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상의 상업은 어떻게 변화되어 왔을까
웅상스토리를 재발견하다(2)
김경희 기자 / 입력 : 2013년 12월 02일
예로부터 시장은 사람들의 상거래의 장이 되어 왔다. 원시농경생활에서 농산물의 잉여와 생필품의 수요에 따라 상호물물교환이 이루어졌고 국가가 형성되고 왕도와 지방관위가 발달함에 따라 정기시장인 장시가 발전하게 되었다. 시전시설의 설치로 시민의 생필품을 공급하고 정부의 관수품도 조달하며 농민에게서 거두어들인 물품을 시전에 불하하여 팔도록 한 것이 바로 상업의 시초가 되었으며 지역간의 장시를 연결하여 발달을 도모하게 한 것이 보부상이다. 보상은 ‘봇짐장사’ 부상은 ‘등짐장사’ 불리었는데 이들 보부상 조직으로 혜상공국 상무사가 있었는데 이 조직에는 대표로서 접장, 실무 담당원으로 공원, 집사 등이 있었다. 이 장사가 점차 상설시장화 됨에 따라 이 상설시장을 중심으로 상업도시로 발달하게 되었다.
|  | | ↑↑ 옛날 덕계장터 | ⓒ 웅상뉴스 | |
그럼, 웅상의 시장은 어떻게 발달되었는가
웅상의 상업도 우리나라 시장의 발달 과정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성장되어 왔다. 물물교환에서 보부상을 거쳐 시장으로 상업도시화로 번창하고 있다. 옛문헌에 기록된 것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양산군지 <신보판>에 나타난 시장 ‘서창장은 웅상면 삼호리에 있으며 개시는 4일과 9일자에 있다’ 양산군 <증보판>의 시장 분포 및 현황에서 ‘서창시장은 웅상면 삼호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매월 4일, 9자에 열린다. 주로 농산물이 거래되고 있으며 특히 산나물이 유명하다.’ ‘덕계시장 웅상면 덕계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매월 3일, 8일자에 열린다.’ 울산읍지(구판)에서 ‘서창시장--조선시대 현종 10년 (1669년) 울산부사 류지립이 창건하였음.’ ‘1960년대까지는 울산, 동래 사이에는 한곳 밖에 없었던 시장이었음(5일장) (고장의 정기 울주군)’
장이란 말이 있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장시를 말한다. 상인 또는 가까이 있는 주민들이 정해진 날짜에 일정한 곳에 모여 물건을 팔고 사고 하는 곳을 뜻하는 것이다. 이 장의 기원도 퍽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의 진평왕 50년 2월초에 <여름에 큰 가뭄이 있어 시장을 옮기고 용을 그리어 비를 빌었다>라 한 것을 볼 수 있다. 조선왕조에 이르러서도 한성에서 장이 서게 되어 초기에는 관철동, 장교동, 일대인 장통방, 연지동 일대인 연화방, 안국방 등에서 열리고, 후기에 이르러서는 종가, 이현에서 열리게 되었다 한다. 또 지방의 장은 성종실록의 1473년(성종4년) 2월의 기록에 <경성 바깥에는 시포가 없었는데 경인년의 기근 때에 전라도 인민들이 서로 모여 시포를 열고 장문이라 불렀다>하는 것을 보아 성종 이후에 장다운 것이 지방에서도 생긴 것으로 보아진다. 이러한 장이 곧 각지에 확대되어 중종, 명종 때에 이르러 충청, 전라, 경상 각지에도 열리게 되었으나 구매력이 약했기 때문에 오늘날의 장과 같이 5일마다 한 번씩 열리게 되었다.
<서창시장>은 1930년대에 4대 면장 김석기가 시전에서 전근대적인 상거래의 시장으로 개설하고 1950년에 10대 면장 이성도가 목조 점포(가게)를 건립하여 개인에게 임대하였으며 1980년에 20대 면장 이태걸이 개수 확장하여 정기 시장으로 운영함으로서 “재자”(상설시장화)가형성되기 시작했다. 정기개시일: 4.9.14.19.24.29
|  | | ↑↑ 옛날 서창장터 | ⓒ 웅상뉴스 | |
|  | | ↑↑ 옛날 서창장터 | ⓒ 웅상뉴스 | |
<덕계시장>1964년 웅상면 덕계리 거주(현재 부산광역시 거주) 김수경이 사유지1,540제곱미터를 덕계 시장 부지로 희사하게 되어 개시하였으며 1972년에 덕계지구 농공단지 조성으로 임주 기업체가 늘고 인구증가로 “재자”(상설시장화)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정기개시일:3.8.13.18.23.28. <덕계종합상설시장> 1977년에 덕계지구 농공단지 조성으로 입주 기업체수가 늘고 1980년대에 대단위 아파트군이 형성되면서 유입인구가 급증하면서 1991년에 웅상면이 웅상읍으로 승격되고 덕계지구의 환경이 산업 도시화 됨에 따라 상거래가 활발하여 종합상설시장이 설립되었다. 위치_ 웅상읍 덕계리 754-1번지 개시일- 1995년 1월 |  | | ↑↑ 현재 덕계상설시장 | ⓒ 웅상뉴스 | |
번창하는 웅상의 상업
1960년대까지의 상업상황은 서창 시장에서, 유통되는 농산물이 주로 거래이고 약간의 생필품(의류, 어류, 채소 등)과 농구(보삽, 가래, 괭이, 호미, 낫, 도끼 등)였고 그 밖의 생활용품은 부락별 개인 점방이나 농업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구판장에서 유통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 서창지구 도시정비사업을 위시하여 소주지구 경공업단지 덕계지구 농공단지 조성 등으로 입주 기업체와 유입인구 증가로 유통규모가 확장되어 웅상 단위 농업협동조합 자체가 경영하는 연쇄점이 생기고 서창 시장에 가게가 생기고 덕계 시장이 개시되면서 국도변의 가옥이 점포화되어 업종도 다양해지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까지 꾸준한 성장이 지속하면서 1990년에 서창지구, 소주지구, 평산지구, 덕계지구에 대단위 아파트군이 조성됨과 동시에 유입인구의 급증으로 급속도로 유통형태가 도시형 상업화로 되고 새로운 산업으로 형성되면서 번창해 왔다. 현재 웅상의 상업은 어떤가. 유통시장 개방 이후 대형마트, 온라인쇼핑몰 등 산업태의 급속한 성장으로 전통시장이 많이 어려워지고 있다. 소비자들도 상대적으로 이용이 불편한 전통시장을 꺼리고 있다. 따라서 스스로 경쟁력을 높여서 이런 위기 상황을 극복해야 했다. ‘덕계상설시장’은 상인들의 자구적인 노력으로 제18회 ‘한국유통대상’에너지효율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 건물 내‧외부 조명을 초절전 고효율의 LED로 전부 교체했고 건물옥상에 올해 전력행산 132.5W의 태양광발전시설을 설치해 연간 42만KW(5500만 원)의 전기요금을 줄여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시와 정부의 지원을 받아 매년 시설현대화사업을 추진하고 상인대학운영 등 서비스 향상을 위한 자구노력이 이어지면서 전통시장 활성화의 모범 사례를 보이고 있다.
|  | | ↑↑ 현재 서창 5일 장터 | ⓒ 웅상뉴스 | | ‘서창시장’은 5일장으로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갈수록 쇠퇴되어가는 시장을 살리기 위해 지역인사와 시에서 자구책을 강구하고 있다. 양산시의회 서진부 의원(무소속, 서창ㆍ소주)은 제129회 정례회 제2차 본회의에서 시정 질문에 나서 “서창동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 도심 쇠퇴현상이 더 심각하게 나타나기 전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며 “서창시장 활성화를 통한 균형발전 조치가 필요하고, 옛 서창파출소를 매입해 새로운 공간 창출을 통한 지역 활성화 방안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강조했고 대안으로 “원도심 활성화라는 큰 틀에서 서창시장을 관통하는 도시계획도로를 중심으로 분양이나 임대 방식으로 두 개의 건물을 신축해 시장 건물의 활용도를 극대화함과 동시에 상설시장화하고, 옛 서창파출소는 서창동주민센터와 하나로 묶어 종합적인 활용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
김경희 기자 /  입력 : 2013년 1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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