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련의 몽골기행 ②] 몽골국립박물관, 유목민의 숨결과 민족의 상징
김서련 소설가
웅상뉴스 기자 / jun28258@gmail.com 입력 : 2026년 08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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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국립박물관에 전시된 옛 사진. 전통 복식을 갖춰 입은 몽골 여성들의 독특한 머리 모양과 장신구가 부족별로 발달한 복식문화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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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 여행을 다녔지만 몽골의 현지 가이드인 칸토야 씨만큼 열정을 가지고 자신의 조국인 몽골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진심으로 설명하는 가이드는 처음이었다.
선사시대부터 흉노와 돌궐 등 고대 유목제국, 칭기즈칸의 몽골제국, 사회주의 시대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설명은 쉼 없이 이어졌다. 몽골의 역사를 보여주는 유물과 각 부족의 전통 복식·생활문화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목소리에 진심이 우러났다. 일행 가운데 누구 하나 뒤처지지 않고 그녀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몽골 서부 지역은 금·은·구리 등 광물자원이 풍부하다. 북부 지역은 러시아 시베리아의 숲과 이어져 나무가 울창하다. 몽골에서 가장 깊고 맑은 담수호인 홉스골호가 있으며 보석 자원도 풍부하다. 동부 지역에는 산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한 평원이 펼쳐져 있으며 석유와 우라늄이 매장돼 있다. 남부 지역에는 금·은·구리·석유·석탄 등 지하자원이 풍부한 고비 사막이 넓게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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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국립박물관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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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의 지도를 바라보고 있으니 몽골은 하나의 풍경으로 설명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다. 숲과 호수, 초원과 사막이 서로 다른 얼굴로 한 나라 안에 공존하고 있었다. 그 광대한 자연이 몽골인의 생활방식과 역사를 빚어낸 최초의 무대였을 것이다.
석기시대 전시실에는 동굴 거주 흔적과 당시 사용한 석기 도구·무기, 암각화 자료가 전시돼 있다. 청동기시대에 들어서면서 무덤을 만들고 그 곁에 비석을 세우는 문화가 나타났다.
일부 청동기 비석에는 해와 달을 형상화한 문양이 새겨져 있다. 오랜 세월을 거쳐 오늘날에도 해와 달은 몽골 국기의 소욤보 문양을 이루는 중요한 상징으로 남아 있다.
소욤보 문양의 위로 타오르는 불꽃은 성장과 번영을 뜻하며, 세 갈래 불꽃은 과거·현재·미래를 나타낸다. 태양과 달은 몽골 민족의 영원성을, 아래를 향한 삼각형은 적을 물리치는 창과 화살을 상징한다. 가로선은 정직과 정의를, 가운데 음양 문양은 서로 반대되는 존재의 조화를 나타내며, 눈을 감지 않는 두 마리 물고기로 해석돼 늘 깨어 있는 경계심을 상징하기도 한다. 양쪽의 세로 기둥은 성벽처럼 나라를 지키는 힘과 단결을 뜻한다.
작은 문양 하나에 한 민족이 지켜온 시간과 국가관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흉노시대 유물 가운데는 용을 형상화한 장식도 있었다. 용이 중국만의 상징이 아니라 북방 유목민족에게도 사용됐음을 보여준다. 양이나 염소의 발목 관절뼈를 이용한 전통놀이 샤가이도 눈길을 끌었다. 작고 단순한 뼈 하나가 놀이도구가 되고 점을 치는 도구가 되어 세대를 건너왔다.
몽골은 위구르 문자를 바탕으로 만든 세로쓰기 전통문자를 사용해 왔다. 이후 사회주의 시대를 거치며 키릴문자를 사용하게 됐다. 현재 몽골에서는 키릴문자를 주로 사용하지만, 중국 내몽골에서는 전통 몽골문자가 계속 사용되고 있다.
전시된 문자 자료에는 몽골문자뿐 아니라 쿠빌라이 칸 시대에 제국의 공식문자로 제정된 파스파 문자도 있었다. 여러 언어와 민족을 하나의 제도 안에서 다스리려 했던 몽골제국의 흔적이다. 당시 사용된 지폐인 교초는 유라시아를 가로지른 광대한 교역망과 화폐제도를 보여주는 유물이다.
유리 진열장 안에서 오래 시선을 붙잡은 것은 유목민들이 몸에 지니고 다녔던 작은 생활용품이었다. 그들은 광활한 초원에서 사람을 만났을 때 단순히 말로만 안부를 묻지 않았다. 여러 종류의 돌과 은 장식 등으로 정교하게 만든 작은 코담배병인 ‘호록’을 건네며 서로 가루담배의 향을 맡고 돌려주었다. 상대방에게 예를 갖추고 낯선 이에 대한 경계를 푸는 전통적인 인사법이었다.
그 곁에는 불을 피우기 위한 손때 묻은 부싯돌, 그리고 젓가락과 칼이 한 세트로 묶인 식기 등이 있었다. 이동이 일상이었던 사람들에게 필요한 물건은 언제나 몸 가까이에 있었던 것이다.
살림을 도맡았던 여성들의 생활용품도 눈길을 끌었다. 바느질 도구와 귀이개, 족집게, 머리카락을 보관하던 작은 주머니, 그리고 용도별로 색을 달리해 쓰던 천도 허리춤에 매달려 있었다. 물자를 아끼고 청결을 유지하며 이동 생활을 꾸려온 여성들의 알뜰한 지혜가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한쪽에는 말머리 장식이 달린 몽골의 대표 현악기 마두금이 전시돼 있었다. 두 줄의 현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말발굽 소리와 바람, 말의 울음까지 닮았다고 한다. 초원의 풍경이 악기 하나에 스며든 듯했다.
부족별 전통복식 코너에서는 짙은 검정 바탕에 붉은 주황색 띠를 두른 복식이 눈에 들어왔다. 칸토야 씨는 청나라와의 오랜 전쟁과 탄압 속에서 수많은 사내아이와 전사를 잃은 부족의 슬픔이 복식의 색에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검정과 빨강의 대비는 단순한 미적 조화가 아니라 “우리가 흘린 피와 고통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애통의 맹세이자 애도의 표현이라는 이야기였다. 옷은 몸을 가리는 천을 넘어 한 부족이 견뎌온 역사를 기록하는 또 하나의 언어처럼 보였다.
몽골에는 다수를 차지하는 할하족을 비롯해 여러 민족과 부족이 살고 있다. 몽골 복식문화의 뿌리는 고대 유목사회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색상과 장식, 모자와 머리 모양이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인다. 이후 17세기부터 청나라의 지배를 받으면서 만주족을 비롯한 여러 지역의 복식문화에도 영향을 받았다.
서부 고산지대에 거주하는 카자흐족의 생활문화도 인상적이었다. 카자흐족은 대부분 이슬람교를 믿으며, 일부는 검독수리를 길들여 사냥하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박물관에 전시된 카자흐족의 화려한 의상과 사냥도구는 할하족과는 구별되는 카자흐족의 생활방식과 정체성을 보여준다.
박물관의 유물들은 제각기 다른 시대의 물건이지만, 그 안에는 하나의 긴 흐름이 이어지고 있었다. 돌에 새겨진 해와 달은 국기의 문양으로 살아남았고 말과 함께 이동하던 사람들이 허리춤에 지녔던 도구는 한 민족의 생활방식을 보여주고 있었다.
몽골국립박물관은 단지 오래된 유물을 모아놓은 공간이 아니었다. 숲과 호수, 초원과 사막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삶을 지켜왔는지, 초원의 작은 부족들이 어떻게 거대한 제국을 세웠는지 그 시간이 오늘날의 몽골로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곳이었다.
여행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서 진열장 안의 물건들을 떠올렸다. 칼과 부싯돌, 호록과 바느질 도구들. 계절과 목초지의 형편에 따라 삶의 터전을 옮기면서도 일상의 질서와 품위를 잃지 않았던 사람들의 숨결이 그 작은 물건들에 남아 있었다.
특히 이번 여행에서 가장 선명하게 마음에 남은 것은 몽골의 민주화 과정에 관한 칸토야 씨의 설명이었다.
1990년 젊은이들이 거리로 나와 민주화와 다당제를 요구하자 당시 지도부 내부에서는 무력 진압을 검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고지도자 잠빈 바트뭉흐는 유혈 진압을 거부했고 결국 공산당 정치국이 사퇴하면서 평화적인 체제 전환의 길이 열렸다고 했다.
시위에 나선 젊은이들도 모두 자신들의 아들과 딸이라며 거부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민주화를 요구하던 시민들의 피가 거리마다 흘렀던 우리의 현대사를 떠올렸다. 권력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드는 대신 스스로 물러서는 길을 선택한 지도자들. 그 결단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드넓은 초원을 품고 살아온 사람들의 대범함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지금도 나는 그 물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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