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봄, 지역 예술단체 A대표는 시 문화예술 지원사업에 선정됐다. 반가움은 잠시였다. 총사업비의 10% 자부담을 맞추느라 제작비와 홍보비를 줄였고 모자란 금액은 사비로 메웠다.
“지원이라기보다 함께 내는 사업 같았습니다. 전시가 끝났는데 카드값이 남았어요.”
지원은 공공의 이름으로 시작했지만, 정산서 앞에서 개인의 지갑이 얇아졌다. 양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국 많은 지자체에서 반복되는 풍경이다.
행정의 논리는 분명하다. 시민 세금이 투입되는 만큼 책임성과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 실제로 다수의 공모사업은 ‘총사업비의 10% 이상 자부담’이라는 문구를 기본조건처럼 달고 나온다.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는 다르다. 특히 개인 작가나 소규모 단체에게 10%는 참여의 문턱으로 작동한다. “지원이 기회가 아니라 선별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지역문화 다양성은 그 지점에서 좁아진다.
“보탬e가 어려워요” 8월 13일, 양산문화재단 간담회
8월 13일 양산문화재단 간담회에서는 자부담과 함께 보조금 집행시스템(보탬e·e나라도움)의 난이도 문제가 집중 제기됐다.
한 예술인은 “다른 지역에서도 써봤지만, 보탬e 시스템이 너무 어렵다. 교육이 있어도 금방 잊히고 기관마다 요구 서류가 달라 혼란스럽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부산 등 광역과 비교해 지원액은 적고 자부담까지 요구돼 체감 격차가 크다”며 “경남 일부 시·군은 조례로 자부담을 완화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안다. 양산도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양산문화재단 관련자는 “국비 보조가 섞인 사업은 보탬e·e나라도움 사용이 의무인 반면, 재단 직영(시 직통 예산) 사업은 성격이 다릅니다. 보탬e·e나라도움 실습 교육을 10~11월 두 차례 이상 편성하고, 4층에 공유 오피스를 마련해 PC·복합기·스캐너를 갖추겠습니다. 정산이 막히면 직원이 옆자리에서 도울 겁니다” 라고 현장 동행형 지원을 약속했다.
또한 “4층에 창작지원공간을 조성해 4개 스튜디오 중 1곳은 공유 오피스로, 3곳은 입주작가 창작공간으로 운영하겠다”며 녹음실·미디어실·연습실의 세팅 완료를 ‘9월 말~10월 중순’ 목표로 했다. 현재 연습실은 활발하게 대관 중이고 미디어실도 완료, 녹음실은 11월 중 세팅 될 예정이다.
“예술인 대부분은 생업을 겸해 야간 교육이 필요합니다.”
교육 시간대에 관한 제안에 재단은 “낮·저녁 각각 한 차례씩 실습형 교육을 열겠다”고 답했다. 한 참석자는 “양산은 왜 타 지역보다 먼저 보탬e를 강제하느냐”고 물었고 재단은 “국비 보조금이 들어가는 사업은 전국 공통으로 의무”라며 “다만 규정·조례로 자부담 완화 여지가 있다면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간담회 발언은 두 가지 사실을 선명히 했다. 첫째, 정산 역량의 격차가 곧 참여 격차로 이어진다는 점. 둘째, 제도 문구를 당장 바꾸기 어렵다면 교육·공간·장비 같은 비금전적 지원으로 현장의 난도를 낮출 수 있다는 점이다.
“용역으로 전환하자” - 8월 27일, 추진위-문체부 간담회
8월 27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는 ‘보조금법 개정 및 예술인을 위한 지원법 제정 추진위원회-문화체육관광부’ 간담회가 열렸다. 현장 조사 사례를 바탕으로 제도 개선의 큰 방향이 논의됐다.
핵심은 지원 방식의 전환이다. 보조금 대신 ‘예술용역’ 계약을 도입해 예술활동을 서비스로 명확히 규정하고, 예술용역 코드(예: 260-03)를 신설하자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적용 가능한 사업부터 시범 도입하고, 소액(2천만 원 이하) 수의계약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용역으로 전환될 경우 가족 간 거래 전면 불인정, 예치형 교부 관행 등 현장과 맞지 않는 요소가 줄고 예산 편성의 자율성이 커질 여지가 생긴다. 다만 보조금 체계에서 용역 체계로 넘어가려면 중간 수행주체(2차 보조사업자) 설계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추진위와 문체부는 9월 중 추가 논의를 예고했으나 현재까지 구체적인 발표나 제도 개정 사실은 공개되지 않았다.
간담회에서는 이 밖에 자부담비 폐지 검토, 회계비용 의무화 폐지 검토, 소송·처벌 이전 단계의 중재기관(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예술인신문고)의 실질 가동, 중앙–지방 집행 기준의 정합성 확보도 논의됐다. “경미한 오류에 대해서까지 환수·제재부가금·5년 제한 등 강력 처벌이 이어지는 구조는 개선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10%’의 그림자와, 양산이 선택할 것들자부담은 행정의 언어로는 ‘책임’이지만, 예술의 언어로는 ‘무게’다. 특히 개인·소규모 단체에게 10%는 작품 그 자체가 아닌 정산의 문턱으로 다가온다. “작품보다 서류를 더 오래 만들었다”는 탄식은 드물지 않다. 같은 ‘지원’이어도 어느 사업은 자부담 면제, 어느 사업은 엄격한 의무로 나뉘며 같은 지역 안에서도 체감은 다르다. 그 불균형을 메우지 못하면 지역문화의 다양성은 서서히 말라간다.
양산이 선택해야 할 길은 분명하다. 지원의 본뜻은 행정의 절차가 아니라 예술의 호흡 속에 있다. 자부담 10%의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예술가가 온전히 창작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다. 행정이 책임을 나누자고 말한다면, 이제는 예술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내어줄 때다. 지원의 무게를 덜어낼 때 양산의 문화예술은 비로소 지역의 품 안에서 자라날 것이다.
첫째, 자부담 10%의 일률 규정을 재검토해야 한다. 청년·신진·소규모 단체에는 단계적 면제·감면을 적용하고, 노동·창작시간의 현물 인정 범위를 넓히자. “지원금이라 쓰고 재능기부라 읽는” 역설을 줄이는 일이다.
둘째, ‘예술용역’ 시범사업을 도입하자. 공연·전시·교육 프로그램 일부를 용역발주로 전환해 정산 간소화와 예산 자율성을 체감하게 하자. 양산이 먼저 길을 열면 제도는 현실을 따라온다.
셋째, 정산 교육을 상시·실습화하자. 재단 약속대로 야간·주말 실습형 교육을 정례화하고 공유 오피스를 항시 가동하자. 표준 예산서와 증빙 목록을 공개해,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먼저 보여줄 필요가 있다.
넷째, 사전–중간–사후 3단 컨설팅으로 구조를 바꾸자. 회계교육을 ‘사후 적발’이 아닌 사전안내·중간 점검 중심으로 옮기면 실수는 줄고 신뢰는 쌓인다.
다섯째, 현장 협의체의 상설화다. 재단–예술인–전문가가 분기별로 만나 ‘창작·지원 라운드테이블’을 운영하면, 규정은 현실을 배우고 현실은 제도의 속도를 이끌 수 있다.
행정은 자부담을 ‘책임’이라 부른다. 그러나 현장은 그것을 ‘짐’이라 느낀다. 공공의 돈이 예술의 숨을 살리려면 그 숨을 얕게 만드는 돌멩이부터 치워야 한다. 시의 예산이 예술의 씨앗이라면 자부담은 그 씨앗 위의 돌멩이다. 돌멩이를 걷어낼수록 싹은 곧고 잎은 쑥쑥 자랄 것이다. 이제 지원의 뜻을 다시 묻자. 그리고 양산부터 답하자. 양산이 걸어야 할 길은 행정의 길이 아니라 예술이 살아 숨 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