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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인식 시인이 자신의 문학과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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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웅상신문 김경희 기자] 30년 넘게 철강업 현장을 지켜온 기업인이 어느 날 시를 쓰기 시작했다. 양산에서 대양철강을 운영하는 정인식 대표다. 각종 철판과 환봉, 특수강, 형강류 등을 취급하며 한길을 걸어온 그는 이제 ‘철강인’이라는 이름 옆에 또 하나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바로 '시인'이다. 꾸준한 습작과 공부 끝에 정 시인은 2023년 《계간문예》 시 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1962년생인 정인식 시인은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업에 뛰어들었다. 젊은 나이에 시작한 사업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사회 경험도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거래처 부도를 겪었고 IMF 외환위기의 거센 파고도 넘어야 했지만 한 번 선택한 철강업을 떠나지 않았다.
정 시인은 “일생을 거기에 몸담았다고 봐야지요. 사업을 한 번 바꾼 적도 없으니까요”라며 “철강업은 내 삶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30년 넘게 한길을 걸어온 그는 지금도 대양철강 현장을 지키는 한편, 틈틈이 시를 쓰며 또 하나의 길을 걷고 있다.
철강은 산업의 기초가 되는 소재다. 제철소에서 생산된 커다란 철판과 환봉 등의 철강재를 기계·자동화설비·조선·건축 등 산업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필요한 규격에 맞춰 절단하고 재단해 공급한다. “산업 기계도 만들고 자동화 기계에도 들어가고, 조선이나 건축 쪽에도 들어갑니다. 산업의 기초가 되는 게 쇠잖아요.” 화려하게 드러나는 일은 아니지만 수많은 기계와 구조물의 시작에는 철이 있다. 정 대표는 그 철을 다루며 한 세대가 넘는 시간을 보냈다. 그런 그의 삶에 어느 날 전혀 다른 언어가 들어온 것이다. 바로 시였다.
아내가 건넨 작은 시집 한 권
정 시인이 시를 가까이하게 된 데는 아내가 건넨 작은 시집 한 권이었다. 지금은 시집 제목과 시인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처음 그 책을 읽었을 때 받은 느낌은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를 사로잡은 것은 거창하고 난해한 시가 아니었다. 신발과 시계, 젓가락처럼 우리가 날마다 사용하는 평범한 물건들이 시가 돼 있었다.
정 시인은 "생활 속에 있는 것들을 가지고 시를 쓰는데 그게 너무 가슴에 와닿았다며, 그때 ‘시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 하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시가 될 수 있고 매일 신고 벗는 신발도 밥상 위의 젓가락도 오래 바라보면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작은 시집 한 권이 30년 철강인의 삶 한편에 문학이 들어설 문을 열었다.
토요일마다 문학관으로…뒤늦게 시작한 시 공부
시를 제대로 알고 싶어진 그는 문학 공부를 시작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울산 오영수문학관을 찾아 약 1년 동안 토요일마다 문학수업을 들었다. 이후 코로나19로 대면수업이 중단된 뒤에도 다른 문인들과 공부를 이어가며 작품을 쓰고 합평했다.
함께 공부하던 이들이 하나둘 등단하고 떠나기도 했지만 그는 공부를 놓지 않았다. “여러 사람이 같이 공부하면 공부가 되더라고요. 혼자 하려니까 시적 감각도 떨어지고 쉽지가 않아요.” 지금도 문인들을 만나 작품 이야기를 나누면 다시 시를 써야겠다는 마음이 생긴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한 문학 공부는 등단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현재 양산시인협회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지역 시낭송 모임인 ‘시와의 산책 詩낭송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지역 문학인들과 교류하며 문학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리어카를 미는 할머니에게서 시를 발견하다
정 시인이 관심을 두는 것은 생활 가까이에 있는 풍경이다. 철강공장에서 일하다 시상이 불쑥 떠오르는 경우는 오히려 많지 않다고 했다. 현장의 일이 복잡하고 바쁠 때는 온 신경을 일에 쏟아야 하기 때문이다. 대신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람이나 사소한 풍경이 어느 순간 시가 된다.
어느 날 한 할머니가 리어카를 끌고 가는 모습을 보았다. 누구나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정 시인의 눈에는 그 리어카가 유모차와 겹쳐졌다. 그는 그 장면에서 ‘유모차에는 내비게이션이 없다’는 발상을 얻어 한 편의 시를 썼다.
아내가 건넨 첫 시집에서 발견했던 세계와도 맞닿아 있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도 조금 다르게 바라보는 순간 시의 문이 열린다.
고향과 부모, 아직 다 쓰지 못한 기억
정 시인의 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세계는 고향과 부모다. 고향은 옛 삼천포 지역의 바닷가 마을이다. 부모는 농사와 어업을 함께했고 어머니는 갯벌에 나가 조개를 캐기도 했다. 어린 시절의 바다는 늘 곁에 있어 오히려 특별하게 의식하지 않았던 풍경이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자유롭게 뛰어놀았던 시절, 바다와 마을은 그의 일상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에는 조금 복잡한 감정이 남아 있다. 어린 정 시인의 눈에 비친 아버지는 어머니를 힘들게 하기도 했고, 가정적인 아버지로서는 아쉬움을 남긴 사람이었다. “경제적인 역할은 조금 하셨겠지만 가정적인 아빠로서는 부족했던 것 같아요.”
세월이 흐른 지금, 그는 어린 시절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아버지를 시를 통해 다시 들여다본다. 부모에 대한 기억을 시로 쓰는 일은 오래 묵은 감정을 다시 꺼내 바라보는 일이기도 하다.
통도사 전국문학인 꽃축제 백일장 장원
시를 쓰면서 의미 있는 성취도 있었다. 정 시인은 통도사 서운암에서 열린 전국문학인 꽃축제 백일장에서 장원을 차지했으며, 이 수상은 시 공부에 더욱 힘을 쏟는 계기가 됐다.
그에게는 수상 자체보다 그 이후의 변화가 더 컸다. “상을 하나 받고 나니까 공부가 더 되더라고요. 좀 더 깊은 시를 써서 더 큰 문학상에도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장원 수상은 도착점이 아니라 다시 공부하게 만든 출발점이었다. 자신의 시가 인정받은 경험은 더 좋은 시를 쓰려면 더 많이 읽고 공부해야 한다는 자극이 됐다.
“시인이 되고 행동도 조금 조심하게 됐지요”
등단했다고 그의 일상이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회사에 나가 철강을 다루고, 일이 바쁠 때는 책상 앞에 앉아 시 한 줄을 쓰는 것조차 쉽지 않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한 가지가 달라졌다. ‘시인’이라는 이름에 대한 책임감이다.
“그래도 시인인데 행동도 조금 조심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합니다. 누가 보더라도 ‘저 사람 시인인데’ 할 텐데, 시인이라는 이름에 누가 되는 행동은 하지 않아야지요.”
그에게 시인이 된다는 것은 작품 몇 편을 발표하는 데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자신의 생활과 태도까지 다시 돌아보게 하는 또 하나의 이름이다.
“평범한 시인으로 남고 싶다”
정 시인은 등단 이후에도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자리보다는 네댓 명이라도 작품을 가지고 만나 서로 읽고 합평하는 공부를 좋아한다. “같이 공부하면서 습작하고 서로 합평하는 게 더 공부가 되는 것 같아요.” 앞으로는 생활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지금보다 조금 더 깊이 있는 시를 쓰고 싶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그렇다면 독자들에게 어떤 시인으로 기억되고 싶을까. 그의 대답은 소박했다. “그냥 평범한 시인으로 남고 싶어요. 크게 이름을 남기기보다 평범한 시인으로 독자들에게 남고 싶습니다.”
30년 넘게 한길을 걸어온 철강인의 삶도 처음부터 30년을 내다보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루가 쌓이고 한 해가 쌓여 어느덧 한 사람의 생애가 됐다. 시도 그렇게 그의 삶에 쌓이고 있다.
길에서 마주친 할머니, 오래전 고향의 바다, 갯벌에서 조개를 캐던 어머니, 마음 한편에 남아 있는 아버지.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것들을 한 번 더 바라보고 한 줄씩 적어가는 것이 지금 그가 걷는 길이다.
대양철강 정인식 대표가 걸어온 철강의 길은 어느덧 30년을 훌쩍 넘었다. 시인 정인식의 길은 이제 시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