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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세상] 미숙한 나를 키우는 맛에 산다

정영나 에세이 글쓴이
웅상뉴스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25년 04월 22일
나는 말하는 데 있어 두려움이 상당히 큰 사람이다. 어릴 적에 겪은 한 사건 때문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산수 문제에 대한 답을 틀리게 말했다고 선생님께 엄청나게 혼이 났다. 말이 혼이 난 것이지 그건 마치 인격모독이었다. 친구들이 다 보는 앞에서 험상궂은 얼굴로 눈을 부라리며 나를 윽박질렀다.

 이 정도로 끝났으면 상처받지 않았을까. 화에 분을 못 이긴 선생님은 나를 발길질로 넘어뜨렸다.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이 산수 문제 틀린 게 그렇게 화가 날 일인지 3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 이 일을 겪은 나는 비참과 굴욕의 뜻을 똑똑히 알게 됐고 트라우마가 생겼다.

마음의 상처는 오랜 시간 동안 나를 힘들게 했다. 학창 시절에는 질문을 많이 하는 선생님의 수업 시간이 나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학교에 다니지 않을 수는 없으니 내가 걸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지만 그렇다고 그 바람대로 나만 쏙쏙 피해 갈 리는 만무하지 않은가. 피할 도리가 없으니 그런 시간을 대비하기 위해 철저하게 예습해도 아무짝에 쓸모가 없었다. 질문받는 그 순간이면 머릿속이 하얘지고 온몸이 얼어붙어 버리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끝내 대답하지 못해서 교실 맨 뒤에 서 있었던 적도 있다. 몹시 창피했고 이런 나 자신이 너무 싫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전공수업에서 조별 과제에 발표가 있으면 양해를 구해서 되도록 하지 않는 쪽이었다. GM이라는 호텔 공부 동아리에서는 돌아가면서 무조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발표 수업을 해야 했을 때도 극도의 긴장감에 말이 잘 나오지 않아 무척 애를 먹었고 그래서 많이도 버벅댔던 기억이 있다. 

정영나 에세이 글쓴이

이렇게 대학을 졸업하면 발표와는 영영 이별일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부산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어린이 독서지도사> 수업을 들으면서 다시 발표에 대한 압박이 시작됐다. 조별 과제가 주를 이뤘고 발표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참 난감했다. 처음에는 함께하는 언니에게 양해를 구해서 나 대신 발표를 부탁했지만, 또다시 그럴 순 없어서 한 번을 하긴 했는데 그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말에 대한 두려움은 낯선 환경을 꺼리게 했다. 아주 오랫동안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자리를 굳이 찾지 않았다. 그렇게 나를 꽁꽁 가두면서 살아왔다. 그러다 몇 년 전, 도서관에서 독서 회원을 모집한다는 포스터를 봤다. 가슴이 설렜고 그래서 신청했다. 

문제는 그 뒤부터였다. 새로운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해야 하는데 과연 내가 말을 할 수 있으려나 싶었다. 온갖 걱정에 신청을 취소해야 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지만, 결론은 부딪혀 보기로 했다. 첫 만남에 다시 절실히 깨달았다. 역시나였다.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는데 가슴이 쿵쾅거리고 목소리가 덜덜 떨리는 게 나는 여전했다. 오래된 고질병처럼 좀처럼 나아지질 않았다.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증상이 자연스레 완화되는 게 전혀 아니었다.

새로운 독서 모임에 가입하고 몇 개월 뒤, 그림책 만들기 수업을 들었다. 낯선 사람을 만나는 자리가 두렵긴 했어도 그림책을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첫 만남에서 인사를 나누는 자리가 여전히 긴장되긴 했지만, 독서 모임 때만큼은 아니었다. 그리고 1년 뒤에 글을 쓰는 강좌도 신청해서 들었다.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자기소개하기는 역시나 빠지지 않아 떨리긴 했어도 이전만큼은 아니었다. 낯선 자리를 회피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그런 환경의 경험치를 늘릴수록 점차 익숙해지고 덜 긴장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최근에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말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 덜어낼 수 있었다. 몇 년 전 극도의 긴장감을 느꼈던 독서 모임에서 이번 4월 모임을 진행했다. 스스로가 선택한 일이었다. 작년까지는 회장님이 진행하셨는데 올해부터는 책을 추천한 사람이 진행까지 해보기로 하는 방식으로 바꾸었고 이에 동조하고자 나도 해보겠다고 했다. 

매달 만나는 회원들일지라도 참여자와 진행자는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3월 모임이 끝나고 이번 달 모임이 있기 한 달 동안 고민이 많았다.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고 무슨 자료를 준비하면 좋을지를 내도록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오로지 나였다. 적절한 준비와 꾸준한 연습이 원활한 진행을 보장해 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말하는 데 있어서 두려움은 여전한데, 긴장하고 떨리는 마음에 우왕좌왕하지는 않을지, 그런 상황에 직면했을 때 말을 버벅대지는 않을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얼마 전에 모임이 있었다. 진행자 자리에 앉으니 역시나 긴장됐다. 떨리긴 했어도 처음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전해져오는 낯설고 무감한 공기가 아닌 오래 봐온 사람들과의 편안하고 따스한 기운으로 경직된 몸과 마음은 차차 누그러졌다. 이런 분위기 덕분에 모임을 별 탈 없이 잘 이끌어 갈 수 있었다. 용기를 내어 스스로가 한 선택이지만 물러서지 않은 나를 칭찬해 주고 싶다. 또 한 발짝 걸어 나간 기분이다. 나는 한 발 내딛는 게 상당히 느린 사람인지라 다음 한 걸음이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제자리걸음은 아닐 것이다.

솔직히 트라우마를 극복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주변에 이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억지로 이겨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줄 것이다. 다만 타인의 충고가 아닌 자신이 생각하기에 조금 나아지길 바란다면 조금씩 시도는 해보았으면 좋겠다. 나 역시 긴 세월 동안 나를 괴롭게 한 트라우마가 너무 싫었다. 그러나 이제는 한 걸음씩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물론 아직도 이런 불안이 종종 나를 힘들게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나를 성장시켜 주는 자양분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부족하고 서툰 내가 차츰차츰 채워지고 자라고 있는 느낌이다. 비로소 내 안의 해묵은 상처가 치유되고 있는 듯하다. 성숙해지는 기쁨을 즐기는 요즘이 참 좋다. 앞날의 내가 기대된다.
웅상뉴스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25년 04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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