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카페 산책] 커피 향에 그림을 걸다…‘유월 육일’, 카페에서 문화공간으로
대관료·판매 수수료 ‘0원’, 문턱 낮은 상생 갤러리로 작가들 판로 역할 도자·조각 전공 천수빈 작가, 흙을 다루던 손으로 베이커리 빚어 김순정 대표 “시와 그림, 음악과 자연이 숨 쉬는 공간 꿈꿔”
김경희 기자 / 입력 : 2026년 07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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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순정 카페 '6월 육일' 대표 |
| [양상웅상신문 김경희 기자] 커피를 마시러 들어선 공간에서 그림을 만나고, 창밖의 숲을 바라보며 시 한 편을 듣는다. 양산시 상북면 대석마을, 홍룡사와 홍룡폭포와 천성산으로 향하는 길목의 대형카페 ‘6월 육일’(양산시 상북면 대석1길 40-7)이 그런 곳이다. 아치형 문을 지나 길게 이어진 진입로는 초대받는 듯한 설렘을 주고, 통유리창 너머로는 계절마다 표정을 달리하는 들판이 그대로 실내로 쏟아져 들어온다.
2년 전 1,400여 평의 대지 위에 “커피와 전시, 공연이 함께하는 문화 예술 공간을 만들겠다”며 문을 연 이곳은, 이제 지역 작가들의 문턱 낮은 미술관이자 지친 현대인들의 쉼터로 자리 잡았다. 공간을 가꿔온 김순정 대표와 그의 딸이자 베이커리를 책임지는 천수빈(아호 이림)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이름은 사주에서, 진짜 개업일은 2월 2일
카페를 찾는 손님들이 가장 많이 묻는 것은 역시 이름의 사연이다. “처음부터 사람들이 쉽게 기억할 수 있도록 ‘몇 월 며칠’ 형식의 이름을 지으려 했다”는 김 대표는 이름을 고민하던 중 명리를 봐주던 스님에게서 자신의 사주 흐름에 숫자 ‘6’ 두 개가 가장 좋다는 조언을 들었다. “만약 ‘3’을 받았다면 3월 3일이 됐을 것”이라며 웃는 그는 “많은 분이 6월 6일을 개업일로 아시지만, 실제로 문을 연 날은 찬 바람이 불던 2월 2일”이라고 전했다. 손님들은 지금도 6월 6일에 개업 기념행사를 묻곤 한다.
이름과 개업일은 다르지만, 공간은 그 이름처럼 늘 싱그럽다. 실내 색상을 서너 가지 이내로 제한해 시각적 번잡함을 줄이고, 서로 다른 형태의 의자와 테이블을 취향에 맞춰 배치했다. 손님들은 통창 너머 대석마을 풍경을 액자 속 그림처럼 감상하며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긴다.
■ 갤러리 대신 카페를 전시장으로
김 대표는 애초 카페 옆에 별도의 갤러리(약 150평 규모)를 짓고, 인근 야산에 산책로를 조성해 커피와 책, 그림, 자연을 함께 누리는 공간을 만들 계획이었다. 그러나 경기 침체와 금융 여건 악화까지 겹치면서 갤러리 건립은 늦어졌다. 김 대표는 계획을 접는 대신 카페 내부를 전시장으로 활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처음부터 카페 안에 작품을 걸려던 것은 아니었다. 여러 작품이 들어오면 공간이 번잡해 보일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주변 작가들의 권유로 한 작가의 작품을 시범 전시한 뒤 생각이 달라졌다. 차를 마시러 온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작품을 감상했고, 일부는 실제 판매로 이어졌다. 김 대표는 “손님들은 예상치 못한 작품을 만나 좋아했고, 작가들은 작품을 알리고 판매할 기회를 얻었다”며 “전시가 바뀔 때마다 공간의 분위기도 새로워지는 효과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장르를 바꾸며 이어지는 기획 전시는 회화뿐 아니라 목공예, 도자기 등 다양하다. 대형 작품보다는 가정이나 사무실에 놓기 쉬운 소품과 10~15호 안팎의 그림 위주로 구성하는데, 고가의 대작은 감상에 머무는 경우가 많은 반면 부담이 적은 소품은 구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 작가 가와구찌 지나미의 전시에서는 소품 30여 점이 판매되는 성과를 냈고, 목공예 전시에서도 작은 생활 소품이 관람객의 관심을 받았다. 기업체 관계자가 카페에 왔다가 도자 작품을 구매해 사무실에 설치한 사례도 있다. 김 대표 본인도 과거 한 기업가가 새 공장 사장실에 걸고 싶다며 요청해 자신의 국전 수상작을 양도한 적이 있는데, “그 그림을 가져간 뒤 사업이 아주 잘된다는 얘기를 들으니 작가로서 그보다 기쁜 보람은 없다”고 말했다.
■ 대관료·판매 수수료 ‘0원’, 문턱 낮은 상생 갤러리
김 대표는 디자인을 전공하고 서양화와 민화를 그려온 기성 작가이자, 대한민국 미술대전(국전)에서 1등을 차지했던 경력의 소유자다. 마흔 중반부터 갤러리를 꿈꿔온 그는 동료 작가들이 짊어지는 경제적 부담을 누구보다 잘 안다. “작가가 전시 한 번을 열려면 대관료에 리플릿·도록 제작비, 작품 운송·설치비까지 합쳐 최소 200~300만 원은 기본으로 든다”며 “실력을 갖추고도 비용 부담 때문에 관객을 만나지 못하는 작가들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그래서 ‘6월 육일’은 대관료를 일절 받지 않고, 작품이 판매돼도 수수료를 한 푼도 취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김 대표는 “작가들이 비용 걱정 없이 작품을 선보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처음부터 품었던 생각”이라며 “전시를 보러 온 분들이 카페를 이용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앞으로 별도의 갤러리를 짓더라도 대관료 없는 공간으로 운영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예전에는 카페 인테리어를 한 번 해두면 오래 유지해도 됐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늘 새로운 볼거리를 기대한다”며 “전시가 바뀌면 큰 공사 없이도 공간의 인상과 분위기가 달라진다”고 덧붙였다.
■ 흙을 빚던 손이 이제는 반죽을
카페의 또 다른 축은 베이커리다. 빵과 케이크는 도자와 조각을 전공한 천수빈(아호 이림) 작가가 맡고 있다.
천 작가는 중학교 3학년 때 예술고등학교 진학을 결심한 뒤 도자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김순정 대표는 딸을 공방에 데리고 다니며 흙을 빚고 가마에 작품을 굽는 과정을 직접 경험하게 했다. 김 대표가 미술 활동을 하며 만난 작가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한 경험도 천 작가의 예술적 감각을 키우는 밑바탕이 됐다.
흙을 다루던 손의 감각은 이제 밀가루 반죽으로 이어지고 있다. 제빵 명장에게 기본기를 배운 천 작가는 특히 케이크 제작에 강점을 보인다. 김 대표는 “제빵을 가르친 명장도 케이크만큼은 자신보다 잘 만든다고 평가했다”며 “흙을 오래 만져온 손의 감각이 반죽을 나누고 형태를 만들 때 자연스럽게 드러난다”고 말했다.
작품을 만드는 일과 매일 일정한 품질의 빵을 생산하는 일은 다르다. 손님이 몰리는 주말에는 이른 시간부터 10시간 넘게 작업하고, 정기휴무일에도 다음 영업일을 위한 준비가 이어진다. 천 작가는 도자와 조각을 통해 익힌 조형 감각을 빵과 케이크에 담으며 카페의 또 다른 색깔을 만들어가고 있다.
■ 붓 대신 공간을 움직이는 것도 예술
김 대표 역시 디자인을 전공하고 화가이자 미술단체 회장으로 활동해 왔다. 하지만 카페를 운영한 지난 2년간은 정작 자신의 작품 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다. 대신 가구의 위치를 바꾸고 빛과 나무, 식물과 작품이 조화를 이루도록 공간을 가꾸는 일을 또 다른 예술 작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금은 붓을 들지 못하지만, 의자 하나의 위치를 바꾸고 빛과 식물과 작품이 어울리도록 공간을 변화시키는 일도 예술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손님들이 이곳에서 ‘예쁘다’는 말보다 먼저 ‘편안하다’고 느꼈으면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오래 머물거나 잠시 잠이 드는 손님도 있는데, 김 대표는 이들을 재촉하지 않는다. 자연과 작품을 바라보며 마음의 긴장을 내려놓는 것 역시 이 공간이 줄 수 있는 역할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 시와 음악이 흐르는 5,000평 ‘예술 놀이터’를 꿈꾸며
“요즘은 경제적으로도, 마음으로도 지친 사람이 많습니다.” 김 대표는 최근 경기 침체가 문화예술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무료로 전시공간을 제공해도 작품 운반과 설치 등에 부담을 느껴 전시를 망설이는 작가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다시 활기를 찾고 예술가들도 부담 없이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6월 육일’은 앞으로 미술 전시와 함께 소규모 음악회와 시낭송 행사도 이어갈 예정이다. 현재 ‘시와의산책 시낭송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 대표는 올 하반기 성악과 시낭송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작은 문화행사를 구상하고 있다. 2년 전 카페 테라스에서 열린 성악·시낭송 행사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이 좋았던 만큼, 규모보다 관객과 예술인이 가까이 호흡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하겠다는 생각이다.
김 대표의 장기적인 꿈은 카페와 갤러리, 도서공간과 산책로가 어우러진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하는 것이다. 여건이 마련돼 인근 부지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면 전체 5천 평 안팎의 공간에 전시장과 산책로, 쉼터 등을 조성하고 싶다는 구상이다.
2년 전 계획했던 별도 갤러리 건립은 경기와 금융 여건 등으로 늦어졌지만, 그 꿈은 카페 내부의 전시와 문화행사를 통해 조금씩 이어지고 있다.
김 대표는 “큰 규모가 아니더라도 그림과 시, 음악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가고 싶다”며 “차 한 잔을 마시는 동안 짧은 시 한 구절이라도 마음에 담아갈 수 있는 곳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큰 공간은 아니지만 그림과 시, 음악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장소로 만들어가고 싶다”며 “차 한 잔을 마시는 동안 짧은 시 한 구절이라도 마음에 담아갈 수 있는 공간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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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기자 /  입력 : 2026년 07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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