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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시해되시다 : 국모와 여우사냥

원암 장영주
국학원 상임고문
웅상신문 칼럼위원

웅상뉴스 기자 / 입력 : 2015년 10월 16일
1895년 10월 8일(음력 8월 20일) 을미년, 금수강산의 아름다운 가을 새벽. 조선 주재 일본 공사 미우라(三浦梧樓)의 지휘에 따라 술에 취한 일본의 떠돌이 무사들이 총과 칼을 뽑아들고 조선임금의 궁궐을 침입한다. 일본의 눈엣 가시인 고종황제의 정비인 민비를 완전히 제거하려는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잔인무도한 테러이었다. ‘민비’란 고종의 부인 ‘민 씨’라는 명칭이다. ‘이조’ 는 곧 ‘이씨의 조선’ 이라는 호칭과 더불어 당시 일제가 당당한 국가인 조선을 얼마나 경멸했는지를 짐작케 하는 국호이다. 자신들의 왕은 ‘천황’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교하면 실로 후안무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로써 독립된 나라를 세우려던 여걸 ‘민비’께서 바다를 건너온 이국의 흉도들의 칼날에 속절없이 스러지신다. 현장을 목격한 주한영국영사 힐리어(Walter C. Hillier)의 보고는 이틀 뒤 본국에 도착한다.
서둘러 왕후에게 급보를 전하였고, 왕후와 궁녀들이 잠자리에서 뛰쳐나와 숨으려던 순간이었다. 그 때 흉도들이 달려 들어오자 이경직은 왕후를 보호하기 위해 두 팔을 벌려 가로막았다. 흉도들 중 하나가 왕후를 찾아내기 위해 왕후의 사진을 손에 지니고 있었던 데다가 그의 그러한 행동은 오히려 흉도들이 왕후를 알아 볼 수 있는 쉬운 단서가 되었다. 이경직은 내려친 칼날에 양 팔목을 잘려 중상을 입고 쓰러져 피를 흘리며 죽었다. 왕후는 뜰 아래로 뛰쳐나갔지만 곧 붙잡혀 넘어뜨려졌다. 그 뒤 흉도들은 왕후의 가슴을 짓밟으며 일본도를 휘둘러 거듭 내려 쳤다. 실수가 없도록 확실히 해치우기 위해 그들은 왕후와 용모가 비슷한 몇몇 궁녀들까지 함께 살해하였다. 그 때 왕후의 의녀가 가까스로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아가 손수건으로 왕후의 얼굴을 가려 주었다. 한 둘의 시신이 숲에서 불태워 지고, 나머지는 궁궐 밖으로 옮겨가 처리되었다."
민비께서는 돌아가신 지 2년 후에 황제의 나라 조선제국의 ‘명성황후’로 추증된다. 고구려의 ‘광개토호태왕’과 서기 698년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 황제 이후 1,200여 년 만에 다시 ‘황제국’을 선포하니 ‘조선의 영광’이 재현되었다. 그러나 3년 뒤인 1910년, 일제에 의한 경술국치로 가까스로 부활한 조선제국의 영광은 허망하게 끝난다. 고종황제의 정비이자 조선의 국모인 명성황후 시해 작전을 일본의 수뇌부는 ‘여우사냥’이라고 이름 붙였다. 따라서 조선의 국민들 또한 여우라는 짐승이 되어버렸다. ‘여우사냥’에 대한 본말은 조선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쥔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 伊藤博文)의 전략을 일본 천왕이 허락하고, 미우라가 현장을 집행한 치밀한 국제적 테러임이 최근에 밝혀졌다.
‘의병’과 ‘독립군’은 뜻이 다르다. ‘의병’은 나라가 위급할 때 스스로 일어나 민족과 나라를 지키려고 한 국민들의 의로운 구국활동이다. ‘독립군’은 이미 빼앗겨 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한 활동으로 국권을 잃은 상태의 지엽적, 단위적인 군사 활동조직이다. 악랄한 일제는 명성황후의 시해사건과 더불어 조선인의 상투를 강제로 자르려는 단발령을 내렸다. 면암 최익현은 “목을 잘릴지언정 상투를 자를 수는 없다.”며 항거하다가 대마도로 끌려간다. 결국 면암은 “일본 땅에서 나는 어떤 음식도 취할 수 없다.”며 식음을 전폐하다가 순국한다. 이처럼 계속되는 일본의 폭거에 분을 삭이며 숨을 죽이고 있던 조선의 백성들이 드디어 힘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현재의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면 장담마을로 초야의 선비 류인석을 필두로 류중교, 서상렬, 이항로, 이소응 등이 모여든다. 그들이 앞장서고 분노한 민초들이 들불처럼 거병하여 비로소 전국 최초의 ‘무장 의병활동’이 시작된다. 일본군은 1907년 8월 15일, 을미의병’의 핵심을 제거하고자 전국 의병의 본산이자 총사령부격인 제천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당일 일본군은 제천의병에 의하여 섬멸 당한다. 일제의 근대식 군대가 조선의병에게 패하자 놀라고 분노한 일본군은 1907년 8월 23일, 각지의 군대를 총 동원하여 제천을 공격한다. 제천 의병과 일반 백성들은 모두 무참히 살해됐고 온 시가지는 불타버렸다. 이 사건을 취재한 영국 데일리지의 ‘메켄지’ 특파원은 “오늘 제천은 세계지도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항아리 하나 남지 않았다”라는 제목의 기사와 사진을 전송하였다. 다행히 이날 살아남은 제천 의병들은 ‘의암 류인석 의병장’의 뒤를 따라 블라디보스토크로 진출하여 연해주 일대와 만주를 중심으로 활약하는 ‘무장항쟁 독립군’을 태동시켰다. 제천에서 거병한 의병장 의암 류인석(毅菴 柳麟錫, 1842-1915)의 활동이 ‘의병운동’에서 ‘독립군’으로 이어지는 한국사의 분수령이 된다. 제천은 실로 최초의 무장 항거 본산지가 되니 가히 ‘모태의병의 고장’이 아닐 수 없다.
‘을미사변’ 이후 신변이 위태롭게 된 고종이 이듬해 2월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게 된다. 1896년 초 청년 ‘김창수(백범 김구)’가 일본군 밀정을 살해 이후 독립운동에 투신하고, 1909년 안중근이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결도 을미사변과 제천의병의 거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을미사변은 일본이 한국에 행한 인간의 탈을 썼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야만적인 만행으로 우리의 가슴에 새겨져 있다. 당시의 일본조야의 대 조선관이 얼마나 야만적이었나를 알 수 있다. 그런 자세는 지금의 아베 정권의 비호를 받고 있는 극우파들에 의하여 지속 되고 있다. 2015년 8월 말, 일본의 ‘산케이신문’의 정치부 전문위원인 ‘노구치 히로유키(野口裕之)’는 대한민국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가를 두고 악담을 한다. 일본보다 중국에 친밀한 외교 정책을 썼던 "박근혜 대통령과 비슷한 여성 권력자가 구한말에도 있었으나 결국 3개월 뒤에 살해되었다"고 우리 대통령을 명성황후에 비유했다. 현재 일본 극우파들의 한국 지도자에 대한 암살을 유도하거나, 바라는 바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잔인한 그들을 향하여 우리는 밝고 너른 홍익 정신으로 선언한다.
“잊지는 않겠다. 그러나 용서하겠다. 이제 지구인으로 결국 하나가 되어야 하니까.”
웅상뉴스 기자 / 입력 : 2015년 10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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