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이하며
김 대 부 웅상신문 시민위원
웅상뉴스 기자 / jun28258@gmail.com 입력 : 2020년 0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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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 부 웅상신문 시민위원 | 올해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는 해이다. 이 항쟁은 1980년 5월 18일에서 27일까지 전라남도 및 광주 시민들이 군사독재와 통치에 반대하고, 계엄령 철폐, 조속한 민주 정부 수립,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의 퇴진, 김대중 석방 등을 요구하며 벌인 민주화운동이다.
개략해 보면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에 의해 시해됨으로써 박정희 정권이 막을 내리고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에 의한 실권 없는 불안한 정국을 틈타 신군부세력인 전두환, 노태우 등이 제2군사 쿠데타(12.12사태)를 일으켰다.
무력으로 군부와 정치권을 장악한 신군부세력은 비상계엄령을 다시 선포하고 유신체제에 이어 민주헌정을 파괴하고 언론을 통제하고 민주정치 지도자들을 투옥하는 등 군사통치 시대로 돌아가려 하자 국민들의 불만은 극에 달하였으며, 이는 전국적인 저항 운동으로 지속·확산되었다. 5월 18일 휴교령이 내려진 전남대를 들어가려 항의하던 학생 200여명이 계엄군에 구타당했으며 계엄군은 점차 광주시내에 까지 강력한 시위진압을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시위가담여부와 상관없이 무고한 시민들에게까지 무차별적인 폭행을 가했다. 5월 19일 사전에 시위 진압훈련을 받은 공수부대는 '화려한 휴가'라는 이름의 작전명 하에 살육으로까지 이어져 수많은 시민이 희생되었거나 실종, 투옥되었다.
계엄군의 무차별 집단발포로 인해 수많은 사상자 및 부상자들이 속출하였으며, 이 집단발포 이후 결국 무력항쟁으로 변하였으며, 분노한 무장한 시민들은 시민군으로 불렀으며 이 항쟁은 5월 27일 탱크를 앞세운 대규모 진압군이 전남도청과 시내를 장악함으로써 끝이 났다.
시위 기간 동안 광주봉쇄와 언론보도 통제로 외부에 즉각 전해지지 않았으나 광주 시내를 탈출한 일부 사람들과 외신에 의해 그 소식들이 조금씩 전해졌다. 당시 군부의 언론통제로 독일 제1공영방송 ARD의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에 의해 처음으로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그 참상이 세계에 알려졌다. 5.18은 국가에 반대하려고 일어난 게 아니라, 전두환이 내란으로 집권하는 과정에서 전두환 내란세력을 상대로 맞서 싸운 항쟁이었다
. 실제로 5.18 사진을 검색해보면 수많은 태극기가 나오며, 증언과 촬영물을 토대로 보면 수많은 애국가가 나온다. 보수 논객 조갑제도 태극기를 손에 쥐고 "김일성과 북괴는 오판 말라"는 시민들의 구호를 근거로 광주 민주화운동은 반공 민주화운동이라고 증언했다.
하지만 안타까운 현실은 반공이데올로기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세력의 의도에 의해 아직도 광주민주화운동을 북한 특수부대나 남한 내 간첩의 소행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5.18민주화운동은 이후 1987년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5년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제정으로 희생자에게 하는 보상 및 희생자 묘역 성역화가 이뤄졌고, 1997년에 '5.18민주화운동'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해 1997년부터 대한민국 정부 주관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도 여전히 제대로 된 평가와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각종 근거없는 왜곡과 날조로 덧입힌 거짓 정보들로 5.18의 순수성과 의미를 폄훼하고 모욕하는 일이 자행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민주화 노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위대한 국민적 민주화운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부 지역에서 벌어진 특정집단의 폭동, 무장 항거 수준으로 깍아 내리려는 시도도 여전하다.
40년의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아직도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최초 발포 명령자, 사망자와 실종자 수, 헬기 기관총 사격, 암매장 등의 핵심 의혹들은 아직 드러나지 않는 등 광주의 진실 찾기는 여전히 미해결 상태다.
문대통령은 18일 5·18민주화 운동 40주년을 맞아 “발포 명령자 규명과 계엄군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 헬기 사격의 진실과 은폐·조작 의혹과 같은 국가폭력의 진상은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고 하며 아울러 “진실이 하나씩 세상에 드러날수록 마음속 응어리가 하나씩 풀리고, 우리는 그만큼 더 용서와 화해의 길로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며 왜곡과 폄훼는 더 이상 설 길이 없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시점에서 우려되는 것은 갈수록 5·18 민주화운동을 기념하고 되새기는 일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라는 격언이 있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역사가 중요한 이유는 과거·현재·미래는 단절된 것이 아니라 연속적이며, 과거는 단순히 지나가 버린 것이 아니라 살아 있고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큰 계기가 되었던 5.18 민주화운동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숭고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그 의의를 널리 알려 과거와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열어 나가야 할 것이다. |
웅상뉴스 기자 / jun28258@gmail.com  입력 : 2020년 0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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