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문장 / '눈 한송이가 녹는 동안'
한강 소설가
웅상뉴스 기자 / 입력 : 2016년 01월 04일
나는 힘주어 바깥쪽 창문을 열었다. 방충망까지 열고 바깥으로 손을 내밀었다. 찬 눈송이가가 손바닥에 내려앉았다가 곧 사라졌다.
텅 빈 도로변의 나무들이 눈에 덮여 고요했다. 빽빽이 주차된 차들 위에도 눈이 쌓였다. 아직 발자국이 찍히지 않은 인도가 가로등 불빛에 빛났다.
요즘 나는 이런 일들이 좋아졌어,라고 경주 언니는 메일에 썼었다. 새 직장 옆에 얻은 방의 햇빛 드는 겨울 창을 찍어 함께 보내면서였다.
막상 결혼할 때는 다른 일이 더 중요해서, 이런 것들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거든. 이 방은 무늬 없는 흰 벽지로 도배를 하고 문하고 창틀은 하얀 페인트로 직접 칠했어. 밝은 게 좋아서 커튼은 달지 않았어. 이상하지. 이제야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그동안은 늘 마음 어딘가가 부서져 있어서, 굳이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가 봐.
그가 걸어와 창 앞에 나란히 섰다. 점퍼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고는 추운 듯 어깨를 웅크렸다. 두꺼운 안경알 안쪽에서 빛나는 눈이 바깥을 향했다.
이제 손을 꺼내 눈을 항해 내밀려는가, 나는 생각했다. 죽은 사람의 손은 얼마나 차가울까. 거기 닿은 눈은 얼마나 오래 머물러 있을까. 눈 한송이가 녹지 않는 동안, 우리가 얼마나 더 이야기할 수 있을까.
순간 내가 그와 악수를 나눈 적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공소하거나 가볍게 목례했을 뿐, 가장 담담한 예의를 갖췄을 뿐이었다. 한 번의 꿈속뿐이었다. 잠시 우리가 닿았던 것은, 내가 그의 딸아이만큼 어려져서 무릎에 앉았을 때.
이제 밝아지려는가, 나는 생각했다. 그는 아직 점퍼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지 않은 채, 마치 검푸른 허공에 멈춰 서려는 듯 느리게 떨어져 내리는 눈송이들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말없이 우리의 눈과 눈이 만났다. 평화를. |
웅상뉴스 기자 /  입력 : 2016년 01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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