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박씨(명곡문중묘제)”
김경희 기자 / 입력 : 2015년 11월 26일
|  | | ↑↑ 지난 16일 명곡에 있는 울산박씨 문중제실에서 묘제를 지내고 있는 장면 | ⓒ 웅상뉴스 | | 지난 16일 오전 10시 울산 박씨 문중들이 문중제실(귀후제)에서 묘제를 지냈다. 울산박씨 명곡문중(종손:박찬주-입항조 15세손 문장:박도진-입항조 12세손) :울산 고을에서 임란공신을 가장 많이 배출하고 출장소부지확보와 명동공원 부지를 제공한 문중으로 전해 내려온다. 입항조 박지영은 울산박씨 시조 장무공 박윤웅(웅상일대의 호족장으로서 고려개국공신, 흥여부사)의 후손으로 충청감사 박추의 5대손으로 무안군수를 역임하다 모든 관리들이 당파싸움으로 백성을 돌보지 않고 권력다툼으로 나라꼴이 한심한 지경이라 지방의 관리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한계를 느끼고, 스스로 사임하고 웅촌면 대복 향리로 들어와 생활하다 1500년 중후반 경 웅상의 명곡으로 이거해와 정착했다. 후학 양성에 일생을 받칠 각오로 지역의 젊은이들에게 문무수업을 하며 국가관을 정립시키고저 노력했다.
자녀들과 종친들에게는 벼슬길에 나아가게 되면 당쟁에 휩싸여 소신있게 국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하며 벼슬길에 나서지 말도록 훈화하면서 나라가 없으면 백성이 있을 수 없다는 정신을 세뇌시켰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 문중 젊은이들은 다 의병이 되어 구국전선에 나서도록 했다. 울산 선무원종 임란공신이 된 유복지친(8촌) 이내의 친족들은 아들 박홍남, 사위 김응방, 조카 박홍춘, 생질 이겸수, 종손자 박계숙, 종질 박응정, 제종 박인복, 제종질 박경열, 박경은, 제종손 박웅춘, 박영록, 삼종손 박영준 등이다.
비록 의병장이 아닌 일반의병으로 출병하여 공신록에 등재되지 않았지만 문중의 모든 젊은이들은 다 의병이 된 문중이다. 울산고을 어느 문중도 유복지친 간에 이토록 많은 임란공신이 배출된 문중은 없다. 벼슬길에 나아가지 말라는 선대 어른의 유지를 받들어 자손들은 학문 추구와 생업에만 전력을 다했다. 박지영의 6대손 박래팔과 박문팔은 명곡 명동(뒤들)에 거주하다 백동으로 이거해 정착해 후손들은 백동에서 뿌리를 내렸다. 그 이외 문중원들은 명곡에 살았다.
백동에 정착한 후손들은 문중재산으로 교육기관인 정사를 1800년경 건립하여 훈장은 학문이 뛰어난 문중 종원 박상옥, 박수묵, 박한묵, 박시현이었다. 영남일대에서는 백동에가 글자랑 하지 말라 할 정도로 많은 선비가 배출되었다. 정사건물은 1970년경까지 건물이 존속했다. 교육받은 학동들은 문중자녀들만 교육한 것이 아니고 타문 중 자녀들도 같이 공부했다. 근세에 와 문중이 지역에 이바지 한 바도 크다.
당시 문중대표이며 종손인 박장식과 문중 종원들은 문중 선산이 도시계획기본계획에 주거 지역으로 지정되었음을 알고 주거지역으로 지정되게 되면 토지가격이 엄청나게 올라간다는 사실은 알지만 500여년 가까운 선대묘지를 모시기가 어렵게 되니 기본계획에 공원지로 지정된 현 출장소 일대 부지와 변경계획하여 문중선산을 공원지로 지정하고 출장소 일대 부지를 주거지역으로 지정해 줄 것을 건의하기로 결의하고 당시 경상남도 도의회 박봉수의원, 양산시의회 부의장 박일배의원, 웅상농협조합장을 역임하고 웅상개발자문위원장을 맏고 있던 박극수에게 결의된 사안을 추진할 것을 위임하고 이들은 문중에서 요청하는 사안을 이루기 위하여 손유섭양산시장, 김혁규 경남도지사를 상면하여 사안을 설명하고 문서로 도시계획변경안을 제출하고 출장소 일대 부지 지주 장명식과 심완조 사무실(부산,서울)을 찾아가 공원지로 지정된 부지를 주거지역으로 변경하는 조건과 함께 공공청사 용지를 기부할 것을 약속받고 이를 추진하였다.
건의된 사안으로 도시계획이 되어 출장소부지와 문화체육센터 부지는 기증받게 되었다. 웅상주민 중 이 과정에 적극 협력한 분이 많다. 과정상 소요된 경비도 만만찮았고 변경할 수 있는 여선조성도 어려웠다. 모두 울산박씨 종원들이 감당했다. 경남도 건설부 농수산부, 국무총리실을 불이 나도록 찾아다녔다. 지역에 연고 있는 공무원들의 도움도 큰 힘이 되었다. 도시계획이 확정되고 출장소 인근 부지에는 문화체육센터도 건립되고 출장소가 건립되었다.
양산시에서는 울산박씨 명공문중 선산일대는 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하여 선산을 매도할 것을 권유했지만 울산박씨 문중에서는 웅상의 가장 중심에 위치하고 야중임야로 전면적 사용이 가능한 토지 선산부지 만여 평을 무료로 영구임대하여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양산시와 영구무료임대차 계약을 하여 명동공원조성을 하도록 하였다. 이는 시에 기증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출장소 부지확보와 명동공원 조성은 울산박씨 명곡문중의 공로가 제일 크다. 명곡에서 5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깊이 뿌리내린 문중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후손들은 벌족을 이루어 400세대가 넘는 가정들이 명곡 백동에도 살고 부산, 울산 경향각지에서 맡은 바 직분과 도리를 성실히 살아가고 있다.
입항조와 그 후손들 중 묘전에서 모시던 선조들의 묘사를 모두 귀후제에 배향하며 모시고 있다. |
김경희 기자 /  입력 : 2015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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