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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정 양산 백세학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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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상신문=김경희 기자]= 배움에는 때가 없다고 하지만 어르신들이 연필을 쥐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양산 지역 성인 문해교육을 이끄는 '백세학당'은 2026년 새로운 활기를 맞고 있다. 글을 몰라 마음에 쌓아두었던 한(恨)을 풀기 위해 책가방을 멘 어르신들, 그 손을 잡고 교실로 이끄는 강사들, 그 중심에 12년간 현장을 지켜온 황선정 회장이 있다. 본지는 황 회장를 만나 문해 교육의 생생한 현주소와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들을 짚어봤다.
■ 돌아서면 까먹는 고비, ‘공감’으로 남습니다.
“공부하고 싶어서 오셨는데, 막상 처음 접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그 막막함이 제일 큰 고비예요. 게다가 돌아서면 까먹는다고들 하시죠."
양산 백세학당 황선정 회장은 배움의 문을 두드린 어르신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벽을 ‘망각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말했다. “돌아서면 까먹는다는 답답함에 눈물을 보이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럴 때 저는 ‘괜찮다, 까먹고 또 까먹다 보면 어느덧 배가 아픈 게 기억나듯 글자도 남게 된다’며 웃음으로 격려합니다.”
그렇게 3년 정도 초등 과정을 버티면 기적이 일어난다. 황 회장은 “초등 3단계쯤 되면 낱말을 적기 시작하고 중학 과정에 올라가면 칠판 글씨를 따박따박 옮겨 적는 어르신들의 자세부터가 달라진다”며 “그 변화의 순간이 바로 강사로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임계점’을 넘는 때”라고 설명했다.
■ 고등은 열정이기도, 인프라 문제이기도 합니다.
백세학당의 과정은 ‘교양반(입문)’을 거쳐 초등 3단계, 중등 3년 등 최소 6년의 시간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그 긴 시간을 건너온 학습자들이 마주하는 다음 질문은 한결같다. “고등은 어디서 하느냐”는 것이다.
황선정 회장은 양산에 성인 문해 고등 학력인정 과정 기반이 충분치 않아 부산 등지로 ‘원정’ 학습을 떠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단순한 개인의 의지 문제로만 보지 않았다.
“개인의 열정으로만 볼 수는 없어요. 지역에 교육 제도가 없으니 생기는 문제이기도 하죠. 저는 두 가지를 다 봅니다. 개인의 배움 열망도 크지만 지역 내 교육 인프라가 뒷받침되지 못하는 구족적 문제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
실제로 중학 과정을 마친 뒤에도 “더 가고 싶다”는 전화는 이어진다. “중학교 가고 싶다, 고등학교 가고 싶다, 대학까지 가고 싶다”는 목소리들이다. 황 회장은 “그 마음이 꺼지지 않게, 선택할 수 있도록 길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산시는 올해부터 ‘고등검정고시반’을 운영하며 대안을 찾고 있다. 다만 현장에서는 검정고시가 ‘대체재’가 될 수는 있어도, 정식 학력인정 과정에 대한 갈증까지 해소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황 회장은 “어르신들이 검정고시라는 높은 벽을 넘어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꿈꿀 수 있으려면 지역 안에서 이어지는 제도적 사다리가 시급합니다”고 힘주어 말했다.
■ “남편에게 가르쳐주고 싶어서”…배움이 돌봄의 언어가 될 때
시화전에서 가장 가슴을 울린 작품을 묻자 황선정 회장은 잠시 말을 고른 뒤 한 학습자의 사연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중증 장애가 있는 남편을 돌보는 한 어르신이 “남편에게 가르쳐주기 위해 글을 배우고 싶다”는 뜻을 적어온 이야기였다. 초기 치매인 상황에서, 딸의 권유로 학당 문을 두드린 그 어르신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내가 글을 배우는 것은, 학교에 갈 수 없는 내 남편에게 글을 가르쳐주기 위해서입니다.”
황 회장은 “작품들에는 가난, 어머니, 가족을 향한 헌신 같은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스민다”며 “글을 배운다는 건 단지 지식을 얻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 마음을 추슬러 다시 일어서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 한 줄은 ‘교육’이 개인 성취를 넘어 돌봄과 존엄의 언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배움은 때로 누군가의 삶을 다시 붙드는 손이 된다.
■ 강사의 덕목은 ‘공감’... 처우 개선과 제도 정비 필요
학당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황 회장은 강사의 ‘공감 능력’을 제1의 덕목으로 꼽았다. “실력은 기본이고 어르신들의 마음을 읽어주는 배려가 있어야 수업이 따라온다”고 강조했다. 다만 강사 운영 제도와 처우를 둘러싼 구조적 한계도 짚었다. 자격증과 경력 서류만으로는 변별력이 없어 매년 면접 시연으로 평가가 이뤄지지만 짧은 시연이 오히려 ‘말 잘하는 사람’ 중심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다. 현장에서 오래 쌓아온 경험과 수업의 진정성이 충분히 평가받지 못하면 강사들의 사기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황 회장은 “강사가 인정을 받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합니다. 단순히 말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현장에서 어르신들과 부대끼며 쌓아온 경력이 존중받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고 말했다.
■ 양산, 진정한 평생학습 도시로 가려면
황선정 회장은 양산이 진정한 평생학습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교육 현장의 ‘활성화’와 ‘접근성’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그는 “교통이 좋아야 어르신들이 자유롭게 오가며 배움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접근성이 보장되어야 교육 과정의 연속성도 생깁니다”며 특히 웅상 지역처럼 교통이 열악한 곳일수록 교육 기회가 가까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 어르신들에게는 이동 자체가 배움의 의지를 꺾는 큰 장벽이 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어 황 회장은 “고등과정까지 갈 수 있는 길이 반드시 양산 안에서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올해 시작한 검정고시반이 그 마중물이 되겠지만 최소 인원 충족이나 지역 간 수요 격차 같은 현실적인 숙제들이 남아 있습니다”며 양산 내 고등교육 인프라 구축에 대한 간절한 바람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황 회장은 문해 교육의 본질은 결국 ‘마음’에 있다고 강조했다.
“공부는 머리로만 하는 게 아니라 마음이 먼저 가야 합니다. 저는 그 마음이 꺼지지 않게 끊임없이 전화를 걸고 웃어드리고 다시 학당으로 모십니다”며
“어르신들이 ‘선택받은 기분’으로 학교에 오신다고 말씀하실 때 가장 행복해요. 이제 양산시는 배움의 뜻을 세운 분들이 검정고시라는 높은 문턱 앞에서 멈춰 서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초등부터 대학교까지 배움의 갈증을 온전히 해소할 수 있는 중단 없는 교육체계를 완성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평생학습 도시 양산이 나아갈 길입니다.”
황선정 회장은 인터뷰 내내 어르신들의 성취를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70세의 나이에 백세학당 1호 대학을 졸업하고 석사과정까지 진학하고자 하는 제자의 사례를 들려주는 그녀의 눈빛에서 양산 문해 교육의 밝은 미래를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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