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표 차이가 만든 ‘싸움 정치’의 비극
박 용 상 네거티브정치캠페인 연구원장, 정치학박사
웅상뉴스 기자 / jun28258@gmail.com 입력 : 2026년 0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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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의도에는 정치가 작동하지 않는다. 남아 있는 것은 정책 경쟁이 아니라 싸움의 정치다. 국회는 토론장이 아니라 전쟁터가 되었고, 정당은 정책 경쟁의 무대가 아니라 계파 생존 게임의 장이 되었다. 여야는 법정과 거리에서 맞붙고, 당 안에서는 서로를 향해 칼끝을 겨눈다. 더불어민주당은 친명과 비명으로, 국민의힘은 친윤과 비윤으로 갈라져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충돌한다. 국민의 삶을 논의해야 할 공간에서, 권력만을 놓고 소모적인 대립만 반복하고 있다.
정치는 본래 다르기 때문에 존재한다. 생각이 다르고, 이해가 다르고, 출발선이 다르기 때문에 정치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차이를 조율하고 융합해 사회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정치는 이기는 기술이 아니라, 협력하는 기술이다. 그러나 지금의 정치는 다르다. 타협은 배신이 되었고, 양보는 패배가 되었다. 상대는 협치의 대상이 아니라 제거의 대상이 되었다. 정치는 협상의 예술이 아니라, 적대의 산업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그 배경에는 우리 선거제도의 구조적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 선거는 단 한 표 차이로 모든 것을 얻거나, 모든 것을 잃는 구조다. 1등은 전권을 쥐고 국정을 운영하지만, 2등은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승자독식의 정치 구조다. 이 구조 속에서 정치인은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기는 사람’이 되려 한다. 정책보다 공격이 중요해지고, 비전보다 흠집 내기가 앞선다.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가 반복되면서, 오늘의 극단적 대결 정치가 만들어졌다.
여기에 강한 대통령제, 정당 내 공천권 집중, 자극적인 미디어 환경이 결합되면서 정치는 협상의 공간이 아니라 총력전의 무대가 되었다. 승자독식 선거제도는 그 불씨에 기름을 부은 구조다.
요즘 정치판이 도박판을 닮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든 것을 걸고 한 판 승부를 벌인다. 이기면 모든 것이 정당화되고, 지면 모든 것이 부정된다. 과정은 사라지고, 결과만 남는다. 국가의 미래를 걸고 벌이는 무모한 승부다.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무너진 것이 윤리다. 법에만 걸리지 않으면 괜찮다는 인식,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어도 위법이 아니면 넘어가자는 태도, 정치인의 양심은 법 조문 뒤로 숨어버렸다. 인사청문회에서 반복해서 보아왔듯이, 국민보다 먼저 챙기는 것은 자신과 가족이다. 입신양명, 자녀 문제, 재산 증식, 권력의 세습이 우선이 되었다. 공적 책임은 명분이 되고, 사적 욕망 충족이 목표가 되었다.
원칙은 사라졌다. 기준도 무너졌다. 남은 것은 자기에게 유리한 프레임뿐이다.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 나는 정의고, 너는 악이다. 나는 피해자고, 너는 가해자다. 정치는 흑백 논리가 되었고, 국민은 지쳐갔다. 정치에 실망한 시민들은 조용히 등을 돌린다. 무관심이 늘어나는 사회는 민주주의가 병들고 있다는 가장 분명한 신호다.
문제는 몇몇 정치인의 도덕성 부족이 아니다.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구조, 실패해도 다음 선거에서 다시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가 윤리를 비용으로 만들어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한민국은 이미 상당한 수준의 국가가 되었다. 경제력, 기술력, 문화적 영향력까지 세계적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내부는 불안하다. 밖의 적보다 안의 분열이 더 위협적이다. 역사는 반복해서 말해준다. 국가를 무너뜨리는 것은 외침이 아니라 내분이다고.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보다, “이 나라가 어떻게 작동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위대한 국가는 위대한 개인이 만들지 않는다. 위대한 시스템이 만든다. 삼성전자가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한 것도 특정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체계화된 시스템 덕분이었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특정 정치인 한 사람에게 기대는 구조는 위험하다. 한 사람의 판단에 국가의 운명이 흔들리는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람에 의존하는 나라에서, 제도에 의존하는 나라로 전환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시스템이 필요한가.
첫째, 책임이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구조다. 선거 패배뿐 아니라 정책 실패에도 정치적 불이익이 따르는 장치가 필요하다.
둘째, 윤리를 제도로 만들어야 한다. 이해충돌 방지, 가족 특혜 차단, 재산 형성의 투명성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셋째, 협치가 손해가 되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합의와 타협이 ‘배신’이 아니라 ‘성과’로 평가되는 제도적 보상이 필요하다.
넷째, 정당 내부 민주주의를 강화해야 한다. 계파가 공천과 정책을 지배하는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
다섯째, 시민 참여를 제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국민이 상시적으로 정치 권력을 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는 도덕 교과서가 아니다. 현실의 권력 게임이다. 그러나 권력에서 윤리가 사라질 때, 국가는 방향을 잃는다. 대한민국 정치는 너무 오래 싸움에만 매달려 왔다. 이제는 성과로 경쟁해야 한다. 누가 더 공격을 잘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나라를 잘 운영하느냐로 평가받아야 한다.
정치는 쇼가 아니라 책임이다. 말이 아니라 결과다. 분노가 아니라 해법이다. 싸움의 정치를 끝내지 못하면, 우리는 세계 초일류 국가가 아니라 내부 갈등에 갇힌 나라로 남을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웅이 아니다. 예외적인 개인의 능력에 기대는 정치는 언제든 흔들린다. 대한민국 정치가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은 사람의 선의가 아니라, 제도가 책임과 협력을 강제하는 구조로 전환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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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상뉴스 기자 / jun28258@gmail.com  입력 : 2026년 0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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