사람의 친구는 멀미가 너무 심해 정신이 혼미해지기까지 했다.

수학여행이 기쁨의 나들이가 아닌 고통의 나들이였다. 먼거리 버스를 타본 경험도 없고, 극도의 영양실조 때문이었다. 1960년대까지 육미만 먹으면 두드러기가 나는 사람이 많았다.

채소와 푸성귀만 소화시켜온 내장이 육미를 소화시킬 능력이 없어 거부반응을 일으켜 발생된 현상이었다. 온몸에 붉은 반점과 부풀어 오르는 현상이었다. 무진장 가렵고 열까지 나고 한기까지 들어 이만저만 고통이 아니였다. 두드러기약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약으로 치료하지 않고 두드러기 귀신은 검정옷을 뒤집어 쓰고 있으면 귀신이 나가 두드러기가 가라앉는다고 할머니들이 검정옷을 지어 주었다. 어떤 연유에서 이런 처방을 했는지 지금까지 이해할 수가 없다.

심하면 2~3일이 가고 대체로 1~2일 견디면 나았다. 얼마나 가려운지 가렵다고 긁으면 더 심한 증세로 확장되었다. 긁어 부스럼이란 말이 여기에서 생겨난 말일 것 같다.

영양실조 상태가 심한 어린아이들 중에는 배가 볼록 튀어나온 어린이들이 더러 있었다. 개구리를 잡아 많이 삶아 먹으면 배 튀어나온 증세가 낫는다며 개구리를 많이 잡아주기도 했고, 개구리를 삶아 먹고 배가 들어간 어린이를 여러 명 보았다. 극도로 심한 영양실조에서 온 증세가 개구리가 영양보충이 되어 나은 것일 것이다.

1970년대까지 어른이 되어 배가 불룩하고 대머리가 된 분들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대다수 국민들은 영양실조에 심한 노동에 시달리다보니 피골이 상접한 몰골이었다. 노동에 시달리지 않고 편히 살며 맛좋은 음식을 맘껏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은 영양과다 섭취와 운동부족으로 배가 튀어나온 이런 모습을 가난한 백성들은 부러워했다. 대머리를 가진 사람들은 높은 사람들의 위상처럼 생각했다.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들은 생명 부지를 위한 먹거리 구하기가 삶의 최우선 과제였고,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연로하신 분들의 삶도 처절하기가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대다수 국민의 소망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양식걱정하지 않는 것이었다. 1960년대까지 국민의 소망은 여름날 하얀 쌀밥에 소고기국밥을 간간히 한 번씩 먹을 수 있는 게 소망이었다.
일정때는 일정은 우리국민들에게 쌀은 먹지 못하게 하고 쌀은 무조건 군량미로 보내어야한다며 제사 맵밥거리로 감추어둔 쌀까지도 뒤집어 빼앗아갔다.

마을마다 가정마다 공출량을 정하여 수탈해가고 대신 연명하라고 나온 배급식량은 지금은 가축사료로 사용되지도 않는 대두박(기름을 짜고 난 콩 찌꺼기), 진저리(해초류)등을 배급하였다. 이마저도 연명하기에 턱없이 부족한량을 선심이라도 서는 것처럼 배급하였다.

여름날 먹는 돼지고기는 잘 먹어야 본전이고 안 먹는게 득이라 했다. 채소 소화기능에 길들여져 있는 내장은 돼지고기를 소화시키지 못해 돼지고기를 먹고 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설사를 했다. 이런 시대를 살아온 노인 층들은 음식으로 인한 상처가 너무 많았다. 필자는 초등학교 3학년쯤 되었을 시절 변소에서 대변을 볼 때마다 장이 한뼘쯤 항문 밖으로 빠져 나오는 증세가 있었다. 대변을 다보고 튀어나온 장을 밀어 넣으려고 하면 너무나 아픈 고통을 당했다. 이런 증세가 1년쯤 계속되다 어느 날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나았다.

무엇 때문에 이런 증세가 있었는지 어째서 나았는지 생각조차 한 일 없이 지난 일이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영양실조에서 온 증세로 생각된다. 장이 빠진다는 이야기를 할머니에게 하니 키가 자라려고 너만 할 때는 그렇다고 하기에 세상의 내 또래 어린이는 모두 장이 빠지는 걸로 알았다. 이 일로 병원을 가본 일도 약을 먹어온 기억도 없다.

당시 우리나라 식량사정은 너무 어려워 미 잉여농산물에 의존해 식량을 해결할 시기였다.
원조물량으로 충당해도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국민을 구제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정부에서는 잡곡밥을 권유하고 학교 도시락도 잡곡밥을 사오라고 했다.

1950년대 후반부터 초등학교에 급식소가 운영되었다. 전체 학생중 10%정도의 학생들에게 강냉이죽을 끓여 점심으로 제공했다. 강냉이죽을 타먹는 대상자 선정은 선생님이 공정하게 한다고 하였지만 어린학생들이 보기에도 공정치 못하다는 느낌을 가지게 했다.

학교급식소가 강냉이죽을 먹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심정은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른다. 어린 시절 아픈 상처가 노인이 된 지금까지 아린다. 도시락을 사오지 못하고 급식제공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도 많았지만 급식대상에서 제외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었다고 한다. 강냉이죽을 끓이는 구수한 냄새가 학교전체에 진동하여 학생들에게 배고픔을 더하게 하였지만 배고픈 고통보다 급식소 죽을 타먹기 위한 처량한 모습이 더 고통이었다. 오늘날 학교급식소 운영에 관하여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어 무상급식에서 유상급식, 차등급식 운운하며 무상급식을 유상급식으로 전환사례가 전국에서 최우선으로 시행하는 정책안을 마련하여 시행했던 슬픈 지역이 우리 지역이었다. 강냉이죽을 타먹기 위해 줄을 서면서 받은 상처의 아픔을 단 한번이라도 체험한 사실이 있거나 어린이들이 받은 상처가 얼마나 아플까하는 생각을 한순간이라도 했다면 이런 발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1961년 5.16 군사혁명이 일어나고 학교도시력 검사를 본격적으로 했다. 도시락 검사를 하지 않아도 가정 처지가 어려운 농촌학교 학생들의 도시락은 남 보기가 부끄러워 책상 밑에 감추고 먹었다. 무우밥, 시락밥, 새까만 꽁보리밥이 대다수였다. 찬은 단 한가지 김치나 장아찌가 대부분이었다. 어느 날 선생님이 도시락 검사를 하시면서 쌀 한 톨 없이 보리쌀과 무우로 지은 새까만 나의 도시락을 보여주며 극수가 사온 도시락이 진짜 잡곡밥이다 하며 전체 학우들에게 보여주었다. 나는 그날 이후로 중학교 3학년 동안 단 한 번도 도시락을 지참해 본 일 없이 점심을 굶었다.
↑↑ 박극수
시인
(현)양산문화원 이사
양산시 향토문화연구회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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