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웅상에서 이루어진 역사적인 일은 정책 배려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정책에 저항하여 이루어 내었다.
보도연맹 가입자들을 전국적으로 강제 연행하여 지역 경찰서장의 직권으로 한마디 변명의 여지도 없이 무조건 처참하게 집단 학살하였다. 학살 당한 분들의 명단도 남기지 않고 인원수 마저 기록에 남기지 않았다. 이는 정부의 지시에 의하여 자행한 양민학살사건이다. 그러나 전국에서 유일하게 웅상면지역 보도연맹 가입자들은 모두 구출되었다.
여러차례 신문에 기고 하여 알렸고 웅상에 관심을 가진 주민이라면 구전에 의하여 전해들어 다 알고 있을줄 안다. 정부가 모든 보도연맹 가입자를 학살하라고 지시한 이유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보도연맹 가입자들은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라 생각하고 인민군대 편이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학살하라는 지시기 내려졌지만 극히 일부 가입자 이외는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민주주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였고 가입하게 된 동기는 보도연맹에 가입하면 여러 가지 특혜를 준다고 나라가 현혹하여 가입대상자도 아닌 사람도 많이 가입하였다.
당시 우리나라 사정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가장 무지한 백성들이 사는 나라였다. 굶어죽는 사람을 예사로 볼 수 있었고 자기 이름자도 쓸수 없는 백성이 절대다수인 백성들이 무슨 이념의식이 있었겠는가. 이런 무지몽매한 가입자들에게 가입하게 된 동기에 대하여 한마디 질문도 없이 집단 학살하였다. 정부의 정의롭지 못한 학살 정책에 반발한 당시 양산경찰서 웅상지서장으로 재임한 오강환 선생님은 살신성인 정신으로 웅상지역 보도연맹 가입자 명단과 가입원서와 일체 관계서류를 모두 소각해 버리고 자신은 계엄사령부에 처형당하기 위하여 자진출두한 관계로 웅상보도연맹 가입자들은 모두 구출되었다.
웅상에 중학교를 설립해 달라고 교육당국에 여러차례 건의하였으나 검토중이라는 회신만 반복하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정부는 전쟁 감당하기도 힘에 겨워 기존 학교 유지도 겨우 하는 지경에 신설학교 기대는 아예 물건너 간 일이라 판단하고 임상수 선생님과 뜻있는 지역민들은 교실도 없고 교사도 없는 상태에서 학생을 모집하여 교실은 웅상초등학교 교실을 빌리고 교사는 지역민들 중 교사 능력이 있는 분들과 웅상초등학교 선생님들이 무임금 봉사로 수업지도를 했다.
학교 인가 신청을 할 수 없는 입장에서 수업을 하다 현 웅상출장소 위치에 지역민들과 수업하는 학생들이 협력하여 가교사를 건립하여 학교인가를 받아 1회 졸업생을 배출하고 현 개운중학교 위치로 이전하였다. 6.25 전쟁중에 전국에서 사립학교가 설립된 곳은 웅상뿐이다. 학교인가를 받지 않고 수업을 하다 교육법을 적용하면 책임자들이 무거운 처벌을 받는 다는 위협을 무릅쓰고 수업을 강행하고 일체 정부의 지원없이 지역민들의 힘으로 학교를 설립한 사실은 길이 역사에 기록되어어야 할 자랑스러운 일이다.
울산시민 식수원인 회야댐을 건립하고 곧이어 건설부령에 의하여 웅상과 웅촌 전역에는 모든 개발행위는 중단되었다. 해지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지역민들의 협조를 받아 할 수 있는 방법을 다했다. 5여년간 피눈물 나는 투쟁을 하여 해지되었다. 투쟁 과정에 엄청난 경비가 소요되고 앞장선 분들은 개인 사생활은 접어두고 접어두고 해지 투쟁에 몰입했다. 앞장선 분들은 사법기관에 연행되어 인격적 모독과 고초를 당하며 굴하지 않고 끝까지 투쟁하여 대한민국 건국이래 제1호로 해지 통보를 받았다. 누누이 역설해 왔지만 그때 투쟁하지 않았다면 웅상에는 공장 한동도 건립할 수 없고 아파트 한 채도 건립하지 못하는 지역이 되어 계속 인구가 감소되는 작은 면으로 전략하였을 것이다.
웅상의 대다수 도시기반 시설은 주민들이 조성하였다. 토지구획정리조합을 구성하여 택지를 조성하고 산업단지 조성사업을 시행하여 공장부지를 조성하고 사업지구와 주변 도시기반 시설을 완공하여 양산시에 기부채납하였다. 농경지 정리사업으로 조성된 농로는 농로로 이용되기도 하지만 사실상 도로 기능을 하는 농로가 많다. 주민들이 시행한 사업장 주변과 도시간 연결되는 도시기반조성사업은 양산시가 앞장서 연구하고 시행하여야 함에도 이에는 무심하고 주민들이 시행하는 도시기반조성사업에 갑질행사만 일관했다.
부산 웅상 울산간 광역전철 개설공약은 이명박대통령 후보시절에 했다. 공약사업으로 채택하는 과정도 관료들의 영향은 전무하고 웅상발전협의회 회장단(회장 이태환)이 이명박대통령 후보를 직접 만나 구두상 건의와 서면상 건의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이때부터 이명박대통령과 같은 당 소속 지역국회의원, 도지사, 시장, 시도의원 모두 하나같이 계속 반복된 공약을 하여 이 공약 덕택에 당선되는 큰 힘이 되었음에도 당선된 후 어느 단 한 사람도 눈꼽 만큼 추진 할려는 의지도 보인 사람 없이 20여년간의 세월이 지난 후 김포시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전철 개설 경험이 있는 김두관 국회의원이 민주당 중앙당의 하명을 받고 우리지역에 국회의원으로 출마하게 되어 웅상발전협의회에서 광역전철 공약사업으로 채택하여 줄 것을 건의하여 공약사업으로 채택하고 김두관 국회의원 노력으로 국가광역철도망 계획을 수립하고 예타통과까지 된 상태다. 공약만 하고 아예 잊어버렸던 분들이 마치 자기가 앞장서 이루어 낸 사업 인양 하는 의미를 담은 6.3지방선거에 조기착공 공약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도문화재로 지정된 우불신사, 우불산성, 삼호리고분군, 웅상농청장원놀이를 문화재로 지정해 달라는 민원을 제출한지 5년에서 10년간 계속 건의를 제출했다. 특히 시장 년초 순시 주민간담회 시 매년 반복하여 건의할 때마다 올해 중으로 꼭 문화재로 지정되도록 하겠다는 철석같은 약속을 하고는 계속 오리무중이 되어 버렸다.
경남도와 양산시의 관계 공무원의 민원 대하는 자세는 귀찮은 민원을 제출해 업무량을 늘이게 하느냐 하고 노골적으로 제출한 민원인에게 개인적으로 아무런 이득도 없는 일을 가지고 경비와 시간을 낭비하노 하며 비아냥거렸다. 당시 문화 부분에 종사하는 분들 중 이런분들도 있는 실정이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계속 건의하고 자료를 제출해 문화재로 지정받았다.
봉우, 태원아파트 일대 식수 고갈시 지방정부와 중앙정부가 해결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을시 주민들의 대안을 제시하고 해결책도 강구하였다. 이와 병행하여 도시변경계획 요건을 조성하여 새로운 도시계획도 하고 웅상정수장 유치도 당초 계획보다 훨씬 앞당겨 시행하도록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