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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나 에세이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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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참 빠르다. 벌써 연말이라니. 진부한 표현일지라도 십이월을 이 문장만큼 잘 표현하기도 어려운 듯하다. 흔히 세월이 나이대에 맞게 흐른다고 한다. 십 대는 시속 10km, 이십 대는 시속 20km, 삼십 대는 시속 30km. 사십 대가 되고 보니 세월이 40km가 아니라 곱절로 흘러가는 느낌이다. 어쩜 이다지도 빠를까 싶다.
올 한 해를 어떻게 보냈나 돌아보려 한다. 그냥 이렇게 머릿속 기억으로 되돌려보는 건 한계가 있기도 하거니와 제대로 떠올려지지도 않기에 사진첩의 기록을 다시 꺼내보았다. 사진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다양한 경험으로 알차고 즐거운 한 해를 보냈다. 내심 뿌듯하다.
먼저 풍성한 ‘관람’을 했다. 부산현대미술관 <백남준, 백남준, 그리고 백남준>, 대전시립미술관 <불멸의 화가 반 고흐>, 부산문화회관 <프리다 칼로 레플리카전>, 뮤지컬 <알라딘>, 벡스코 <2025 북앤콘텐츠페어>, 부산시립미술관 이우환 공간, 부산박물관 <거장의 비밀>을 봤다. 대전 전시를 제외하고 모두 부산에서 봤다. 이제는 멀리 가지 않아도 부산에서 이처럼 다채롭게 관람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더 많은 전시가 유치되기를 바란다.
더불어 여행과 캠핑도 많이 다녔다. 초여름 강원도 여행을 시작으로 사천, 부산 영도, 남해, 대구 동화사 그리고 곳곳의 캠핑장에서 보낸 나날. 좋았던 곳을 다시 찾기도 하고 새로운 장소로 설렘 가득 안고 떠난 곳도 있었다. 야심 차게 떠난 강원도 여행에서는 마지막 날, 예상치 못하게 엄마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혹여 크게 아프시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기도 했지만, 며칠 푹 쉬면서 차차 회복하셔서 천만다행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의미 있는 건 아빠의 십 주기다. 올해가 빠르게 흘렀다고 느끼는 게 무색할 만큼 십 년은 금방이었다. 아빠를 떠나보낸 슬픔은 고통이 되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었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그렇지만 난 혼자가 아니었다. 돌봐드려야 할 엄마가 계셨다. 엄마를 보살피고 챙기면서 하루하루 버티듯이 살다 보니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고. 어느덧 아빠를 생각하며 그립게 웃을 수 있는 세월이 흘렀다. 아빠를 향한 그리움은 갈수록 더욱 짙어질 테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꿋꿋이 씩씩하게 살아가 보려 한다.
핸드폰도 바꾸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핸드폰 바꾸는 게 특별한 일도 아닐 테지만 8년간 쓴 핸드폰을 뒤로하고 새것으로 바꾼다는 건 나에게 남다른 이벤트라 할 수 있다. 배터리 효율이 떨어져도 핸드폰을 덜 사용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몇 년을 더 버텼고, 카메라가 고장이 나도 대신 찍어 보내주는 언니가 있는 데다가 사진 뭐 그거 안 찍어도 그만이라 여기니 별로 불편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사용하기가 더 힘든 상태에 이르자 바꿀 수밖에 없었다. 신세계가 따로 없다. 한 번 충전으로 하루 종일 사용해도 배터리가 남고 사진을 찍지 않아도 그만이란 생각은 온데간데없이 아주 그냥 찰칵찰칵 잘도 찍어댄다.
변함없이 책도 꾸준히 읽었다. 후기를 간단하게 써서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읽은 책을 직접 찍어서 올리니 사진첩에 책사진도 많았다. 기록을 보면서 내가 책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책을 이렇게 좋아하게 될 줄 상상도 못했었고 가면 갈수록 더욱 좋아지고 있으니 그저 나 자신도 신기할 따름이다. 게다가 읽는 걸 넘어 “쓰기”까지 함께 하고 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쓰기를 그토록 싫어하다 못해 거부했던 때가 있었으니 말이다. 앞으로도 이 마음 변치 않고 계속되길 바란다.
최근 오랜만에 사진도 인화했다. 늘어나는 양만큼 언젠가 처분해야 할 대상이라 여겨지니 이제 그만해야겠다 싶었다. 한동안 핸드폰 사진첩 속 사진을 내버려두었다가 다른 사진을 인화할 일이 있어 내 사진을 보탰다. 엄마는 지난날을 회상하며 사진을 한 장 한 장 즐겁게 보셨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핸드폰이 없는 엄마를 위해서라도 당분간은 계속 인화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비록 먼 훗날 버려질지라도 말이다.
문득 드라마 <도깨비>의 대사가 떠오른다. “너와 함께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올해와 참으로 잘 어울린다. 이런 마음으로 한 해를 마무리 지을 수 있다는 건 복이고 감사한 일이다. 내년도 이보다 더 잘 살 수는 없을 것 같다. 더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이지 않을까. 다가오는 병오년(丙午年)도 올해만큼만이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