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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회복재단 경남본부장 박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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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중반경에 웅상면 명곡에 정착한 울산박씨 가문은 500여년간 이 고장을 지키는데 앞장서 왔고 근대 웅상이 도시화로 갈 수 있는 여건 조성에도 주도적 역할을 했다.
웅상이 도시화하는데 본 가문의 종원들이 제일 먼저 제안한 일들과 추진 과정에 주역을 맡아 주민들의 협조를 받아 이루어낸 일을 소개할까 한다.
1986년 5월 14일 회야댐이 준공되고 1986년 7월 2일 건설부 312호에 의거 회야댐 상류지역인 웅촌면 전역과 웅상면 상당 부분이 환경보존지역으로 지정되고 상류 전역을 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할 지정고시를 위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었다.
회야댐 상류 전역에는 어떠한 새로운 건축행위인가 접수도 받지 않았다. 기존 건물 증개축 허가서도 제출받지 않았다. 이 계획은 회야댐 공사 착공 이전부터 계획된 계획이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도 떠거운줄도 모르고 아무일도 없는것처럼 보고있는게 주민들의 정서였다.
해지 투쟁위원회를 결성하자는 제안도 하고 투쟁위원회를 결성하는 일에 앞장선이도 울산박씨 문중 종원이 하고 투쟁위원장도 종원이 추대되었다. 투쟁과정 상 엄청난 경비가 소요될 것이 예상되어 경비 모금을 하기로 결의하고 이에 가장 먼저 나선이도 본 가문의 종원이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도시계획과 환경과 관계있는 관청이란 관청과 정관계 인사, 사회단체에 문턱이 달토록 방문하고 건의서와 질의서도 수없이 제출했다. 사정도 많이 하고 싸우기도 많이 했다.
중앙정부청사 광장과 지역광장에서 많은 지역민들이 참여하여 여러차례 시위도 하고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 5여년간 사력을 다해 투쟁한 결과로 1991년 건설부로부터 환경보존지역 해지와 수원보호구역 지정계획 해지 통보를 받았다. 만약 그때 투쟁을 하지 않았다면 웅상전역은 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웅상은 전형적인 농촌모습을 지탱하고 웅상면으로 존속하였을 것이다.
1995년 봉우 태원아파트 일대 식수와 생활용수를 지하수를 굴착하여 사용했는데 주변에 계속 추가 아파트를 건립하면서 지하수를 굴착하다 보니 한정된 지하수는 고갈 상태가 되어 심각한 식수난이 발생해 갖은 방법을 연구하다 시명골 저수지 물을 아파트에 공급하기로 하고 시명골 저수지 물로 농사 짓는 절대농지 전부를 주거지역으로 지정해 줄 것을 요청하기로 하였다.
지방관청, 중앙관청, 청와대까지 오가며 식수 해결에 노력했다. 김혁규도지사께서는 시명골 저수지에 두차례 직접 방문하는 열정으로 임하셨고 당시 울산출신 강길부 건설부차관과 김태수 농수산부 차관도 많은 도움을 주셨고 힘이란 힘은 다 빌려 시명골저수지 물을 아파트에 공급하였고 시명골 몽리 농지 전부 다 주거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이 사업추진 제안도 주민 설득도 추진 과정상 중심 역할도 울산박씨 문중 종원이 했다.
본 사안으로 인하여 웅상정수장 설치가 계획보다 앞당기게 되었으며 시명골 저수지도 확장공사를 했다.
1997년 손유섭 시장 재임시 현 웅상출장소와 현 웅상문화체육센터 일대는 도시계획이 공원지로 확정되고 현 명동공원 울산박씨 문중선산 일대는 주거지역으로 확정되었다. 주거지역이 되면 토지가격이 엄청 상승되는 것은 확실하나 장구한 세월동안 모셔온 선영을 보존하고 우리 문중이 이 고장의 주인중 주인이란 확고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데
이 계기에 지역을 위해 헌신하는 일을 만들어 보자는 문중원들의 뜻에 의하여 두 지역의 도시계획을 변경요청 하기로 결의하고 변경 요청서 제출 전에 현 웅상출장소 일대의 토지소유자 장명식과 심완조를 만나 도시계획 변경이 되면 소유한 토지 면적중 10%를 양산시에 공용청사 용지로 기부채납할 것을 약속받고
도시계획 변경 요청을 하여 도시계획이 변경되어 웅상출장소 부지와 문화체육센터 부지를 기증받았다. 기증 받는 토지에 웅상출장소와 문화체육센터가 건립되었다. 이로 인하여 명동공원도 조성되었다. 기증받은 토지를 환가한다면 수백억원이 될 것이다. 기부해 주신분들도 고맙지만 기증할 수 있는 여건은 울산박씨 문중 종원들이 형성했다.
1994년 기장군이 양산에서 부산으로 편입을 위한 활동을 할 시기에 웅상도 웅상군으로 독립하여 부산 병합 추진을 위하여 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추진위원장과 임원을 추대하고 사무요원도 임명하고 사무실도 개소하였다. 당시 내무부장관이었던 최형우 장관께서 적극적인 후원을 해주시고 내무부 실무자들도 심혈을 기울였다.
기장군은 부산에 병합되고 웅상이 누락된 것은 지역출신 국회의원에게 웅상주민들이 제출한 청원서를 국회에 청원을 하지 않아 애석하게도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같은 시기에 같은 내용을 부산시의회에 제출한 청원서는 시의회 만장일치로 결의되었다. 부산시에서는 웅상과 부산이 통합되면 웅상을 부산시 인구증가 전진기지로 삼고 택지조성과 공단조성을 엄청 넓은 면적을 하고 전철도 조기착공 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만약 기장과 같이 부산에 병합되었다면 웅상군 인구는 20만명을 능가하는 자족도시가 되었을 것이다. 이 사업추진 중심 역할도 울산박씨 문중 종원들이 했다. 이외에도 울산박씨 종원들이 앞장서 한 일들이 많지만 차후 계속 기고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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