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주의 고전과 세태]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일체의 형이상학과 우상에서 벗어난 한 야생 인간의 분투기
윤현주 전 부산일보 논설위원
웅상뉴스 기자 / jun28258@gmail.com 입력 : 2025년 0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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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현주 전 부산일보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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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1957)의 '그리스인 조르바'는 삶이 시든 배춧잎처럼 맥이 빠지고 관념의 환상에 사로잡힐 때면 펼쳐 보며 새로운 에너지를 얻게 되는 책이다.
소설은 일인칭 화자 ‘나’와 뱃사람 조르바가 그리스 항구도시 피레에프스 카페에서 우연히 만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는 소위 먹물이다. 한때 사회주의 공동체를 꿈꾸며 지적 만행을 감행해 온 지식인. 조르바는 그런 나를 ‘펜대 운전자’라고 조롱한다. 나와는 정반대로 조르바는 인생 통틀어 책이라곤 딱 한 권 읽은 일자 무식꾼. 그러나 산전수전 공중전을 거치며 온몸으로 지혜를 체득한 야생의 ‘인생 운전자’다.
크레타섬 시골 마을에 도착한 뒤 우리는 오르탕스 부인이 운영하는 호텔로 찾아간다. 퇴물 카바레 여가수지만 한때 4대 강대국 제독들을 자신의 배 위에 올려놓고 희롱했던 역전의 여전사. 천하의 바람둥이 조르바가 그냥 지나칠 순 없지. 조르바는 오르탕스 부인이 가장 원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그런 사람이 되어주며, 가장 빛났던 시절의 모습을 되찾게 해 준다. 오르탕스 부인은 ‘할배’ 조르바의 수컷 매력에 풍덩 빠지고 만다.
조르바는 단순한 바람둥이가 아니다. 성적 대상물로서만이 아닌, 성이 다른 인간으로서의 여자에 대한 호기심과 헌신, 그것이 조르바식 사랑법이다.
조르바와 함께 하는 일상은 놀라움의 연속. 조르바는 모든 사물을 매일 처음 보는 듯 대한다. 툭 차버린 돌멩이가 구르는 것을 보고도 조르바는 “사면에서 돌멩이가 다시 생명을 얻었다”며 감탄한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서 나무와 바다와 풀과 새를 보고도 “이 기적은, 이 신비는 뭐란 말인가”라며 놀라워한다. 매사에 감흥을 잃고 새로운 자극을 찾아 나서는 현대인에게선 보기 힘든 감수성의 소유자다. 조르바는 학교 문 앞에도 가 보지 못했고 머리는 지식의 세례를 받은 일이 없었지만 마음이 열려 있고 가슴은 원시적인 배짱으로 잔뜩 부풀어 있다. 우리는 복잡하고 난해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도 조르바는 칼로 자르듯, 쉽게 풀어내는 기술이 탁월하다. 석수, 광부, 행상, 옹기장이, 비정규 전투 요원, 호박씨 장수, 대장장이, 밀수꾼….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온갖 풍상을 경험한 조르바. 그는 슬플 땐 춤을 추고, 기쁠 땐 산투르를 켠다. 춤추거나 악기를 켜고 있을 때, 조르바는 우주와 온전히 일체를 이룬 무당 같다.
조르바를 보고 있으면 나(소설 속)의 인생은 한갓 낭비에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배운 것, 내가 보고 들은 것을 깡그리 지우고 조르바라는 학교에 들어가 위대한 진짜 알파벳을 배우고 싶다는 욕구가 솟기도 한다. 조르바는 내 안에서 떨고 있는 추상적인 관념에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살아 있는 육체를 부여했던 것이다.
두 사람이 수도원에 찾아갔을 때, 조용한 심야에 총소리가 난다. 데메트리오 신부가 동성애를 즐기던 젊은 수도승을 살해한 것. 주교가 입을 막으려고 잠옷 바람으로 달려온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귀신처럼 알아챈 조르바는 주교를 골려준다. “꼬마 신부님, 겁 먹었구료. 형씨, 우리와 같이 있습시다. 우리는 땡중이 아니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소.” 주교와 수도원에 대한 조르바의 조롱은 사실 작가 카잔차키스의 종교관을 반영한 것이다. 그는 니체의 지적 영향을 받았으며 그리스도교의 위선과 엄숙주의에 대해 거침없는 비판을 가했다. 이 바람에 그리스정교로부터 파문당했으며, 사후 그의 시신은 본토 아테네에 매장되지 못하고 고향 크레타의 이라클리온으로 옮겨져 묻혔다.
갈탄광산이 파산하면서 두 사람은 헤어진다. 5년쯤 지났을 때, 세르비아 한 마을의 교장으로부터 조르바의 부음을 전하는 편지가 내게 왔다. 조르바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본 교장은 조르바가 창가에 서서, 웃고 웃으면서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했다고 전했다. 죽음 앞에서도 당당했던 우리의 조르바.
카잔차키스는 자유와 자기 해방에 대한 목마름을 3단계 투쟁으로 요약했다. 즉, 압제자 터키로부터 해방을 쟁취하기 위한 1단계 투쟁, 우리 내부의 터키라고 할 수 있는 무지, 악의, 공포 같은 모든 형이상학적 추상으로부터의 해방을 쟁취하기 위한 2단계 투쟁, 우리가 섬기는 중에 우상이 되어버린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을 위한 3단계 투쟁이 그것이다.(번역가 이윤기)
카잔차키스가 생전에 마련해 놓은 묘비명은 이렇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아무런 욕망이 없고 두려워함이 없는 게 곧 자유의 길이라는 얘기이다. |
웅상뉴스 기자 / jun28258@gmail.com  입력 : 2025년 0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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