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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양산문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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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제 삶을 정리해 준 힘이었습니다. 가성비로 따지면 제일 낮은 일이지만, 결국 저를 붙잡아 준 것이 글이었어요.”
양산문인협회 김영희 회장은 농업을 전공했고 이후 사회복지를 공부했다. 그런 만큼 그 생활의 현장이 글쓰기의 출발점이 되었다.
1980년대 초, 농민들이 정책의 모순 속에서 피해를 보는 모습을 보며 그는 펜을 들었다. ‘새농민’, ‘농민신문’, ‘축산진흥’ 등 농민 잡지에 글을 투고했고 부산일보 독자투고를 이어가며 목소리를 넓혔다.
그는 “농민들은 다 알지만 말할 수 없는 사실들을 제가 대신 썼습니다. 기자들이 기사화해 주면서 기록의 힘을 알게 되었지요”라고 회상한다.
그 시작은 문학적 야심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글은 점점 그를 더 큰 무대로 이끌었다. 국제신문 논픽션 당선, KBS <아침마당> 출연이 이어졌고 결국 2001년 <문학21> 신인상을 받으면서 정식으로 문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글을 “꾸미지 않고 말하듯 쓰는 글”이라고 정의한다. “누구든 한 번 읽으면 이해할 수 있는 글, 생활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제 문학의 출발점”이라는 말 속에서 그의 문학관이 드러난다.
김 회장은 문학을 통해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고 말한다. 글쓰기가 생활을 정리하고 사물을 새롭게 바라보게 했기 때문이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제 삶을 정리할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글쓰기는 결국 제 존재를 확인하는 일이었어요.”
학교 시절 백일장에 등 떠밀려 나가 상을 받기도 했지만 그는 오랫동안 스스로를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수익도 크지 않고 남는 것도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럼에도 글을 놓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글을 통해 자신을 지탱하고, 타인과 연결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21년 지부장을 맡은 뒤 그는 개인의 문학 활동을 넘어 지역 문학 공동체를 위해 힘을 쏟고 있다. 가장 큰 보람은 회원들이 책을 낼 수 있도록 돕는 일이었다. 마침 지역 예술인 지원 기금이 제도화되자 그는 회원들에게 적극적으로 안내하고 지원을 권했다. 그 결과 불과 몇 년 사이 회원 대부분이 단행본을 출간하는 성과를 거뒀다.
또한 버스승강장에 회원들의 시를 게시해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문학을 접하게 했고, 코로나 시기에는 각종 공모 심사에 회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그는 “회원들이 저자로 성장하고,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느꼈다”고 말한다.
양산문인협회는 1990년대부터 전국백일장과 시화전과 예술제 참여를 통해 양산 문학의 외연을 넓혀왔다.
김 회장은 이러한 활동을 “흩어졌다 사라지는 동아리와 달리 30년이상 넘게 이어온 연속성”이라고 평가한다. “시민과 함께 문학을 나누고, 지역 문학인들에게 등단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 협회의 존재 이유”라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시민백일장을 잠정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참가자 수가 줄고, 예산 대비 효과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관이 주최하고 문협이 주관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산은 효율적으로 쓰이고, 시민은 체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심사와 운영을 맡아 재능 기부할 수 있습니다.”
“글쓰기는 결국 자신을 지탱해 주는 힘이 됩니다.”
김 회장은 “문학은 누군가의 삶을 기록하는 일”이라며 “시민이 직접 참여하고, 청년이 문학의 미래를 이어갈 수 있도록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희 회장은 후배 문인들에게 꾸준함을 당부한다. “한 권 내기가 힘들지, 두 권은 쉽습니다. 꾸준히 쓰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만의 길이 보입니다.” 그는 문학을 전공하지 않아도, 생활 속 문제의식에서 출발해도 된다고 말한다.
“저도 농업 현장에서 글을 시작했습니다. 글쓰기는 결국 자신을 지탱해 주는 힘이 됩니다. 신진 문인들이 용기를 내고, 시민들이 일상에서 문학을 가깝게 누리길 바랍니다.”
농민의 삶을 기록하는 일에서 시작해, 이제는 지역 문학 공동체의 버팀목이 된 김영희 회장. 그의 40년 문학 여정은 생활에서 길어 올린 작은 기록들이 모여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과 지역 문단을 지탱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