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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기획] 대운산 시명사 주지 근일 스님 대담 ˝떠난 이를 배웅하고 산 자의 매듭을 풀다˝

“지극한 천도는 한마음으로 짓는 자비의 울림입니다”
바라춤·살풀이춤·극락무 어우러진 천도재 현장
영가의 평안과 유족의 마음 함께 보듬는 천도 원력

김경희 기자 / 입력 : 2026년 09월 17일
천도재에서 경전을 펼쳐 독경하고 있는 시명사 주지 근일 스님.

지난 11일 오전 10시 30분, 근일 스님이 경전을 펼쳐 염불을 시작하자 고요했던 법당 안은 낮고 힘 있는 독경 소리로 채워졌다. 이어 요령 소리가 울리면서 천도 의식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법당 한쪽에는 영가를 위한 상이 차려져 있고, 가족들은 두 손을 모아 합장했다. 누군가는 눈을 감고, 누군가는 한곳을 오래 바라봤다. 먼저 떠난 이를 향한 그리움과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이 법당 안의 고요 속에 머무는 듯했다.

이날 양산 대운산 시명사에서 봉행된 천도재 현장의 풍경이다. 이날 도량에서는 근일 스님의 염불과 천도 의식이 이어지는 가운데 바라춤, 살풀이춤, 극락무가 중간중간 펼쳐졌다.

천도재에서 하얀 소매를 길게 펼치며 살풀이춤을 추고 있는 무용가.

무용가가 양손에 바라를 들고 법당 중앙에 섰다. 바라가 맞부딪치는 맑고 강한 쇳소리가 법당 안을 울리고 절도 있는 춤사위가 이어졌다. 바라춤에는 도량을 맑게 하고 좋지 않은 기운을 걷어낸다는 의미가 담겼다. 이어 하얀 소매가 장단을 따라 허공을 가르며 너울거리는 살풀이춤과 극락무가 펼쳐지며 영가의 평안한 길을 기원했다. 그 중심에서 천도재를 이끈 이는 시명사 주지 근일 스님이다.

화려한 공연을 보는 자리와는 달랐다. 춤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표정에는 먼저 떠난 이를 향한 그리움과 남겨진 이들의 기원이 겹쳐 있었다. 염불과 요령 소리, 춤과 몸짓이 하나의 의식 안에서 이어졌다.

“평소 기도와 천도재는 다릅니다”

근일 스님은 천도재를 집전할 때 평상시의 기도와는 마음가짐부터 달라진다고 했다.

“일반적인 기도를 할 때는 평온한 마음으로 합니다. 그런데 천도재에 들어가는 순간에는 모든 마음과 힘이 그쪽으로 집중됩니다.”

천도재를 시작하면 다른 생각을 내려놓고 오직 영가와 유족에게 마음을 집중한다는 것이다. 스님은 이를 영가와 수행자가 한마음이 되어가는 과정으로 설명했다.

천도(薦度)는 불교에서 죽은 이의 영가가 고통과 집착에서 벗어나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도록 독경과 염불, 법문 등을 올리는 의식이다. 하지만 근일 스님이 생각하는 천도는 떠난 사람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천도재가 봉행되는 법당에 피워놓은 향. 영가를 향한 기원이 의식 내내 이어졌다.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남은 가족에게는 미안함과 원망, 후회와 죄책감이 남는다. 특히 갑작스러운 죽음이나 오랜 병환 끝의 이별은 살아 있는 사람의 마음에도 깊은 흔적을 남긴다. 근일 스님은 천도 의식을 통해 영가를 위로하는 한편 남겨진 가족의 응어리도 함께 풀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떠난 사람을 잘 보내는 일은 결국 남은 사람이 다시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임종의 자리까지 찾아가는 ‘시다림’

근일 스님은 천도재뿐 아니라 임종을 맞은 사람과 가족을 위해 병원이나 가정을 찾아 ‘시다림’을 하기도 한다.

“시다림을 할 때는 영가의 마음을 달래고 법문을 들려줍니다. 가족에게 원망이나 풀지 못한 마음이 있다면 그것 역시 내려놓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요.”

스님은 49재와 천도재도 각각 의미와 절차가 다르다고 설명한다. 49재는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 49일 동안 7일마다 재를 올리는 불교의례이며, 천도재는 영가의 천도를 기원해 별도로 봉행하는 의식이라는 것이다.

바라춤·살풀이춤·극락무로 영가를 배웅하다

이날 천도재에서 눈길을 끈 것은 세 가지 춤이었다. 바라춤과 살풀이춤, 극락무가 염불과 의식 사이사이에 이어졌다.

양손에 든 바라는 수행자의 결연한 칼과 같다. 법당 안의 나쁜 기운과 번뇌, 망상을 단칼에 베어내 도량을 맑고 청정하게 정화한다. 이어 펼쳐지는 살풀이춤은 살아서 지은 온갖 업장을 씻어내는 손길이다. 때 묻은 옷을 그대로 두면 입지 못하듯, 생전의 허물과 상처를 씻어내 영가를 가볍게 하고 그 덕화가 자손에게도 미치기를 바라는 발원이다. 마지막 극락무는 모든 집착을 털어낸 영가가 부처님이 계신 극락세계로 발을 디딜 때, 그 길 위에 꽃을 뿌리며 배웅하는 환희의 찬탄이다.

근일 스님은 이 거룩한 몸짓 사이로 쉼 없이 요령을 흔들고 법문을 설한다.

“험하고 거친 마음을 강한 힘으로 억누르려 하면 부러집니다. 끊임없이 자비롭고 선한 기운을 불어넣고 달래주어야 굳어 있던 영가의 마음도, 유족의 응어리도 봄눈 녹듯 누그러집니다. 천도는 밀쳐내는 것이 아니라 지극한 정성으로 감화시켜 편안히 보내주는 일입니다.”

세 춤은 염불과 요령 소리에 어우러져 영가의 평안을 기원하는 천도 의식의 한 부분을 이루었다. 그에게 천도는 몰아내는 일이 아니라 달래어 보내는 일에 가깝다.

새벽 2시 반에 깨어나는 도량, ‘간절함’으로 밝히는 등불

이러한 천도의 원력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명사의 하루는 남들이 깊이 잠든 새벽 2시 30분에 시작된다. 근일 스님은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각에 대웅전에 올라 생명과 도량을 깨우고, 인연 닿은 모든 이들의 안녕을 비는 축원을 올린다. 매일 사시(巳時)마다 천수경을 독경하며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맑게 닦아내는 치열한 일상이 쌓여 비로소 무거운 영가를 들어 올리는 힘이 된다.

스님은 오랜 세월 기도를 이어오며 중증 질환으로 고통받던 이들이 차도를 보이거나, 막혔던 삶의 길이 열리는 기도의 감응을 숱하게 보아왔다. 그러나 이를 신비주의로 포장하지 않는다.

“병은 병원에서 의사의 진단과 치료를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사찰의 기도는 그 힘겨운 터널을 지나갈 때 마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밭을 갈아주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간절함’입니다. 간절하지 않은 마음에는 어떤 복도 깃들지 않습니다. 힘들고 막막할수록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고 간절하게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

질병의 치료와 회복은 의료진의 진단과 치료에 따라야 하는 영역이다. 사찰의 기도와 천도재는 의학적 치료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와 가족이 두려움과 절망을 견디며 마음을 다잡는 종교적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근일 스님이 말하는 기도의 힘 역시 결과를 보장하는 신비한 힘이라기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간절함에 가깝다.

“차 한 잔 나누며 짐을 내려놓는 ‘동업대중’이 되길”

근일 스님에게 사찰은 기도만 올리고 돌아가는 곳이 아니다. 삶이 막막하거나 마음 둘 곳이 없는 사람이 찾아와 차 한 잔을 마시며 자신의 이야기를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경제적인 어려움, 가족 문제, 병고, 인간관계 등 사람들이 안고 오는 사연도 제각각이다. 스님은 특별한 형식을 갖춘 상담이 아니더라도 찾아온 사람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듣는다.

근일 스님은 이런 관계를 ‘동업대중(同業大衆)’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며 함께 수행하고 서로의 삶이 평안하기를 기원하는 인연이라는 의미다.

“시명사에 와서 좋은 공기도 마시고 잠시 쉬었으면 합니다. 스님의 염불 소리도 듣고 함께 한마음이 되어 소원하는 일이 잘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이지요.”

[양상웅상신문 김경희 기자] 대운산의 숲과 바람, 산사의 고요가 사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거운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자리는 마련해 줄 수 있다.

지난 11일 천도재가 끝나갈 무렵 법당을 채웠던 춤도 하나둘 멎었다. 바라 소리가 그치고 허공을 가르던 소매도 내려왔다. 그러나 근일 스님의 염불은 한동안 더 이어졌다.

떠난 이를 잘 보내는 일, 그리고 남은 사람이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마음을 보듬는 일. 대운산 자락 시명사에서 근일 스님이 이어가는 천도 원력은 그 두 가지를 향하고 있다.

“사람은 간절해야 합니다. 힘들 때일수록 마음을 모으고 자신의 삶을 한번 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천도재에서 극락무를 추고 있는 무용가.
양손에 바라를 들고 힘찬 춤사위를 펼치는 무용가. 바라춤은 의식이 행해지는 도량을 정화하고 장엄하는 의미를 지닌다.

시명사 극락전 전경
김경희 기자 / 입력 : 2026년 0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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