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안후이성의 아침은 바람보다 먼저 안개가 깨어난다. 지난 11월 11일 양산 천성산 원효암 성지순례에 나선 30여 명은 황산 국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특유의 투명한 공기와 저 멀리 겹겹이 이어지는 능선을 마주했다.
가을 끝자락의 황산은 평균 9~10도의 선선한 기온을 보였다. 공항에서 시내로 이어지는 길가에는 노란 은행잎과 맑은 강물이 여행의 서두를 차분히 열었다.
“황산은 중국 명산을 모두 합쳐도 따라오지 못한다”는 가이드의 말은 처음엔 과장처럼 들렸지만 여행이 이어질수록 그 의미를 서서히 실감하게 되었다.
구화산, 지장보살의 도량에서 마주한 정적
일행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지장보살 대불. 구화산 입구에서 산 전체를 굳어보는 대불은 ‘지장보살의 도량, 동방의 부처가 깃든 산’이라 구화산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구화산은 중국 불교 4대 명산(오대산·보타산·아미산·구화산) 가운데 하나로 지장보살 신앙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신라 성덕왕의 첫째 아들인 김교각 스님이 719년 이 산에 들어와 수행하며 사찰을 세우고 이곳에서 99세로 열반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 이후 구화산은 지장보살이 머무는 성지로 숭앙되었고 오늘날에도 수많은 순례객이 그 자취를 따라 산을 찾고 있다.
연꽃잎처럼 둘러선 99개의 봉우리가 장관을 이루는 구화산 관광지 정문, 구화신구 불도 광장에 있는 지장보살 대불은 산으로 들어서는 관문 역할을 한다.
높이 99m의 청동불상은 세계 최대 규모로 알려져 있으며, ‘99’라는 숫자는 김교각 스님이 99세에 열반한 나이와 구화산의 99개 봉우리를 동시에 상징한다. 불상 내부에는 8만여 개의 작은 불상 이 봉안되어 있어 지장보살의 무한한 자비를 공간 자체로 표현하고 있다.
이 대불은 1990년대 말부터 조성 계획이 시작되어 구화산을 찾는 순례객들에게 지장보살 신앙의 상징성을 분명히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건립되었고 현재는 구화산 순례의 첫 장면을 이루며 “지장보살은 동방 구화산에 상주한다”는 전설을 상징하는 대표적 장소로 자리잡았다.
대불을 향해 이어지는 계단길은 완만한 경사와 넓은 폭을 갖고 있어 순례객들이 자연스럽게 걸음을 늦추며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실제로 사람들은 중간중간 멈춰 참배를 했다. 계단을 오를수록 금빛 불상의 위용은 점점 커지며 시야 전체를 채웠고 양옆으로 늘어선 전각과 석등들은 산 입구에서 불상까지의 길을 하나의 의식 공간처럼 이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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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배경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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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은 호텔에서 조식 후 구화산 최고봉 천태산으로 향했다.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간 우리는 김교각 스님의 발자국이 남아 있는 고배경대로 향했다. 저 멀리 아침 햇살에 고배경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구화산 천태산 코스 상단에 자리한 고배경대는 해발 약 1,200m 지점에 위치한 주요 전망대로, 천태산 정상(1,342m)으로 오르는 길목에서 반드시 지나게 되는 핵심 지점이다. 이름은 ‘높은 비석이 서 있던 골짜기’, 혹은 ‘깊은 협곡 위에 세운 대(臺)’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진다.
무엇보다 이곳은 신라 왕자 출신의 김교각 스님(금교각)의 수행처로 알려져 더욱 의미가 깊다. 전승에 따르면 스님은 천태산에 오르며 이곳에서 지장경을 독송하고 좌선했다고 한다. 일부 기록에는 스님이 삼매에 들었을 때 “아래 산세가 연꽃처럼 피어올랐다”는 묘사가 남아 있으며, 이 때문에 고배경대는 오랜 세월 ‘스님의 숨이 가장 깊게 남은 자리’로 불려왔다.
고배경대의 풍경은 장엄함 그 자체다. 가파른 절벽과 능선이 열어놓은 전망대에서는 햇살이 산 능선을 타고 흘러내리는 모습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가이드는 “오늘은 날이 맑아서 산세가 모두 들어나지만 운해가 짙게 끼는 날이면 구름이 절벽 아래에서 거대한 파도처럼 솟구쳤다 내려앉는 장면이 펼쳐진다”고 설명했다. 아래로 굽어보면 봉우리들이 둥글게 말린 연꽃잎처럼 이어져 있어 구화산이 ‘연화의 산’이라 불리는 이유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러한 자연의 장관과 불교적 의미가 겹치며 고배경대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순례자들이 ‘내려놓음’을 경험하는 장소로 자리매김했다. 김교각 스님의 수행 흔적과 천태산 상단부의 고요, 끝없이 펼쳐지는 운해가 어우러지며 방문객들은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을 갖게 된다.
일행 중 한 분이 “여긴 전망대가 아니라, 마음이 쉬어 가는 자리 같네”라고 속삭이자 모두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배경대는 단순히 풍경을 보여주는 곳이 아니라 자신이 어디쯤 와 있는지 잠시 돌아보게 만드는 자리였다.
고배경대에서 잠시 숨을 고른 뒤 일행은 천태산 정상부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었다. 능선 너머로 햇빛이 조금씩 번지기 시작했고, 해발 1,342m 지점에 자리한 천태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구화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세워진 이 사찰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사방으로 열려 있는 산세 덕분에 마당에 서는 순간 거대한 연화세계가 한눈에 펼쳐지는 장관을 보여준다.
오늘처럼 시계가 좋은 날은 봉우리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보이지만 운해가 짙은 날이면 천태사 아래로 구름이 바다처럼 밀려올라 절이 구름 위에 떠 있는 풍경이 연출된다는 말 그대로 봉우리들은 둥글게 겹쳐진 연꽃잎처럼 이어져 있다. 구화산이 ‘연화의 산’이라 불리는 이유를 다시금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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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태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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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태사는 고배경대와 마찬가지로 김교각 스님의 수행과 깊은 관련이 있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고배경대를 지나 천태사에 오르는 길은 곧 스님의 수행길을 그대로 따르는 순례의 마무리로 여겨지며 많은 방문객이 이곳에서 잠시 멈춰 마음을 가다듬는다. 고요가 절 주변에 오래 머물고 있어, 누군가 발걸음을 멈추면 그 고요가 산 아래까지 잔물결처럼 퍼져 나가는 듯했다.
모노레일을 타고 내려온 일행은 김교각 스님이 한때 머물렀던 가장 오래되었다는 사찰을 둘러보아다. 수행처는 낡은 기와와 고요한 마당만으로도 깊은 정취를 자아냈다. 이어 일행은 무화스님의 등신불이 모셔져 있는 백세궁을 찾았다. 무화스님은 중국 당대 말기 구화산에서 수행한 고승으로 입적 후에도 몸이 부패하지 않고 온전한 모습으로 남았다고 전해진다. 이 때문에 살아 있는 지장보살의 몸이라 여겨지며 귀하게 모셔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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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세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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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궁에 들어섰을 때 향 냄새가 진동을 하고 사람들이 향을 피우면서 사방으로 참배를 하고 있었다. 지장신앙의 본산으로 불리는 구화산의 핵심 도량으로 구화산의 마음이 모이는 자리라고 하더니 등신불 앞에서 기도하는 순례객이 끊이지 않았다.
이후 일행은 구화산의 상징적 공간 중 하나인 오백나한전을 둘러보았다. 이 전각에는 부처의 제자이자 깨달음을 이룬 수행자를 상징하는 500명의 나한상이 봉안되어 있다. 나한들의 표정과 자세, 의복은 모두 다르게 조각되어 있어 수행자가 깨달음올 나아가는 여러 모습과 단계를 형상화한 공간으로 평가된다.
순례객들은 이곳에서 자신의 마음과 가장 닮은 얼굴을 찾아낸다고 알려져 있고 전각 내부의 조각들은 표정, 자세, 의복이 모두 달라 인간사의 희로애락을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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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해대협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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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날은 일행은 황산으로 향했다. 황산(黃山)은 1990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중국 대표 명산으로 기이한 소나무, 괴석, 운해, 온천 등 ‘네 가지 경이’로 오랜 세월 시인과 화가들의 사랑을 받아온 것이다.
아침 식사 후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 우리는 황산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서해대협곡을 먼저 둘러보았다. 운 좋게도 날씨가 맑아 협곡 전체의 윤곽이 선명하게 드러났고 절벽과 절벽이 겹겹이 맞물리는 장면에 일행들은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황산의 또 다른 봉우리인 시신봉은 소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지면서 동양화의 한 장면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풍경을 연출한다. 안개가 들고 나는 순간마다 바위의 형태가 달리 보이며, 봉우리의 이름처럼 ‘처음 마음이 믿음으로 바뀌는 자리’라는 의미를 품고 있었다.
길을 따라가다 보면 절벽 위를 지키고 서 있는 흑호송을 마주한다. 수령 700년이 넘는 이 명송은 거친 바람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서 있어 황산의 생명력과 인내를 상징하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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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필생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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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우리는 먼 눈빛으로 중국의 유명한 고전소설 <홍루몽>의 영화에 나오는 비래석을 조망했다.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듯한 15m 높이의 바위가 좁은 기반 위에 서 있는 모습은 자연이 만들어낸 기적 같은 풍경이었다. 바람이 돌에 부딪히는 소리까지 다르게 들릴 만큼 황산의 기암괴석을 대표하는 명소다.
이어 황산에서 두 번째로 높은 지점인 광명정도 바라보았다. 이곳은 특히 일출의 명소로 유명하다. 또한 붓끝 모양의 바위 위에 소나무 한 그루가 자라 ‘붓에서 꽃이 핀다’는 의미의 몽필생화 역시 황산의 절묘한 지형미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다가왔다.
배운정에서는 황산을 대표하는 기암절경이 한눈에 펼쳐졌다. 케이블카를 타고 하산하는 순간까지 황산은 끊임없이 새로운 풍경을 보여주며 일행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장면들은 다음날 귀국 비행기를 탈 때까지 눈 앞에서 떠나지 않았다.
“여행을 와서 결국은 자기에게 돌아간다”는 일행의 말처럼, 황산의 운해도 구화산의 사찰도 결국 우리 마음속에서 제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귀국 비행기 창밖으로 운해가 흐르고 있었다. 그 구름은 여행 중 우리가 마주한 고요와 사유, 자연이 건넨 침묵의 결을 품고 있었다. 여행은 끝났지만 구화산의 겹겹이 이어진 능선과 황산의 바람결은 오랫동안 마음속 풍경으로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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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태산에서 내려다 본 운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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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교각 스님를 만나러 온 어머니가 울었다는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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