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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이별


웅상뉴스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20년 11월 26일
밀양 금시당 은행나무
만산홍엽 고운 빛에 감탄하던 때가 한순간인 듯 지나가고 지금은 만추를 지나 겨울로 가는 길목이다. 며칠 전 초겨울 비 같지 않은 작달비가 강풍과 함께 쏟아져 가지 끝 단풍잎들을 사정없이 흔들어 떨궈 버렸다. 비와 바람이 아니었으면 조금은 더 길게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의 정경을 보고 느꼈을 텐데 말이다.

가을 단풍이 어딘들 아름답지 않으며 가을 속 단풍 나들이로 어디든 가보고 싶지 않을까마는, 수많은 수목 중에도 노랗게 단풍 든 은행나무를 나는 유독 좋아한다. 은행나무가 물들 즈음이면 주변의 은행나무를 만나러 다니느라 가을 시간이 바쁘다. 청도 적천사, 운문사, 경주 운곡서원, 도리마을 그리고 밀양 금시당 백곡재의 은행나무가 그렇다. 한자리 서서 수백 년의 세월을 살아 온 어른이 옷을 갈아입는 때를 맞춰 뵈러 가는 것이다.

만추 끝자락의 하루, 오후도 살짝 익어버린 시간에 밀양 금시당을 찾았다. 밀양강이 내려다보이는 아늑한 골에 자리한 금시당은 조선 명종 때 승지를 지낸 금시당 이광진 선생이 만년에 머물렀던 곳이다. 고택 금시당 백곡재 마당에는 오백 해 가까이 살고 있는 은행나무가 있다. 다행이 수나무라 열매를 갖지 않아 고약한 냄새가 없다. 금시당 종택 어른의 말을 빌면 이 가을 고택을 찾은 사람 수가 육천여 명에 이른단다. 다들 은행나무를 만나러 온 사람들이다. 주말을 피해 왔으니 조금은 여유로울 것이다 했던 생각은 빗나갔다. 은행나무 주변에는 가을의 마지막을 배웅하려는 사람들과 한 장의 작품을 남기려는 사진 동호회 회원들이 북적이고 있다.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그대 떠나는 곳
내 먼저 떠나가서
나는 그대 뒷모습에 깔리는
노을이 되리니.

옷깃을 여미고 어둠 속에서
사람의 집들이 어두워지면

내 그대 위해 노래하는
별이 되리니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정호승 /이별노래 전문

소란스런 이별 의식도 잠깐이다. 이제 며칠 지나지 않아 계절을 지켜온 나무는 화려한 황금 옷을 벗어버릴 것이다. 그리고 겸허히 동안거에 들 것이다. 보내는 것에 서툰 인간은 계절의 틈새에서 공연히 걸음만 바쁠 것이다. 만남과 이별은 못갖춘마디처럼 어설프다. 바람에 생의 비늘이 노랗게 진다. 은행나무와의 이별 시간이 짧게 남았다. 이별은 윤회로 드는 생명 길이며 구도의 길이다. 때때로 인간은 이별을 경험하지만 겸허를 배우지는 못한다. 가을은 헤어져 돌아가는 때이다.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떠올린다. `나 이제 모든 것 내려놓고 돌아간다.`

강명숙 시인

양산시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협회 회원

웅상뉴스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20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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