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상재건중학교를 설립한 전종태
문화유산회복재단 경남본부장 박극수
김경희 기자 / 입력 : 2026년 09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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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회복재단 경남본부장 박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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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상재건중학교를 설립하신 전종태 선생은 1937년 소주마을 유복한 가정에서 1남 2녀 중 외동아들로 태어나 귀하게 자라 웅상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개운중학교 설립시 1회로 입학하여 졸업하고 부산공업전문대학교 졸업하고 해군 수중폭파대(UDT)에 자원입대하여 모범 병사로 복무하다 제대를 하고 일생 가정 돌보기 보다 지역 돌보기에 전념을 하다 가산을 다 날려버리고 노후에는 기본생활에도 어려움을 당하는 생활을 하다 2022년 세상을 떠나신 분이다.
청년시절에 웅상체육회 설립에 중심이 되어 웅상체육발전에 기여하였다. 웅상체육회를 설립하여 매년 웅상면민체육대회를 실시하는 전통을 마련했다. 체육회기금 마련을 위하여 면민들에게 협찬을 구하고 개운중학교 설립자이신 임상수 선생님에게 권유하여 웅상체육회 기금으로 농지 2,000여평을 기증받았다.
1960년대 말경 소남마을 회관에서 웅상재건중학교 전신인 주경야독하는 학교를 만들어 가정사정이 어려워 중학교 진학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모집하며 정규중학교 과정의 수업을 했다. 강의에 임하는 교사분들도 무임금으로 봉사를 했다. 학생수가 날로 늘어나 교실이 협소하여 웅상재건중학교를 설립하기로 하고 부지는 소남마을 공동으로 이용하는 부지 1,000여평과 웅상재건중학교 무료교사로 봉사히신 성영수 선생의 토지(웅상면 소주리 48-1번지 일대) 약500평의 토지를 기증받아 이 자리에 웅상재건중학교를 건립하게 되었다. 교사 건립에 소요된 자재구입비 대다수를 전종태 선생이 부담하고 주변에 기업하는 분들도 도우고 소요된 인건비는 주민들의 자발적 협조와 소남마을 회관에서 수업받는 학생들의 노동 협조에 의하여 건물을 완공했다.
웅상재건중학교 건물을 건립하고 1969년경 웅상재건중학교란 학교 명칭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학생들에게 일체의 수업료를 받지 않았으며 당시 무임금으로 봉사하신 선생님들은 교장 전종태 교사 주남출신 이태걸, 소남출신 성영수, 소남출신 김시경, 용당출신 이승갑, 주남출신 안신우, 소남출신 윤종진, 소남출신 김창국(출생지는 양산면), 서창출신 김말선, 명동출신 박영배 이분들이 헌신적으로 강의를 해주셨다. 숭고한 인간애를 발휘하신 분들이다.
교육의 힘은 위대하다
웅상의 자랑거리 중 으뜸 자랑거리는 웅상에서는 최초로 초중등교육기관인 백동정사를 사재로 건립하고 훈장선생님들이 무임금으로 훈도하시며 학생 부모님들의 신분의 귀천의 분별 없이 노비의 자녀도 차별없이 수업에 임하도록 하였고 백동 인근에 와 글자랑 하지 말라는 고유언어를 만들어 내었다. 인근마을에 (외홈) 걸인들이 큰 마을을 이루어 살면서 지역의 모든 주민들이 끼니때 이들을 반갑게 맞이하여 먹을거리를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선비다운 지역인심을 길러낸 원천은 백동정사의 교육정신이었다. 마을마다 서당이 건립되게 된 것도 백동정사에서 수업받은 제자들이 스승의 교육철할 때문이었다.
이 정신이 이어저 웅상초등학교, 덕계초등학교, 서창초등학교, 개운중학교, 웅상재건중학교 설립시 대다수 부지를 주민들이 기증하였으며, 부지 정지작업과 건물 건립시 주민들의 노동 협찬에 의하여 건립되었다. 개운중학교 초창기 수업은 웅상초등학교 교실을 빌리고 교사들은 무임금으로 봉사하였다. 웅상재건중학교 역시 소남마을 회관을 빌리고 교사들은 무임금으로 개교때부터 폐교시까지 봉사했다. 전국 어느지역에도 보기 드문 일이다.
웅상재건중학교는 교사들 인건비 지출은 하지 않았지만 이외 학교운영비는 일반학교와 같이 소요되었다. 만만찮은 학교운영비 대다수를 전종태 선생이 부담하고 주민들의 협찬에 의하여 운영되었다.
웅상재건중하교 수업을 십년넘게 하다 주민들의 소득도 늘어나고 대다수 학생들이 개운중학교로 진학할 사정이 되고 정부의 중학교 의무교육 시행으로 재건중학교에 수업받을 학생이 없어 웅상재건중학교는 폐교를 했다.
전종태 선생은 웅상초등학교 동창회장, 개운중학교 동창회장, 전국해군전우회 회장, 신상우국회의원 비서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웅상행정구역 개편 공동추진위원장 등을 역임하시며 평생 정치성향은 김대중 대통령을 신봉하시는 의식을 가지고 실천하여 많은 억압과 탄압을 받는 생활을 했다. 지역현안이 발생하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지역현안을 최우선시하여 몰입하신 본받을 만한 애향시민의 길을 걸어며 일생을 사셨다.
말로에 수녀이신 따님의 영향으로 천주교 신자가 되어 모든 일 초월하는 건실한 믿음 생활을 하시다 하늘나라로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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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기자 /  입력 : 2026년 09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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