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24-03-29 오전 01:20:32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뉴스 > 이야기가 있는 풍경

<특별 기고> ‘민화, 지금 가장 현대적인 미술’

윤정아 / 화실 오봉숲 원장
웅상뉴스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19년 04월 21일
민화 개념과 범주 모르는 사람 많아 궁중회화, 공필화도 민화로 통용, 문제점
자유로움, 투박함,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한 매력 현대미술가, 순진무구한 미적 취향의 민화에 매료

ⓒ 웅상뉴스(웅상신문)
한국 민화의 인기가 날이 갈수록 더해가고 있다.
국내는 물론, 미국을 비롯한 서구 유럽인들도 민화의 매력에 눈을 떼지 못한다.
이는 국내 화단에서 민화 인구가 급격한 양적 팽창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고, 해외에서의 활발한 전시와 더불어 ‘CHAKGADO'(책가도)라는 고유명사가 생겨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프랑스와 미국 등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들어와 민화를 배워서 각 국에 보급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렇듯 민화의 인기는 절정을 달리고 있으며, 그 인기도는 향 후 10여년은 충분히 더 갈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그러나 급격한 양적 팽창으로 인한 폐단도 없지 않다.
민화가 과연 무엇인지 개념과 범주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민화 활동을 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잘못된 지식과 정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전파되고 있는 점이 그것이다.
민화전시회에 가보면 중국의 공필화가 걸려있다든지, 화려한 채색의 궁중회화를 민화로 알고 있으며, 이름이 있는 전문작가의 그림마저 민화로 착각해서 그것을 가르치고 배우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 <십장생도>
ⓒ 웅상뉴스(웅상신문)
민화 - 채색화의 한 분야

민화는 한국 彩色畵의 한 분야로 18~19세기 조선 후기에 유행했던 民藝的인 그림이다. 한국회화사의 主流에서 벗어났지만 한국인의 주거공간과 생활에서 반드시 있어야 했던 모든 한국인의 그림이며, 한국인의 솔직한 정서가 美的으로 발전한 것이 민화다.
사전적 의미로 민화는 “생활공간의 장식을 위해 ‘서민화가가 그린 그림’으로써 조선시대 도화서의 화원이나 이름 있는 전문 화가, 혹은 문인화가가 그린 그림과 구별되며 주로 辟邪, 祈福 혹은 집안의 치장과 감상을 위해 제작 된 그림을 일컫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도화서의 화원이 그린 그림과 구별 된다'는 문장을 눈여겨 볼 만 한데, 오늘날 민화계는 도화서의 화원이 그린 궁정회화는 물론, 이름 있는 전문화가가 그렸던 그림까지 민화라는 카테고리 안에 포함시키고 있어서 개념과 범주에 혼선을 빚고 있다.
이러한 오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예로, 1983년 호암미술관 개관 기념 《민화걸작전》에 <일월오봉도>가 전시되었고, 그로부터 20년 뒤인 2004년 국립춘천박물관에서 개최한 《궁중장식화전》에도 <일월오봉도>가 출품되었다. 두 그림 모두 궁중에서 제작 된 것이지만 하나는 민화로, 다른 하나는 궁중장식화로 분류되었다.
 
↑↑ <일월오봉도>
ⓒ 웅상뉴스(웅상신문)
<일월오봉도>뿐만 아니라 <일월반도도>, <해반도도> 등 수많은 궁중채색화가 오늘날 민화로 불리우고 있다. 즉 ‘채색화=민화’라고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20세기 한국미술사 연구에서 채색화에 관한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결과로써 채색화의 구분이 모호했던 것으로 사료된다. 민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채색화를 먼저 알아야 하며, 한국 채색화는 크게 불화(종교화), 궁정회화, 세화, 민화 4가지로 나뉜다.
불화 - 불교회화로써, 크고 작은 불교사찰에서 예배와 수양을 위해 필요했던 그림이다. 현재 100점 가량 현존하고 있는 고려불화는 왕실과 귀족들의 후원으로 제작되었으며, 이들은 극도로 우아하고 화려한 종교회화를 제작하기 위해서 비용을 아끼지 않았다.

↑↑ <수월관음도>
ⓒ 웅상뉴스(웅상신문)
궁중회화 - 궁중화가들은 궁중과 왕실의 그림 수요에 임하였다. 한국의 마지막 왕조인 조선시대에도 이전의 왕조와 마찬가지로 궁중화가들이 있어서 의식과 행사, 장식을 위한 그림을 그렸다. 화원이라고 불린 직업화가들은 예조 소속의 도화서에서 봉직하였다. 이들은 화가 지망생들 중에서 엄선된 매우 재능 있고 잘 훈련된 화가들인데, 도화서에 들어오면 생도로서 더 많은 훈련을 받았다. 도화서 取才때에는 다섯 개의 과목 중에서 선택하여 평가를 받았는데, 첫째 대나무, 둘째 산수, 셋째 인물, 넷째 영모, 다섯째 화훼의 순으로 점수에 차등이 있었다.

세화 - 한국에서는 군주가 歲時에 길상의 주제를 담은 그림을 신하들에게 하사하는 것이 오랜 관습이었다. 
예를 들어 고려 말의 이색(1328~1396)은 왕으로부터 십장생을 그린 10폭 병품을 받은 일에 대해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는 이 병품을 세화라고 불렀다 이색, 『목은집』,, 詩稿, 권12:Kumja Paik Kim, Hopes and As, p.15; 김용권, 『(민화의 원류) 조선시대 세화』 (서울: 학연사, 2008), pp.101-102
조선초기의 사대부 성현(1439~1504)도 1502년 새해를 맞아 십장생 병풍을 왕으로부터 받았는데 이를 세화라고 불렀다.

민화 - 민화는 매년 설날 도화서에서 화원들이 그린 세화의 표본을 궁문에 붙이면 떠돌이 화가와 상업화가들이 운집해서 본떠갔다고 한다. 홍석모, 『동국세시기』, pp. 24-33
이러한 관행이 있었기에 궁중에서 선호되었던 세화의 주제가 평민들에게 세화를 그려주었던 화가들 사이에서도 유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의 화가들 가운데 예술적 재능은 타고났으나 정식 훈련을 받을 기회가 없었던 이들은 떠돌이 화가나 상업화가가 되었다. 이들은 마을에서 마을로 떠돌며 고객들의 집에 머물면서 그림을 그려주었다. 그들은 또한 그림을 판매하는 상인들에게 작품을 공급하기도 하였다. 떠돌이 화가와 상업화가들은 화원과 자비대령화원만큼이나 큰 수요가 있었다.
 
ⓒ 웅상뉴스(웅상신문)  

한국의 민화는 서민뿐만 아니라 상류계층 사람들까지 즐겼던 ‘국민의 그림’임에 틀림없다. 다만 순수 서민이 그린 서민회화와 궁중의 직업 화가들이 그린 궁정회화는 구분되는 것이 마땅하다.
민화의 범주 속에 궁정회화를 포함시키는 것은 명칭과도 부합되지 않는다. 민화 중에 궁정회화를 모방하여 그린 것이 많으므로 다소 엇비슷해 보이는 것들이 많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용된 안료, 작품의 크기, 형태모사, 정확하고 치밀한 필선을 구사한 궁정회화와 자유분방하고 개성적인 민화의 그것들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민화 용어의 시작과 개념 오류
‘민화’라는 용어는 일본의 美學者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에 의해 처음 쓰여졌다. 민속적인 소박한 아름다움에 심취해 있던 야나기가 ‘민화’라는 카테고리를 창출한 것은 1927년 6월 간행한 ‘민예총서’ 제1편 「잡기의 아름다움」의 ‘삽화 해설’로 거슬러 올라간다. 야나기는 일본의 ‘도로에’를 염두에 두고 ‘소박하고도 무심한 듯 애완 할 수 밖에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하며, ‘오츠에’, ‘에마’, ‘도로에’와 같은 공예에 가까운 일본의 그림들을 포괄하기 위해 민화라는 개념을 창출하고 민화 작가의 특색으로 ‘無名性’을 꼽았다. 야나기가 설정한 일본 민화의 범주 속에는 도시의 서민 회화인 ‘우키요에’는 제외되었다. 같은 서민의 그림이더라도 우키요에는 무명의 화가가 아니라 당시 인기가 높은 화가들이 제작했기 때문에 민화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야나기의 민화 개념 창출 이후 몇 가지 문제점이 제기되었는데 첫째, 한국은 물론 일본과 서양의 수장가들은 ‘無名’의 다채로운 한국의 채색화를 모두 ‘민화’로 분류하는 실수를 범했다. 궁정회화를 민화의 범주 속에 포함시킨 것이다. 궁정회화도 민화처럼 그림 안에 작가의 이름이 밝혀있지 않고, 서로 비슷한 채색화이고, 주제도 공통된 것이 많다. 궁정회화는 작품 속에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은 관례일 뿐, 무명성과 전혀 상관이 없다. 오히려 궁정회화를 그린 내력을 적은 의궤나 궁정 기록을 통해 김홍도, 김득신 등 당시 궁중화원들이 궁정회화의 제작에 참여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민화 용어의 외국어 번역에 관한 점이다.
민화가 우리나라에서는 ‘민족회화’ 혹은 ‘한국인의 회화’라는 넓은 의미로 해석 될 수 있는데 반하여 외국어로 번역하기가 다소 모호하다는 점이다. 민화는 영어로 folk painting으로 번역되는데 이는 ‘재능은 있으되 정식 훈련을 받지 않은 화가들이 서민을 위해 제작한 그림’의 유형을 뜻한다. 한국의 채색화, 특히 궁정회화를 처음 접하는 서양의 박물관 관람자나 예술 애호가들은 그림에 곧바로 빠져들다가 이 그림이 folk painting이라고 소개되면 그들의 관심은 곧 시들해진다고 한다. 서양에서는 folk painting이라고 하면 ‘강도 높은 훈련을 받은 직업 화가들의 작품을 포함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극히 잘 훈련된 화가의 솜씨를 드러내는 풍부한 색감의 한국 궁중회화가 어째서 민간회화로 분류되는지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의 혼란은 사실 정당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민화로 서양에 소개된 한국 회화의 대다수가 사실은 궁중회화였기 때문이다.
‘민화’라는 용어는 그 연원을 추적해 보면 19세기 미술계에 불어 닥친 미술 대중화 운동의 역사적 배경 속에서 산출된 것으로, 단순히 야나기 개인의 아이디어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다. 영국에서 시작된 대중화 운동에서 일본의 민예운동까지 세계의 문화사적 맥락속에서 탄생한 것이 ‘민화’인 것이다.
따라서 ‘민화’라는 용어는 日人 야나기가 처음 사용한 것이기는 하지만, 시대적 흐름속에서 발생한 용어이고, 현재까지 대중들의 공감을 가장 많이 얻고 있는 용어임이 틀림없다.
현 민화계에서는 민화 용어의 외국어 번역은 한국발음식의 'MINWHA'로 표기하자는 주장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민화, 가장 현대적인 미술
민화에서 民은 어원상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보다는 ‘대중적인’이란 의미로, 기관이나 공적인 것과는 대조되는, 사적인 영역임을 암시한다.
사실, 민화라는 용어는 과거의 권위적인 문화(박물관 및 대학)에서는 경시되었지만 지금은 민족주의자뿐 아니라 현대 화가들 사이에서 높은 인정 가치를 받고 있다.
민화는 ‘장식화’로 분류할 수 있지만, 최소한 ‘吉祥(상서로운 가치)’이 내포되어 있어야 한다.
한국 민화의 특성 중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이 즉흥성, 투박함, 가식 없고 천진무구한 어린아이와 같은 자유로움이다. 이는 화가들이 독자적 창의성과 개성을 표현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민화가 전 세계 관람자들에게 호소력을 지니게 된 것은 이와 같은 그들의 표현성 때문이다.
현대미술을 감상하는 사람들은 인습적인 규범을 파괴하고 어린아이의 순진무구함을 강조했던 서양미술을 통해 그들의 미학적 취향을 길렀던 만큼 한국 민화에 보이는 그러한 현대성에 매료되었다. 그들은 한국의 민화를 보면서, 말년에 들어서 6세의 어린아이처럼 그리고자 했고 또 그렇게 그렸던 피카소(1881~1973)와 같은 예술가를 떠올렸다.
결국, 민화는 현대미술가들을 비롯한, 국내외 민화애호가들이 인정하는 독창적이고 현대적인 미술로 꼽히고 있다.


.
웅상뉴스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19년 04월 21일
- Copyrights ⓒ웅상뉴스(웅상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포토뉴스
생활 정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의학과 .. 
부동산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 영향으로 .. 
사람들
“지역의 역량을 일깨우고 성장시키는.. 
단체
2024년 갑진년(甲辰年) 새해를 .. 
따뜻한 이웃
지난 1일 웅상노인복지관(관장 이명.. 
지역행사 일정
많이 본 뉴스
웅상 사람 위급 시 죽음 각오해야..
웅상사람들 위급 시, 현실적 생명 보존 어렵다..
김태호, 불법 혼탁선거 즉각 중단 촉구..
김부겸, 웅상중앙병원 당차원...김두관, 실제로 인수 제안 거론..
양산시, 동부양산 시민들과 응급응료대책 방안 강구..
“양산에 큰 책임감, 모든 걸 걸고 온몸을 던질 터”..
웅상신문, 2024년 3월부터 `아트살롱` 갤러리 운영..
포토뉴스/ 3.1절을 맞아 회야강을 달리다..
양산시 관내 신설 학교 교명 찾는다..
[수요드로잉] 회야강의 봄..
신문사 소개 고충처리인제도 기사제보 제휴문의 광고문의 개인정보취급 편집규약 윤리강령 청소년보호정책 구독신청 찾아오는 길
상호: 웅상뉴스(웅상신문) / Tel: 055-365-2211~2,364-8585 / Fax : 055-912-2213
발행인·편집인 : 웅상신문(주) / mail: news2022@hanmail.net, news2015@naver.com
주소: 경상남도 양산시 덕계 2길 5-21 207호, (기장)부산시 기장군 월평1길 7, 1층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남, 아00194 인터넷신문 등록일:2012년 7월 11일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철근
Copyright ⓒ 웅상뉴스(웅상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
방문자수
어제 방문자 수 : 4,001
오늘 방문자 수 : 435
총 방문자 수 : 22,768,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