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역사기획] 강진 전라병영성, 군사와 상업의 교차로
성벽·해자·홍교, 하멜의 기록까지… 지역 정체성과 세계사의 만남
김경희 기자 / 입력 : 2025년 09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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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전라병영성 동문 옆 병영 홍교. 1730년 문무관 배전석제가 감독해 쌓은 아치형 석교로, 여름이면 배롱꽃과 어우러져 고즈넉한 풍경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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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강진군 병영면 성내리. 이곳은 한때 전라도와 제주를 총괄하던 군사 요충지였고 지금은 ‘전라병영성’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옛 이름은 탐진(耽津). 탐진강을 끼고 번성했던 강진은 오늘날 인구 5만 명 남짓, 인구 소멸 지역으로 분류될 만큼 쇠퇴했지만, 병영성 일대에는 여전히 수백 년 세월을 버텨낸 성벽과 다리, 나무와 마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1417년(태종 17년), 고려 말 무신 출신 마천목 장군은 광주에 있던 전라병영을 강진으로 옮기고 성을 쌓았다. 이로써 강진 병영면은 전라도와 제주를 아우르는 53주 6진의 군사 지휘 본영이 되었고,
이후 500여 년간 전라 지역 방위의 중심지로 기능했다. 성벽은 크고 작은 돌을 맞물려 쌓는 협축기법을 활용해 견고함을 더했고, 해자·함정·치성 같은 방어 시설을 갖춰 장기간 전투에도 대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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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배전, 객사, 동헌, 군관청사들이 자리했던 성안에서 오래된 나무가 홀로 묵묵히 세월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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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은 성문 앞 땅을 깊게 파서 적이 빠져나갈 수 없도록 만든 구덩이로 돌과 나무를 깔아 함정을 위장했고 치성은 성벽에서 돌출된 보강벽이다. 이는 성에 접근한 적을 측면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고안됐다.
해자로 성벽 바깥을 따라 11~17m 간격으로 판 연못으로 물을 채워 적의 침입을 지연시켰다. 이 시설들은 단순히 성을 지키는 장치가 아니라 병영성이 얼마나 철저하게 군사 요새로 설계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성곽에 오르면 돌담 곳곳에 이끼와 덩굴이 드리워져 세월의 무게를 실감케 한다. 성곽 밖으로는 해자가 둘러져 있고, 안쪽 평지에는 병사들이 진을 쳤던 자리가 고요히 남아 있다. 성벽 끝자락에 서면 과거 군사들이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주시했을 넓은 시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병영은 단순한 군사 거점이 아니었다. 북쪽에는 개성상인, 남쪽에는 병영상인’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강진 병영은 상업의 중심지였다. 성안에서는 군수품 거래와 세금 징수가 이루어졌고, 성 밖 장터에는 전국 각지의 물자가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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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 문화도 독특하게 발달했다. 빠르게 먹을 수 있는 강진 국밥, 강진만의 해산물로 만든 싱싱한 요리, 손님 대접에 빠지지 않는 돼지 불고기 등 성 안팎에서는 교역과 장사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군대 주둔으로 자연스럽게 큰 마을이 형성되었고 군수품 조달과 세곡 관리가 병행되었다.
오늘날에도 병영면을 걷다 보면, 오래된 은행나무가 그 세월을 증언한다. 성동리 은행나무(800년, 높이 32m)는 마을의 풍년과 평안을 기원하는 제사의 중심이었고 하멜이 강진에 머물던 17세기에도 우뚝 서 있었다.
1663년 네덜란드인 하멜은 제주에서 포로가 된 뒤 강진에 이송되어 7년간 머물렀다. 그는 『하멜표류기』에 병영성 일대를 기록으로 남겼고 후대에는 “하멜 후손설”까지 회자되었다.
병영면 성내리의 은행나무도 그의 글 속에 언급되어 있다. 오늘날 병영성 맞은편에 세워진 하멜기념관은 그 흔적을 기리는 장소다. 이 일화는 병영성이 단순한 군사 도시가 아니라, 세계와 만났던 장소였음을 보여준다.
성 동편에 자리한 병영 홍교는 1730년(영조 6년), 문무관 배전석제가 감독해 축조한 아치형 석교다. 무지개처럼 휘어진 다리는 크고 작은 돌을 정교하게 맞물려 쌓아 올려 만든 것으로 300년 세월에도 견고함을 잃지 않았다. 아치 구조가 만들어내는 곡선은 미학적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다리 아래로는 맑은 물길이 흐른다. 붉게 피어난 배롱꽃이 다리와 어우러져 과거 군사 요충지의 흔적과 현재 마을의 일상과 겹쳐져 고요하고 한적한 풍취를 만든다.
지금의 병영성은 고즈넉한 산책로이자 마을의 일상 공간이다. 성곽 위는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가 되었고 홍교 옆에서는 여행객이 사진을 남긴다. 한때 배전, 객사, 동헌, 군관청사들이 자리했던 성안은 이제 모두 사라지고 한가운데 오래된 나무가 묵묵히 세월을 지키고 있다.
탐방객 휴식과 조망 공간으로 지어진 병영루에 올라서면 병영면 시가지와 탐진강 들판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그 시선 속으로 군사와 상업, 삶과 신앙이 교차하던 기억이 스며든다.
강진군 병영면에 남은 전라병영성은 오늘 우리에게 묻는다. “사라져가는 것들 속에서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역사적 유산은 단순한 돌과 흙이 아니라, 인간의 생존과 공동체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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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0년 된 은행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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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기자 /  입력 : 2025년 09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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