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방식
웅상뉴스 기자 / 입력 : 2013년 08월 19일
 |  | | ⓒ 웅상뉴스 | 뜨거운 여름이다. 팔월 중순이 지나도 폭염은 수그러들지 않고 더욱더 기세를 부린다. 텃밭의 식물들은 시들시들해지고 골짜기의 물도 바짝 줄어들어 있다. 한여름 예고 없이 쏟아지던 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끊임없이 내리붓는 뜨거운 햇볕들. 허공에 떠다니는 햇볕이 팔과 다리에 와 닿는다. 정말 뜨겁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뜨거움이 싫지 않다.
따로 휴가 계획을 잡지 않고 틈틈이 놀고 있던 나는 얼마 전, 어떤 모임에 참석했다. 처음엔 대화가 그럭저럭 잘 넘어가는 듯 했지만, 뭔가 매끄럽지가 못했다. 한 상황을 두고 서로 다르게 해석하는 시각 때문이었다.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고 오해의 불씨가 된 것을 대화로써 잘 풀어갔지만 새삼 관계를 되돌아보게 한 계기가 되었다.
관계란 유리그릇 같아서 자칫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으면 한순간 팍, 하고 금이 가길 마련이다. 주변을 둘러봐도 오랫동안 서로 친밀하게 지내온 사람들이 어떤 일을 계기로 결별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되지 않은가. 그 계기라는 것을 가만히 살펴보면 조금만 더 상대의 가슴을 들여다보고 대화를 했더라면 풀어질 오해일 경우가 많다.
“괜찮다면 나를 안아주지 않을래?”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의 순례의 해’에 나오는 말이다. 나고야에서 성장한 주인공 쓰구루는 고교시절 5명의 그룹 멤버들과 친하게 지내지만 어느 날 그들한테서 갑자기 일방적인 통보를 받는다. ‘그냥 사라져 줘’. 그 그룹이 세상의 중심이고 전부였던 쓰구루는 깊은 절망에 빠져 모든 의욕을 잃고 늘 죽음의 곁에서 사는 세월을 지낸다.
16년이 지나 한 여자 친구의 조언으로, 즉 그 상처를 해소해야만 한다는 말을 듣고 그는 멤버들을 찾아다닌다. 피아니스트였던 여자 멤버는 강간당한 후 심한 정신분열증세를 보이다가 살해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는 마지막으로 핀란드에서 살고 있는 다른 여자 멤버를 만난다.
그 멤버는 오로지 심각한 정신분열 상태에 빠진 친구를 치유시키기 위해, 그리고 쓰구루에게 향한 자신의 연모하는 마음을 끊기 위해서 쓰구루가 강간범이 아닌 줄 알면서도 강간범으로 몰아 세웠고, 그룹에서도 몰아냈다면서 끝으로 ‘괜찮다면 나를 안아주지 않을래’ 라고 말한다. 가해자인 맴버도 쓰구루와 마찬가지로 깊은 상처를 입고 오랜 세월 살아온 것이다. 쓰구루는 그녀를 가만히 안아 준다.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따뜻하게 그 상처를 안아주는 것이다. 그건 화해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때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때 그는 비로소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영혼의 맨 밑바닥에서 쓰구루는 이해했다. 사람의 마음과 마음은 조화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처와 상처로 깊이 연결된 것이다. 아픔과 아픔으로 나약함과 나약함으로 이어진다. 비통한 절규를 내포하지 않은 고요는 없으며 땅 위에 피 흘리지 않는 용서는 없고, 가슴 아픈 상실을 통과하지 않은 수용은 없다.”
그렇다. 사람들은 누구나 영혼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면 상처를 가지고 있다. 가해자든 피해자든 상처를 가지고 있다. 어떤 일로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때 우리는 상대를 미워하게 된다. 그때 우리 자신을 그리고 상대의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뭔가 사소한 오해가 있을 확률이 높다.
이처럼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나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남에게 상처를 입히고 자신도 입는다. 어쩔 수 없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는 삶. 좋은 관계는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준다. 따라서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아가려면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함께 가는 것.
뜨거운 여름도 곧 사라지는 것처럼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모든 것은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런 만큼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 곧 사라질 모든 것들을 뜨겁게 사랑하고 용서하고 받아들이면서 한 번 살아보는 것도 꽤 괜찮은 생각이지 싶다.
/소설가 김서련 |
웅상뉴스 기자 /  입력 : 2013년 08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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