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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청골 외광보건진료소장 김명란 이야기

박극수 웅상신문 고문
웅상뉴스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17년 12월 04일
ⓒ 웅상뉴스(웅상신문)
금번 이야기는 웅상과 인접해 있고 너무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울주군 온양읍 광청골(내광, 중광, 외광, 신기, 귀지) 관련 이야기를 하고저 한다.

우리 지역에 선조들이 발을 들여 놓은 선사시대부터 용당고개를 넘나들며 생활터전을 이룬 곳이다.
1906년 천성산 너머 양산과는 행정구역 개편으로 어쩔 수 없이 왕래하게 되었고 그 이전에는 울산과 용당고개 넘어 지역이 대다수 웅상인들의 고향 마을이었다.

그곳 이야기는 바로 웅상인들의 고향마을 이야기이다. 이야기 거리를 찾게된 동기는 필자의 농장이 그 지역에 있어 그분들과 자주 접하며 생활하는 처지라 형편을 잘 알 수 있다.

농장 길목에 있는 노인회관에 간간히 들러 노인들과 세상사는 이야기와 지역의 옛모습 오늘과 미래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눈다.
광청골 자랑거리가 어떤 것이 있느냐 물으면 어르신들이 합창이라도 하는 것처럼 하나같이 주저 없는 대답이 울주군 보건소 외광진료소에 근무하는 김명란 소장이란 분이 근무하는 게 가장 자랑거리라고 했다. 그분이 어떻게 근무하기에 그토록 자랑스럽나 하니 당신들의 딸보다 며느리보다 더 잘해준다고 했다.

진료를 위하여 진료소를 방문 했을 때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한결 같이 상냥하고 친절하게 대해주는 천사 같은 모습이고
예방접종 때가 되면 집집마다 전화해 예방접종을 꼭 해야 한다고 하며, 수시로 연락이 잘 닫지 않는 댁에는 안부전화를 하고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은 댁에 방문하여 진료소에 모시고 왔다 귀가 시에도 모셔다 주는 사례도 자주 있다고 했다. 근무시간 이후에 진료를 받기 위하여 사전에 연락만 하면 퇴근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도 웃는 얼굴로 기다리고 있다 진료를 해준다고도 했다.

1994년 4월 25일 부산일보에 보도된 미담사례와 2017년 10월 21일 국민신문고에 기고한 내용을 보여주며 김명란 소장 자랑을 꼭 해줄 것을 어르신들이 당부하여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본 이야기를 적고 있다. 부산일보에 보도된 내용과 국민신문고에 기고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부산일보 보도 내용과 국민신문고에 기고된 외광보건소 공무원을 칭찬합니다 끝부분에 첨부한다.)

짬을 내여 호기심과 설레임으로 아무런 연락 없이 한가한 시간을 택하기 위하여 퇴근 시간 임박한 시간에 진료소를 방문했다. 진료소에 들어서니 어르신들의 말씀이 적중한 말씀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와 웃음이 가득한 대화 나누는 소리가 들리고 실내온도는 적당한 온도에 화분 탁자 의자 책들이 놓여져 있는 모습이며 반듯하고 정갈하게 꽂혀 있는 문서들이며 모든 게 질서 정연하게 정돈된 모습이 너무 상쾌하였다.

소장이라고 느끼는 분은 어르신 두 분과 웃는 얼굴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어르신들이 일어서기에 나누던 대화를 마저 나누세요 하니 퇴근시간이 다 되어 가려고 하던 참이었는데 하며 어르신들은 나가시고 퇴근시간이 되어 방문하여 죄송하다고 하며 필자의 개인 신상문제로 시간이 오래 소요될 것 같은데 시간이 되느냐 하며

오늘 시간이 허락지 않는다면 다음날 찾아 뵙겠다고 하니 찾아오시는 분도 오즉 시간이 어려우면 이 시간에 방문하셨겠느냐 하며 반갑게 맞아 주었다. 잠깐만 기다리시라 하며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옆에서 들은 전화내용이 퇴근 이후 시간에 찾아올 손님 때문에 가족끼리 하기로 한 저녁식사 시간 참석은 늦거나 어쩌면 참석 못할지도 모르니
가족끼리 식사를 먼저하고 있으라는 내용의 전화였다. 남편에게 아무런 불평 없이 그렇게 하도록 해라 양해를 받았는지 시간이 걸려도 괜찮지만 도움이 될지 걱정이라며 맘 놓고 말씀하세요,라고 했다.

가족들에게 미안해 어쩌죠 하니 이런 일은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이라 가족들도 이해를 잘 합니다. 가족들도 소장이 맘 놓고 근무할 수 있는 여건 조성에 적극 협력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건진료소가 울주군 지역에는 9개 진료소가 있다고 했다. 짐작하는 바 같이 오지마을 교통도 불편하고 젊은이들이 아주 귀하고 노인들이 어울려 사는 마을이 있는 곳에 진료소를 개소하여 운영되고 있단다.

외광보건진료소를 개설하게 된 것도 울산-남창-웅상용당을 운행되는 버스 한 대가 하루 5회 왕래한다. 새벽시간과 밤늦은 시간 2회를 제외하면 어르신들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시간에 운행되는 회수는 3회에 불과하다. 평균 3시간에 한 번씩 운행된다. 젊은이가 얼마나 없는지 이곳에 있는 삼광초등학교가 1991년에 폐교가 되었다.

그런데 이 지역은 출퇴근 시간에는 승용차량들이 홍수를 이룬다. 이곳에서 승용차로 부산 해운대와 울산도심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30분 내외로 갈 수 있는 거리다. 풍요로움 속에 기근이라는 표현이 이런 현상을 두고 하는 표현 같다. 부산광역시를 인접해 있고 울산광역시 내에 있는 오지마을이다. 대도시속의 복지 사각지대에 관한 정책도 국가 중요정책이라는 사실이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

필자가 먼저 필자의 처절하게 가난 했던 과거모습을 이야기하고 소장님의 성장배경과 외광보건진료소에 근무하게 된 동기를 말씀해 주실 수 있는지 하니 격의없이 대화에 응해주었다. 김명란 소장은 1970년 창녕군 남지읍 성사리에서 태어나 자랐다. 3살 때 어버지가 사십 초반의 연세로 하늘나라로 가시고 엄마는 32세 때 미망인이 되셨다. 형제로는 오빠 세 사람이 있었고 3남 1녀중 막내였다.

명란이는 초등학교 다닐 때 우리는 왜 아버지도 없고 이토록 가난하게 사느냐 엄마에게 물으니 명란이 태어나기 이전에는 부자라고 할 수는 없지만 끼니 걱정하지 않고 살 정도의 농토도 있었고 부지런한 아버지가 계셔서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고 한다.

아버지 형제 분들이 여러분 계셨는데 큰아버지께서 충남 서산에서 간척사업을 하셨는데 아버지 형제 분들이 간척사업에 투자를 하게 되어 아버지도 재산을 처분하여 간척사업에 투자를 하고 이익금을 배당받기로 하였는데 큰아버지는 이익금을 아버지에게 직접 보내지 않고 아버지 형제 분 중 어느 분에게 보냈는데 그분이 아버지에게 전달하지 않고 탕진해 버렸다고 했다. 아버지는 이로 인한 충격으로 병을 얻게되어 고생하시다 젊은 연세에 돌아가셨다 했다.

엄마는 가난과 어린 3남1녀의 자식만 물려받아 산다고 고생이란 고생을 다하셨다 하며 엄마란 용어가 나오자 말자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잊지 못했다.
엄마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몸이 아프고 아무리 고되어도 아프다는 말씀도 피곤하다는 말씀 한마디 하지 않으시다 잠자리에 들기만 하면 자는 잠결에 당신도 모르게 신음하는 소리를 내셨다. 지금도 소장의 가슴을 가장 아프게 하는 소리는 자는 잠결에 엄마의 신음을 떠올릴 때란다. 엄마의 신음소리 때문에 오늘 보건진료소에 근무하고 있는 것 같고, 찾아오시는 노인들을 대할 때도 엄마 생각을 하며 대하니 노인들이 좋아 하시는 것 같다고 했다.

이런 와중에도 엄마는 인상 한 번 짓는 일 없고 짜증내는 모습의 기억은 없다. 항시 웃는 모습이시며 다정다감한 모습으로 대해주셨다. 엄마는 연약한 몸으로 다섯 식구의 끼니 해결하기도 힘에 겨웠을 것인데 큰오빠를 고등학교를 졸업시키고 작은오빠까지 공부시킬 여건이 못 되었는지 초등학교 밖에 졸업시키지 못하고

셋째 오빠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중국집 짜장면 배달을 몇 년 하다 김해건설공고를 졸업했다. 막내인 명란은 성사 마을에 있는 성사초등학교에 입학하여 5학년까지 결석 한 번 하지 않고 우수한 성적으로 초등학교를 다니다 6학년이 되어 홍역을 심하게 앓아 일주일쯤 학교를 가지 못해 6년 개근을 받지 못한 것이 애석하다고 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니면서 지각, 조퇴, 결석 한 번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중학교는 집에서 4km가 넘는 남지여자중학교를 입학했다. 학교가는 길은 산길 논길을 따라 가는 길이라 평탄한 길 10km 가기보다 더 어려운 길이었다. 이런 길을 자전거로 통학했다.
자전거는 성할 때보다 고물 기간을 더 오래 타서 하루에도 몇 번씩 체인이 벗겨지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고통도 예사고통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는 줄곧 우등생이었는데 읍내 중학교 입학시험 성적이 전교 69등이었다. 너무나도 충격이라 죽도록 공부를 했지만 졸업 때는 간신히 전교 15등으로 졸업을 했다.

이 정도의 실력으로도 마산이나 부산 등지 고등학교를 갈 수 있는 실력이었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지역고등학교 가는 것마저 어려운 처지에 타지로 유학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 남녀 공학인 남지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남지고등학교 입학시험 성적은 전교 10등으로 입학했다.

고등학교 때는 여성스럽지 못하게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이 남학생들 보기에도 민망해 여성스러운 척 하느라 버스비 왕복 240원을 날마다 엄마에게 동전으로 딱 맞게 받아 통학을 했다.

버스 요금을 날마다 동전으로 딱 맞게 주시는 엄마도 예사일이 아니었지만 받아 가는 명란은 고맙고 미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말 못할 용돈도 필요한데 용돈이란 명목으로 돈을 받아 본 적이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진학을 하고 싶었지만 가정형편상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간호조무사 학원을 수료하면 간호대학 장학생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정보를 듣고 마산에 있는 간호조무사 학원에 등록하여 학원수업을 받으며 간호대학 진학의 길이 듣던 말과는 너무 차이가 있기에 2개월간 다니다 학원을 포기하고 대학진학을 위한 공부에 전념하기로 하고 집에 돌아와 공부를 하기 시작했지만 혼자서 공부하는 것도 쉬운일이 아니고 심한 노동에 밤낮으로 시달리는 엄마를 바라보며 공부하는 것이 너무 가슴이 아파 공부를 포기해 버리고

직장을 구해 가계를 도울까 하는 방황을 하다 일생의 진로에 어머니만큼 영향을 주신 초등학교 4학년때 담임선생님을 하시던 김두찬 선생님이 뵈옵고 싶기도 하고 자문을 구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마산에 근무하시며 마산에 거주하고 계시는 선생님댁을 방문하니 선생님도 사모님도 친딸을 맞이하는 자세로 맞이해 주시며 진로에 대하여 의논하니 대학진학을 선택하라고 하시며 쉬운 일은 아니지만 간호대 공중보건 장학생제도가 있는데

장학생에 선발되면 수업료 전액과 숙식 무료제공, 책값 등 일체 국비를 제공받고 학교 졸업후 의료시설이 없는 오지에 3년간 의무 복무를 하면 된다고 했다. 대학도 가고 싶고 공부하고 싶은 학문도 간호학 이였기에 간호대학 진학을 결심하긴 했지만 대학입학시험 합격하기도 쉬운 일이 아닌데 장학생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불안도 있었는데 선생님께서는 명란이는 충분하게 해낼 수 있다는 용기를 주시며

집에가 공부에 전념하기도 어렵고 하니 선생님 댁에서 숙식을 하며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고 필요하면 학원도 나가며 공부하라고 간곡하게 권유를 하시기에 선생님 댁에 기거하며 공부하여 현재는 마산대학의 전신인 마산보건전문대학에 38등으로 입학했다. 장학생 선발조건은 농어촌자녀로서 극도로 가난한 학생 중에 학업성적 순으로 선발하도록 되었으며 장학생 대상자는 3명이었는데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학비 걱정 없이 공부를 하게 되었다. 사람은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진로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명확한 사실이란 걸 믿고 있단다. 김두찬 선생님과의 인연은 너무나도 깊은 인연이다.

초등하교 4학년 재학 시 자석필통이 너무 가지고 싶어 발광이 날 지경인데 엄마에게 필통을 사달라고 해봐야 있는 필통 두고 왜 필통을 사느냐 하며 안사줄 것은 뻔한 일이라 사달라는 말씀을 드릴 수도 없고 반 친구들이 자석필통을 여닫고 하는 모습이 너무 부럽기도 하는 차 옆 교실 창가 책상위에 놓인 자석필통이 있기에 필통을 한번 만져보고 싶은 충동에 창을 열고 필통을 만져보니 더 가지고 싶은 마음이 충동질하고 하필 옆 교실은 아무도 없는 빈 교실이라

아무도 보는 이가 없기에 필통을 들고 와 명란의 책상서랍에 넣어 버렸다. 필통을 훔친 도둑이 된 것이다. 몇 시간을 필통을 다시 가져다 놓을까 내가 차지해 버릴까 하는 갈등에 정신 차리지 못하고 있는 터에 옆반 담임선생님이 우리 교실에 와 우리반 학생이 자석필통을 잃어 버렸는데 주운 사람이 없는가 하고 물어보는 즉시 명란은 필통을 들고 이것은 아니죠 하니 옆반 선생님이 맞다고 하며 받아 가셨다. 그 이튿날 김두찬 선생님은 명란을 교무실로 불러 아무도 모르게 자석필통을 사오셔서 필통을 전달하시며 애틋한 눈으로 바라보시며

머리를 쓰다듬어시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건강하고 착하게 자라라고 하셨다. 그 이외는 어떤 말씀도 없으셨지만 옆반 선생님과도 명란이 입장이 난처해지지 않을 조치도 다 취하신 것 같았다. 어느 누구도 자석필통에 관하여 논하는 일이 없었다. 선생님의 지혜로운 잠깐의 애틋한 눈길과 은은한 손길이 어린 새싹이 상처 받는 일 없이 무난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일생을 살아가는데 선생님이 교훈과 지표 대상이 되었다. 이런 선생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김명란 소장은 오늘이 있을 수 없다고 하며 필자가 어찌할 바를 모를 정도의 눈물을 흘렸다.

어린 시절 선생님들의 어줍잖은 잠깐 순간의 언행이 자라는 연약한 새싹을 꺾기도 하고 꺾인 새싹에 새 움을 트게 하기도 한다.

마산보건전문대학을 졸업하고 1997년 10월 12일 충무에서 뱃길로 30여km 1시간30분이나 소요되는 통영군 산양면 추도보건진료소에 발령을 받아 부임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자가 발전을 해 전기불을 밝히고 있는 외딴 섬마을 이었다. 자가발전시간은 여름에는 오후 7시경부터 오후 9시경까지 겨울에는 오후 6시경부터 오후 8시경 되면 발전이 되지 않아 책이라도 보려고 하면 촛불이나 호롱불을 이용해야 했다. 주민들이 밤중에 병이 나면 진료는 해야 하고 불이 밝지 못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섬마을 분들이 가족처럼 대해주셔서 참 고마웠다. 그 당시에 계시던 어른들이 많이 돌아가시고 젊은 분들은 노인이 되었다. 아직도 연락을 하며 살아간다. 추도에서 3년 의무복무를 마치고 엄마에게 3년의 의무복무가 다 끝났다 하니 엄마는 한숨을 내쉬며 이제 발 뻗고 잠들어도 되겠다 하셨다.

3년 의무복무를 다하지 못하면 대학다닐 때 받은 장학금은 재정보증인들이 변제하도록 되어 있었다. 재정보증을 해주신 분은 김두찬 선생님과 같은 마을 친구 아버지이신 전용술 어른이 해주셨다. 그 어른들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맡은 바 직분의 도리를 충실하게 하는 일이라 하며 다짐을 자주하지만 부족함이 많아 많은 후회를 하며 살아간다.

남편 근무지인 울진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울진군의료원에 발령받았다. 근무지는 울진군의 의료원 북면소곡진료소에 근무하게 되었다. 3개 진료소를 이동하며 6년간 근무를 하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고급장교 출신인 군수는 공무원들을 군에서 졸병 대하듯이 하고 주일휴가제를 철폐하고 휴가일은 주중 군수 맘대로 질정 없이 택하며 명령하는 등 예고 없이 진료소를 방문하여 진료소장의 인격을 노비보다 하찮게 취급했다. 주말이 아닌 날 휴가일도 정해져 방문하는 분들은 응당 평일이니 근무하는 날로 알고 방문하여 아예 휴가일 없이 근무해야 한다. 이런 일도 감당하기 버거웠지만 더 보람된 일은 보건교사로 재직하며 김두찬 같은 선생님이 되리라 마음 먹고 보건교사 임용고시를 위하여 직장사직을 하고 세 살 되는 딸과 낳은 지 8개울 되는 아들을 친정엄마에게 맡겨두고 서울고시학원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하였다.

이때도 남편은 첫마디에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며 응원해 주었다. 임용고시를 위해 직장을 버리고 간 아내에게 충동을 받아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했는지 남편은 과장 시험에 합격하여 과장으로 승진되어 고리원전으로 발령받았다. 교사 임용고시도 만만찮아 한번 시험을 보고 포기하고 남편 직장 가까운 외광진료소장으로 2005년 4월 1일 재임용되어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다.

실례가 된다면 답변 않으셔도 된다고 하며 현재 공무원 직급은 몇 급에 해당 되느냐 하니 보건진료 6급이라고 하였다. 진급을 하려면 진료소에 근무하기보다 보건소에 근무하는 게 유리하지 않느냐 하며 주어진 직분에서 열심히 근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높은 직급에 있어야 더 큰 역량을 발휘하여 국민에게 더 큰 봉사를 할 수 있는 길이 아니냐 하니 그 말씀도 맞지만 현재 주어진 여건에서 행복을 느끼며 사명감으로 임하는 자세가 최선의 자세라고 했다.

만약 더 높은 자리에 처하게 된다면 어떠한 자세로 근무하겠느냐고 하니 권위로 다스리는 자가 아닌 존경의 힘으로 다스리는 자가 되길 계속 노력하겠다고 했다.

필자나 주변 분들의 김명란 소장을 평가할 때 정말 존경받는 지도자가 될 인품으로 다듬어진 분이라 김명란 소장처럼 근무하는 공무원이 참 많았으면 좋겠다.
웅상뉴스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17년 12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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