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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문화인] “차 한 잔은 나를 다스리는 시간”…나눔으로 차 문화를 일구는 박득복 원장

작은도서관 개관·운영에서 시작된 지역 봉사
자원봉사 8천 시간 가까이…2026년 자원봉사상 수상
시각장애인·발달장애인·청소년 대상 차 교육과 재능기부
우불산 차밭·우풍차 등 지역 자원 활용한 차문화 확산 꿈꿔

김경희 기자 / 입력 : 2026년 10월 08일
작은도서관 활성화와 지역 봉사에 힘써오다 차를 만나 차문화 교육으로 활동 영역을 넓힌 박득복 다향차문화원 원장.

[양산웅상신문 김경희 기자] “차 한 잔이 무엇이냐고요? 다스림이지요. 나를 다스리는 것.”

박득복 다향차문화원 원장에게 차는 단순히 마시는 음료가 아니다. 물을 끓이고 찻잎을 우리고 작은 찻잔을 두 손으로 들어 천천히 마시는 그 짧은 시간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아무리 급한 사람도 차를 마시는 순간에는 천천히 움직일 수밖에 없어요. 몸의 움직임이 작아지고 조용해지지요. 그 잠깐의 시간에 ‘내가 오늘 무엇을 했지’ 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평산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 원장은 차를 이야기할 때마다 ‘사람’을 빼놓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나눔이 차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1998년 웅상에 정착한 뒤 작은도서관 활성화와 주민 문화활동, 자원봉사에 오랫동안 힘을 쏟았고, 이후 차를 배우면서 그 활동의 영역을 차문화와 교육으로 넓혀갔다. 지금까지 쌓인 자원봉사 시간만 8천 시간에 가깝다.

도서관에서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키웠던 그는 이제 차를 통해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작은도서관에서 시작된 그의 나눔이 어떻게 한 잔의 차와 만나게 됐는지, 그 이야기를 들어봤다.

‘작은도서관 엄마’로 불리다

박 원장은 1998년 양산 웅상으로 이주했다. 당시 웅상은 지금보다 문화시설이 부족했고 주민들이 가까운 곳에서 책을 읽거나 문화 프로그램을 접할 공간도 많지 않았다. 아파트에 창고처럼 사용되던 공간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직접 청소하고 칠을 한 뒤 전시회를 열고 염색과 노래교실, 풍물 등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문화 프로그램을 하나씩 시작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도서관에 관심을 갖게 됐다. “제가 청소년기를 어렵게 보냈어요. 어릴 때부터 나중에 내가 능력으로 돈을 벌게 되면 사회에 돌려주는 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니 도서관이었어요.”

도서관을 만들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책도 시설도 충분하지 않았다. 책을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찾아다녔고, 창고에 보관돼 있던 먼지 쌓인 책을 가져와 닦아 책장을 채우기도 했다. 주민들에게 책을 기증받고 자원봉사자를 모았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보자고 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한 곳의 작은도서관 활동은 지역 곳곳으로 번졌다.

박 원장은 작은도서관을 만들고 싶어 하는 곳을 찾아다니며 개관을 도왔다. 아파트 등에 도서관 조성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재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개관 후에는 자원봉사자를 조직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봉사자를 모아놓고 그냥 일을 시키는 게 아니에요. 왜 자원봉사를 해야 하는지를 먼저 이야기했어요.” 당시 작은도서관 활성화에 앞장선 이시우 관장을 ‘양산 작은도서관의 아버지’라고 했다면 자신은 ‘작은도서관의 엄마’로 불렸다고 박 원장은 회상했다. 직접 찾아다니며 도서관 개관을 도왔기 때문이다.

도서관은 그에게 단순히 책을 빌려주는 공간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찾아오고 주민들이 만나며 어려운 사정을 가진 사람이 마음을 털어놓는 공간이었다. 관장실에서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일자리가 필요한 사람에게 일할 곳을 연결해주기도 했다. 도서관 개관과 운영 방법, 자원봉사자를 어떻게 조직하고 운영할 것인지 등을 주제로 강의도 했다.

박 원장이 지역활동을 하면서 지켜온 원칙은 자신이 만든 조직이라고 해서 끝까지 자리를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는 어떤 일을 해서 성과가 만들어지면 다음 단계로 가는 편이에요.” 작은도서관 협의회 활동을 하면서 젊은 관장들이 좋은 아이디어를 내는 것을 보고 자신이 물러날 때라고 판단했다. “젊은 사람들이 너무 좋은 생각을 내는 거예요. ‘이거는 이제 내가 안 해도 되겠다’ 싶었어요.” 도서관 역시 실무자와 자원봉사자들이 스스로 움직이도록 하고 자신은 어려운 행정적인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하는 역할을 했다. 이러한 방식은 훗날 차를 가르치고 후배 차인을 양성할 때도 이어졌다.

8천 시간 가까운 봉사

1998년 웅상에 정착한 이후 도서관과 복지시설, 지역 문화활동 등으로 이어진 박 원장의 자원봉사 시간은 8천 시간에 가깝다. 2026년에는 자원봉사상도 받았다. “다른 상보다 그 상이 제일 좋았어요.” 어린 시절 어려운 환경을 지나면서 훗날 자신에게 힘이 생기면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이 오랜 세월 지역사회 활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도움이 필요한 곳을 발견하면 혼자 모든 일을 떠맡기보다 사람을 모았다. 미용을 할 수 있는 사람,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사람, 물품을 지원할 수 있는 사람 등 각자가 가진 재능을 연결했다. 자신에게 모든 것을 집중시키기보다 사람을 찾아 역할을 맡기고 그 사람이 다시 다른 사람을 이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제가 잘하는 게 사람을 육성하고 양성하는 일인 것 같아요. 지도자를 발굴하고 만들어주는 일이 좋아요.”

도서관에서 만난 차

오랫동안 도서관 활동을 이어온 박 원장은 50대에 접어들면서 자신의 다음 삶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도서관만 하다 보니까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하나 더 준비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차였다. 도서관에서 차 관련 프로그램을 접하면서 차를 단순히 마시는 데 그치지 않고 교육에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본격적으로 차 공부를 시작했다. 차에 관한 이론과 역사, 행다법 등을 배우고 교육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차 자체에만 머물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강의를 할 때 차를 함께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차를 마시고 다식을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잖아요.” 공부한 내용을 교육자료로 만들어 학교와 도서관, 복지기관 등에서 활용하기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사람을 만났던 그가 이제는 찻잔을 사이에 두고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이다.

차 앞에서 달라지는 아이들

박 원장은 청소년들에게 차를 가르치면서 차 교육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평소 산만하거나 말을 잘 듣지 않던 아이들도 차 도구 앞에 앉으면 행동이 조금씩 달라졌다. 차를 우리려면 물을 따르고 차가 우러나기를 기다려야 하며 찻잔을 조심스럽게 들고 상대방에게 건네야 한다. “차를 딱 시작하면 공손해져요.” 그는 이것을 억지로 예절을 가르쳐서 만들어지는 변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차를 마시는 과정 자체가 행동을 천천히 만들고 상대방을 의식하게 한다는 것이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시각장애인들과 함께했던 차 수업이다. “시각장애인들은 감각이 굉장히 뛰어나요. 손으로 만지고 향을 맡고 맛으로 차를 느끼니까 차 공부를 잘해요.” 손끝으로 다구를 느끼고 향을 맡으며 차를 접하는 모습에서 박 원장 역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너무 좋아했어요. 저한테도 정말 보람 있는 시간이었어요.”

발달장애인들과 함께한 차 교육도 잊을 수 없다. 처음에는 집중하기 어려워하던 참여자들도 찻자리에 앉으면 조금씩 달라졌다. 차 도구를 앞에 놓고 한 사람씩 직접 차를 우리도록 하고, 한 사람이 해낼 때마다 주변에서 박수를 보내고 칭찬했다. “자폐가 있으면 이런 것을 못 할 것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렇지 않아요. 차를 우리고 잔을 들고 마시는 것을 다 해요. 저도 감동했어요.” 박 원장은 이 경험을 통해 차가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예절을 가르치는 도구가 아니라 스스로 움직임을 조절하고 기다리며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게 하는 매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어렵게 가르치면 차를 안 배워요”

박 원장의 차 교육 원칙은 ‘쉽게’다.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 값비싼 다구부터 마련하라고 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아무 찻잔이나 가지고 오라고 해요.” 선생이 먼저 차를 우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수강생은 보고 마신다. 몇 차례 수업을 하고 나면 스스로 마음에 드는 찻잔을 하나씩 마련해 온다고 한다. 그때부터 차의 종류와 역사, 차를 우리는 방법과 찻잔을 다루는 방법을 하나씩 알려준다.

“어렵게 공부시키면 차를 안 배워요. 어려운 공부는 가르치는 사람이 해야지 일반인에게 처음부터 어렵게 가르칠 필요는 없어요. 보고 배우고, 마셔보고, 궁금해지면 그때 설명하는 거죠.” 박 원장은 이를 ‘산 교육’이라고 말한다. 차를 지식으로 먼저 배우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차 교육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말은 ‘다심(茶心)’이다. “차를 마시면 몸의 움직임이 작아지고 조용해져요. 아무리 급해도 차를 마시는 순간에는 천천히 해야 하잖아요. 잠깐이지만 나를 반성하는 시간이 되는 거죠.” 상대에게 찻잔을 건네고 다식을 놓는 작은 행동에도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이 담긴다. 그래서 차를 배우는 것은 단순히 차를 잘 우리는 기술을 익히는 것과는 다르다고 강조한다. “차는 마음이에요.”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차담’도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특히 마음이 힘든 사람이나 청소년을 만날 때 처음부터 질문을 쏟아내지 않는다. 옆에 앉아 말없이 물을 끓이고 차를 우린다. 향이 퍼지면 찻잔에 차를 따라 건넨다. “마셔봐라 하고 한 잔 주는 거예요. 그러면서 조금씩 이야기를 시작하는 거죠.” 그에게 차담은 찻잔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다.

젊은 세대에게는 차도 젊게

박 원장은 젊은 세대에게 차를 권할 때는 접근법도 달라야 한다고 말한다. 커피에 익숙한 사람에게 처음부터 전통적인 형식만 강조하면 차가 어렵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보이차나 녹차도 편하게 마셔보게 하고 찬물에 천천히 우려 마시는 냉침법도 알려준다. “젊은 사람들은 커피에 익숙하잖아요. 그러면 차도 편하게 마실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전통을 지키는 것과 차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다르며, 일상에서 차를 마시는 사람이 많아져야 차 문화도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사람을 키우는 차인

박 원장의 차 활동에서 눈에 띄는 것은 자신이 직접 모든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차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공부하도록 권하고 가능성이 보이면 전문적인 교육과정을 밟도록 연결한다. 공부를 마친 뒤에는 봉사단체나 강의 현장과 연결해 실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제자 가운데는 교육과정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스스로 찻자리를 꾸릴 정도로 성장한 사람도 있다. 그럴 때 박 원장은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자리를 비워줄 때는 비워줘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 사람이 성장하지요.” 2026년 9월에는 동원과학기술대학교에서 차 관련 교육과정도 개설됐다. 박 원장은 자신이 직접 모든 강의를 맡기보다 오랫동안 차를 공부한 강사를 초빙하고 교육과정 운영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했다. 도서관 시절 사람을 모으고 키운 뒤 스스로 설 수 있도록 했던 방식이 차 교육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양산의 차를 양산의 문화로

박 원장의 관심은 이제 차를 지역의 문화로 확산시키는 데 있다. 그동안 차를 공부한 사람들과 함께 지역 행사에서 찻자리를 만들고 차 봉사와 시연 등을 이어왔다. 혼자 차를 잘 우리는 것만으로는 차 문화가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차를 배운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한 잔을 건네고, 그 사람이 다시 차에 관심을 갖는 과정이 이어져야 한다. 양산행복나눔차인회 등을 통해 지역에서 차 봉사와 문화활동을 해온 것도 그런 이유다. “우리 일상생활이 돼야 차가 활성화됩니다.”

특히 양산의 역사·문화 자원과 차를 연결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 박 원장은 우불산 일대에 오래된 차나무와 차밭이 남아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지역의 차를 ‘우풍차’라는 이름으로 알리고 상품화하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차도 있고 이야기도 있잖아요. 그러면 이것을 알려야지요. 차 행사를 해야 차도 알리고, 차 축제를 해야 사람들이 차를 알게 됩니다.”

박 원장은 앞으로 웅상에서도 지역의 역사문화와 차를 결합한 행사가 활성화되기를 바란다. 차를 몇몇 전문가나 동호인들만의 문화로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직접 보고 마시고 체험할 수 있는 일상의 문화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차 문화는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보고, 마시고, 함께해야 해요.”

“좋은 것은 같이 나누면서 살아야죠”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을 묻자 박 원장의 이야기는 다시 봉사로 돌아왔다. 특히 차를 가르치며 보람을 느꼈던 시각장애인과 발달장애인 등을 위한 차 교육과 재능기부를 다시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다시 하게 되면 그런 일을 같이 하고 싶어요. 내가 가진 재능을 그냥 나누는 거죠.”

그에게 봉사는 대가를 기대하는 일이 아니다. “대가 없는 봉사, 재능기부를 하고 싶어요. 보상을 받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내가 가진 재능을 그냥 주는 거예요. 좋은 것은 같이 공유하면서 살아가면 좋잖아요. 혼자 못 하면 같이 하면 되는 거죠.”

1998년 웅상에 정착해 작은 공간을 청소하고 주민들과 문화 프로그램을 시작했던 사람, 책을 모아 도서관을 만들고 자원봉사자를 모았던 사람, 한 곳이 자리를 잡으면 다음 사람에게 넘겨주고 또 다른 일을 찾아 나섰던 사람. 그렇게 쌓인 자원봉사 시간이 어느덧 8천 시간에 가까워졌다. 지금 그의 손에는 책 대신 작은 찻잔이 들려 있지만 하는 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연결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일이다.

박 원장에게 마지막으로 다시 물었다. 차 한 잔은 무엇인가. 대답은 처음과 같았다. “다스림이지요. 나를 다스리는 것.” 작은도서관에서 시작된 그의 나눔은 그렇게 한 잔의 차를 통해 다시 사람에게로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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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기자 / 입력 : 2026년 10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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