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 지나 제법 따뜻한 햇살이 흘러내리던 날, 양산시 소주동 천성산 원적봉 자락에 고즈넉이 자리 잡은 보현사를 찾았다. 대형 사찰의 웅장함 대신 일상의 단청처럼 여유롭고 단정한 정취가 깃든 이곳은 신도들 사이에서 “기도가 잘 받는 도량”으로 알려져 간절한 발원을 품은 이들의 발길이 잦다. 이곳에서 35년 세월 동안 터를 닦아온 주지 지은 스님과 차 한 잔을 나누며, 보현사가 걸어온 길과 그 안에 담긴 깊은 인연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36년, 황무지에 피워낸 천성산의 자비보현사가 지금의 자리에 터를 잡은 것은 지난 1991년이다. 지은 스님은 “그때는 이 주변이 허허벌판이었다”고 회상했다. 웅상으로 올라오는 다리도 딱 하나뿐이던 시절, 스님은 이곳에 부처님의 자비를 심었다.
세상이 변하고 도시철도가 들어선다며 주변은 분주하지만 지은 스님에게는 1년이 지나도 그저 1년 그대로일 뿐이다. 해병대 제대 후 출가의 길을 걸었다는 스님은 “그저 인연 따라 이곳에 머물고 있다”면서 일곱 살 어린 나이에도 스님들이 데려가려 했다는 일화를 들려주었다. 부처님 시봉자로 이 세상에 온 것은 이미 정해진 운명이었다는 설명이다.
“은혜 갚는 인연도, 원수 갚는 인연도 있지요”
스님이 가장 길게 풀어낸 대목은 ‘인연법’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 절을 찾는다. 자식 걱정, 돈 걱정, 사람에 치인 마음을 도량에 들어서는 사람들에게 스님은 담담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인연의 법을 설한다.
“인연이라는 게 참 묘합니다. 선한 인연도 있고 악의 인연도 있지요. 부모 자식 사이도 마찬가지예요. 부귀영화를 손에 쥐여줘도 부모를 못살게 구는 자식이 있는가 하면, 부모에게 효도만 하는 자식도 있습니다. 그게 다 은혜를 갚으러 왔느냐, 원수를 갚으러 왔느냐의 차이입니다. 짧은 인연, 긴 인연 다 제 몫이 있는 법이지요.”
지은 스님은 삶의 갈등을 ‘잘잘못’으로만 가르지 않았다. 그보다는 인연이 생겨나고 소멸하는 과정으로 보았다. 인연이 다하면 헤어지는 것이 순리이고 그 순리의 문턱에서 생기는 아픔 또한 인연의 일부라는 것이다.
“부처님은 대자대비하여 죄를 지은 자나 그렇지 않은 자나 평등하게 대하십니다.”
스님의 말은 삶의 고통을 개인의 업보로만 몰아붙이지 않는다. 오히려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러운 인연의 한 줄기로 받아들이게 한다. 이 말은 불안에 떠는 현대인들에게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 그저 인연의 흐름이 그러했을 뿐”이라고, 도량에 들어오는 순간 마음이 편해진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스님의 강조는 스스로를 다그치며 살아온 이들의 마음을 다스려준다.
“가만히 있는 것이 가장 큰 수행입니다”
보현사는 조용하고 한적한 도량이다. 산문에 들어서는 순간 마음은 이내 평온을 찾고 고요해진다. 지은 스님은 인터뷰 내내 “무엇을 하려 애쓰지 말라”고 당부했다. 절은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찾는 곳이 아니라 잠시 가만히 앉아 있어도 되는 곳이라는 뜻이다.
“산속에서는 그저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가만히 있는 게 수행입니다.”
이러한 지은 스님의 운영 철학은 쉼의 본질에 맞닿아 있다. 도심 인근에 보현사가 자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거창한 기도가 아니라, 이동 중에 잠시 들러 호흡을 고르는 그 단출한 시간이 어지러운 속세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전통과 자연이 조화를 이룬 치유의 공간
보현사 입구에는 일주문 대신 좌우를 지키는 사천왕상이 위엄 있게 방문객을 맞이한다. 경내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연못 위에 자리한 화려한 용왕당이다. 비단잉어들이 유유히 노니는 연못은 전통 신앙과 불교가 어우러진 한국 사찰 특유의 포용력을 보여준다.
대웅전 옆으로는 정교하게 치솟은 9층 석탑과 결가부좌를 틀고 항마촉지인을 취한 석조여래좌상이 나란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번뇌를 물리치고 깨달음을 증명하는 불상의 자비로운 미소는 보는 이의 마음을 경건하게 한다. 대웅전 앞마당을 호위하듯 늘어선 십이지신상의 호위는 이곳이 천성산의 정기를 오롯이 품은 영험한 도량임을 실감케 한다.
한편 대웅전 뒤편으로 이어지는 나무 계단 길을 따라 오르면 나반존자(독성)와 산신, 칠성을 모신 삼성각(三聖閣)이 나타난다. 현판에는 ‘성스러울 성(聖)’자를 써서 세 분의 성인을 모신 곳으로 지은 스님은 이곳을 “세 신선(仙)이 머무는 곳”이라 소개했다. 불교의 성인과 우리 민초들의 신선 사상이 이 도량에서만큼은 경계 없이 어우러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천성산의 수려한 풍경과 어우러진 이 길은 짧은 숲속 산책을 하는 듯한 평온함을 선사하며 기도의 여정을 완성해 준다.
지역 사회와 함께 호흡하는 보현사
보현사는 수행 공간을 넘어 소주동 지역 사회의 따뜻한 이웃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매년 명절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쌀을 기탁하고 후원금을 전달하는 등 꾸준한 나눔을 실천해 왔다. “부처님 시봉자로 세상에 왔으니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스님의 평등 사상이 지역 사회의 자비 기둥이 된 셈이다.
“나갈 때 사진이나 많이 찍어주소. 내 얼굴 말고, 이 산과 절의 풍경을 신문에 잘 실어주어 사람들이 보고 마음이나 좀 편해지게 말이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길, 지은 스님의 말씀처럼 보현사는 무언가를 얻으러 가는 곳이 아니라 마음속에 꽉 찬 번뇌를 비우러 가는 곳이었다. 도심 생활권 가까운 곳에서 “비워냄으로써 채워지는 평온”을 얻고 싶다면 천성산의 품을 닮은 보현사로 발걸음을 옮겨보는 것은 어떨까.
글·사진 김서련(소설가) s2000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