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문장/들어보고 싶은 연주곡이 있다......
웅상뉴스 기자 / 입력 : 2016년 01월 07일
들어보고 싶은 연주곡이 있다. 젊은 어느 날 들었던 곡이다. 그 곡을 꼭 다시 들어보고 싶다. 특별히 그 곡을 제일 좋아한다거나 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지만, 베토벤의 심포니 3번 <영웅> 라디오나 어디에서 그 곡이 흘러나오면 나는 멈추어 서서 귀를 기울인다.
그러고는 실망한다. 듣고 싶어 하는 그 곡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곡 전부를 원하는 것은 아니고 그중에 한 부분, 다른 부분은 대체로 흘려듣다가 원하는 부분에서만 기억 속과 일치하기를 나는 바란다. 다른 부분은 따로 외워가지고 있지도 못하거니와 어떻게 연주되든 별 상관이 없다. 오직 기억하고 그 부분이 기억 속 음률과 일치되기를 바랄 뿐이다. 아닌가 보다.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가 보다., 하고 나는 결국 생각하기에 이르렀고, 참 이상하다 내가 분명 들었는데 그게 아니라면... 하고 못내 아쉬워한다.
너무 아쉬워 마음은 허해지고 급기야 이별의 감정가지 갖는다. 이미 나는 내가 기억하는 그 곡과 이별했다.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것이라고, 아예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체념했다.
이별이 얼마만 한 애석함이며 그리움인가. 치유할 수 없는 것인가를 알아간다. 영원히 되돌릴 수 없는 것. 그 깊은 체념은 허무를 만든다. 불가항력으로 사람을 잠식시키려 든다. 견딜 수 없는 극한에까지 몰고 가 모든 것을 초토화시키려 한다. 차라리 생각을 말아야, 생각을 말자. 마음속에서 일으켜지지 못하도록 밀봉시킨다. 마음의 뚜껑을 꼭 닫아 양초 같은 것으로 완전히 봉해버린다.
그런데 그렇게 체념해버린 기억 속 연주를 어느 날 듣게 되었다. 음악평론가인 정만섭의 ‘명연주 명음반’ 라디오 프로에서 짐붕 감상곡 시간에 틀 곡목을 서두에 예고하면서 베토벤의 <영웅>을 소개했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30여 가지의 음반 중에서 하나를 골라 가지고 나왔다고 말했다. 어제 종일 영웅의 여러 음반 중 이것저것을 들어보았는데, 물론 전곡은 아니고 그 어느 부분만을 들었고 그 중에서 한 곡을 선별했다고.
그가 전곡을 들은 것은 아니고 –시간상으로도 안 되었을 것이다- 어느 뿐만을 들었다고 할 때 혹시 그 부분일까 하는 생각이 내게 스쳤다. 음악 전문가도 어느 부분만의 연주를 더 선호해서 고르기도 하는구나 하는 반가움이 일었다. 나는 귀를 기울였다. 그가 30가지 음반 중에서 선별한 곡은 어떤 것일까. 그 부분은 어떻게 연주되었을까.
음악이 흐르기 시작해도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부분 이외에는 모든 연주가 그저 유사할 뿐이므로 무심히 듣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어쩐 일인가. 1악장 마지막 부분에서 내 기억 속 그대로의 연주가 흘러나왔다.
악보 자체가 다른 듯 다른 해석으로 연주되어버리곤 하던 그 부분, 그리하여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라고 이제는 체념해버린 기억 속 그 연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상승하는 느낌, 타고 가던 마차가 퉁째로 들려져 태양을 향해 가는 그림이 펼쳐졌다.
따아- 다 따아 – 다따- 다- 다아-- 따아- 다 따아 – 다따- 다- 다아--
이런 멜로디의 오케스트라가 중심을 향해 가고 있노라면, 그 언저리 어디에서 따다다단 따다다단 따다다단따따라라라란 따다다단 따다다단 따다다단따따라라라란 관악기 소리가 나타나 본 멜로디와 합쳐진다. 기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광채 나는 그 멜로디. <영웅>의 첫 시작부터 거기까지의 음률은 바로 그 순간을 위한 자리 찾기였던 듯 느껴진다.
이리로 저리로 헤매다가 조금씩 본불기를 찾기 시작하여, 그러나 아니라는 듯 다시 헤매고 그러다가 다시 힘을 끌어내어 또 헤맨 후 고뇌의 싸움 끝에 어떤 정화의 시간을 거쳐 가벼이 날아오른다. 태양을 향해.
시카코 심포니. 지휘자 게오르그 솔티. 나는 그날 영핵하던 것들이 질서를 찾는 듯한 기분을 맛보았다. 내가 기억하는 것이 이 세상에 없는 것이 아니라 있었다는 그 자체만으로 어떤 혼미 속에서 빠져나와 새 기운을 얻는 기분이었다. 내가 버려지지 않았다고까지 생각되었다. 그것은 큰 기쁨이었다.
김채원의 '베를린 필'에서 - |
웅상뉴스 기자 /  입력 : 2016년 01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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