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문장/나는 지금 광화문에 위치한 어느 커피숍 창가에 앉아 ....
웅상뉴스 기자 / 입력 : 2016년 01월 08일
나는 지금 광화문에 위치한 어느 커피숍 창가에 앉아 그때의 기쁨을 되새겨보고 있다. 지금 그 일을 되새기는 것은 바로 옆 세종문화관 홀에서 ‘베를릴 필’의 연주가 있고 그곳에 아이가 구경하러 갔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빌미가 되어 ‘영웅’ 심포니를 들었을 때의 기븜을 다시 생각해낸 모양이다. 나는 오늘 이 시간을 은근히 기다려왔다. 처음 아이가 ‘베들린 필’의 표 한 장을 예매했을 때 나는 기뻤다. 아이가 음악을 들으러 간다는 사실이 기뻤다. 거기에는 여러 요소가 작용하였을 것이다. 그렇게 음악을 들으러 다닌다는 것은, 표가 있어서 가는 구경이 아니라 자신이 예매하여 가는 경우, 그리고 아이가 표 한 장만을 샀다는 거기에는 그 일을 귀히 여기는 의미가 들어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에게 일이 생겨 못 가게 되었다. 아이는 내게 대신 가겠느냐고 물었고 나는 가겠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가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나는 ‘베를린 필’을 보러 가서 앉아 있는 상상을 해보곤 했다. 그런데 아이에게 생겼던 일이 다음 날로 미루어졌고 그래서 다시 아이가 가기로 했다. 나는 모처럼 마음먹었던 것이기에 따라나섰다. “엄마가 보고 싶으지?” 아이가 물었고 나는 그 시간 카페에 앉아 있겠다고 말했다. “아니, 오히려 잘됐어. 그게 훨씬 좋아.” 그러나 일부러 시간을 내서 그렇게 나가 앉아 있게 되지 않았다. 나는 정말 ‘베들린 필’을 보는 것보다 카페에 앉아 있는 쪽이 훨씬 가볍고 좋았다.
‘베들린 필’ 연주에 가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부터 보면 보는 것이지만 어쩐지 세종문화회관 홀에 들어가 앉아 있을 시간이 무겁고 지루하게 여겨졌다. 건물 지붕이 내리누를 것 같기도 했다. 어떻게 두 시간이나 그 안에 드렁가서 가만히 앉아 있는가. 무엇을 봐야 한다는 부담감보다 그냥 그 시간을 카페 같은 데 한가로이 앉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편으로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마침 아이의 일이 연기되어 내가 꼭 가지 않아도 되니 잘된 일이었다. 그리고 외출하는 것으로 계획하고 있었기에 카페에서 아이를 기다리면 나로서는 오히려 이중의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셈이었다. 자유롭지 않아 귀찮아할 수도 있을 텐데 아이는 의외로 선선히 내가 카페아 앉아서 기다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그리하여 지금 나는 한껏 느슨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아이는 커피숍까지 같이 와서 주문한 커피가 나올 때까지 함께 있었다. 나는 가장 일반적인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창에서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보인다고 창가에 앉으라고 아이가 뒷걸음질 쳐 커피숍 문을 나서며 말했다.
나는 쟁반에 뜨거운 종이컵 커피를 담아 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사람들이 가득하였다. 젊은이들이 시끄럽게 떠드며 얘기하고 있고 탭댄스라도 출 듯한 리듬감 있는 음악이 흐르고 있으나 얘기 소리에 섞어 시끄러움만 더할 뿐이었다.
마침 창가에 자리 하나가 나기에 나는 자빠질 듯 서둘러 그리로 가서 앉았다. 폭이 좁은 긴 테이블이 유리벽을 향해 놓여 있어 사람들은 밖을 향해 정면으로 앉게 되는 곳이었다. 아이 말대로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잘 내다보이고 있었다. 불 켜진 수많은 밤 빌딩 창들, 차량의 불빛 속에 장군은 우뚝 큰 칼을 차고 위엄 있게 서 있었다.
이곳으로 오기 전 아이와 나는 세종문화회관으로 가서 예매한 표부터 찾았다. 아이가 표를 찾기 위해 표 안쪽에 있는 예매소 앞에 줄을 서 있는 동안 나는 바람을 피하기 위해 세종문화회관 유리문 앞에 바싹 붙어 서 있었다. 광화문 광장을 거쳐온 바람은 광장과 빌딩과의 그 어떤 구조 때문인지 불어오는 동안 점점 더 거세어져 정신을 휑하니 만들었다.
대로나 구석진 골목 어디라 할 것 없이 바람에 시달리고 있었다. 바람은 비질하듯 아스팔트 위를 쓸어 올리며 회오리 쳐 빌딩에 부딪쳤다. 나는 결국 세종홀 유리문 안으로 피신하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유리벽이 바람을 막아주었다. 로비에 사람들이 그득했고 열어서 고정시켜놓은 유리문 안으로 사람들이 계속 들어왔다. 그들은 익숙한 몸짓과 표정들로 서로 인사하거나 누구를 찾기도 하고 이리로 저리로 걸어다녔다.
표를 찾아온 아이가 말했다. 굉장히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잘못 알았는가 보다고. 10몇만 원인 줄 알았는데 4만5ㅊㄴ원이라고 기분 좋은 듯 약간 계면쩍은 듯 말했다. -김채원의 '베들린 필'에서 |
웅상뉴스 기자 /  입력 : 2016년 01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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