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상의 역사를 말하다(11)/용당고개에 얽힌 어제와 오늘
-우시산국의 영역 확보, 웅상시민의 생명수인 관로 연결-
웅상뉴스 기자 / 입력 : 2015년 09월 10일
용당고개는 웅상 용당마을이 있는 배읍봉(배일봉) 남쪽 방향에 있는 고개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양읍 내광리와 경계를 접해 경상남도에서도 양산시에서도 가장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차량 2대가 간신히 교차할 수 있는 2차선 포장도로가 개설되어 있는 고개 형태는 1980년경 울산시에서 울주군 경계지점까지 완공했고 양산시 구간 도로는 양산시와 경남도에서 1995년경 2차선 도로를 개설했다. 이런 현상은 비단 용당고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웅상당촌과 울주군 웅촌면 와지마을 간의 도로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김혁규 경상남도 도지사와 손유섭 양산시장 재임 시 주민들의 아우성을 이기지 못해 겨우 이룬 것이다. 단적인 예지만 경상남도와 양산시가 웅상을 하찮은 지역으로 내팽개쳐왔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할 수 있는 사안이다. 대운산 태산준령으로 웅상 동쪽방향 전역이 병풍형태로 이루어져 있는데 유일하게 낮은 용당고개를 통해 통행로가 열려 생활권과 혈연관계가 형성되고 역사와 전통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우시산국의 영역이 회야강변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용당고개도 우시산국의 영역을 이루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웅상 서편 쪽 전역이 천성산으로 둘러 있는데 어느 한곳도 낮은 고개가 없어 상북, 하북은 경계를 접해도 교류가 없었던 것이다. 우불산성과 마주보이는 배일봉 정상에는 고대에 쌓았던 성터 흔적이 있다. 이 성을 쌓은 목적은 회야강과 온양고개 용당고개를 통해 침투해 오는 적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건립되었을 것이다. 고대 때에도 군사를 주둔시켜야 할 정도로 중요한 통행로였고 6.25동란 전후에는 인민군이 땅굴을 파고 주둔했던 지역이기도 하다. 옛날 왕래한 고갯길은 배일봉 마을을 지나 배일봉 남쪽 6부 능선을 따라 오고간 장고갯길이다. 장고개라는 명칭은 남창장과 서창장을 오가는 고갯길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6.25동란 때 군인들이 장비로 현재 다니는 길 쪽으로 길의 형태를 만들어 다녔다. 서창장에서 남창과의 거리는 30리 길이 된다, 이 먼 길을 이웃에 가는 마음으로 오고간 것이다. 빈 몸으로 왕래하기에도 가파른 고갯길을 무거운 장짐을 지고이고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을까. 장에 가는 목적은 장꺼리를 사고팔기 위한 것은 부수적 목적이고 그리운 이를 만날 수 있다는 설레임이 우선이었다. 웅상에서 사용하는 말 중엔 술에 만취된 사람을 보면 “오늘 남창장날이가?” 한다. 이 말은 웅상사람들이 남창장에 가기만 하면 반가운 이가 너무많아 한잔하다 보면 거나하게 취해 뒤뚱걸음으로 용당고개를 넘어와 생겨난 말이다. 남창장에서 취한 상태에서 넘어오는 중간지점의 교동마을에도 주막집이 있었고 내광,중광마을 경계지점에 벌바우 주막이 있어 추가로 더 한 잔 하다보면 만취할 수밖에 없었다. 먼 길을 오고가는 시간도 장시간이 소요되었지만 막걸리도 한 잔 나누고 소피국이라도 한 그릇 나누다 보면 새벽부터 집을 나서도 저물어야만 돌아올 수 있었다. 남창장 선지국은 전국으로 알려진 명물음식이다. 대운산에는 1960년경까지 호랑이가 살았다고 한다. 대운산에서 호랑이를 만났다는 사람이 아직까지 여러 명 생존해 있고 전설같은 실제 이야기도 전해져 오고 있다. 어느 날 대운산에 시태바리(소에 질매를 채워 나무 풀을 운반해오는 방법)를 하러 갔는데, 호랑이가 송아지를 물고 간 일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어미 소 고삐를 풀어 놓았고 어미 소는 미칠 듯이 호랑이를 따라가 송아지를 데리고 왔다는 이야기다. 용당고개에도 1960년경까지 호랑이가 나타났고 무서워서 여러 명이 어울려 다녔다고 한다. 6.25사변 전후에는 공비들이 두려워 용당고개 넘어 다니는 것을 꺼려했고 혹시 갈 일이 있으면 온양고개로 둘러 다니기도 했다. 옛 농가에서는 만석꾼도 천석꾼도 소가 반 재물 이라고 할 정도로 소를 귀하게 여기고 경제적 비중도 높았다. 이런 귀중한 가족 같은 소를 팔고 오다 화적때를 만나 소 판 돈을 탈취된 예도 있고 송아지를 팔고 오다가 큰 소를 만들어야겠다는 부질없는 욕심으로 도박장으로 향했다가 빈손으로 용당고개를 넘어 온 이도 있었다. 1970년 초반까지만 해도 보릿고개를 벗어나지 못한 이들이 농촌의 절대 다수 가정사정이다. 마을마다 몇 집을 제외하면 장이쌀(현물고리채)에 의존하여 생명을 부지해 온 처지이었다. 비싼 장이쌀이라도 꿀 수 있는 처지는 다행이었고 장이쌀도 꿀 수 없는 가정도 많았다. 우리 옛말에 찔래꽃 필 때는 딸내미(딸자식)가 아무리 보고 싶고 친정엄마가 아무리 보고 싶어도 가지 말라는 말은 끼니 떨어져 굶고 있을지도 모르는 춘궁기이기 때문이다. 용당고개 동서로 시집을 보낸 친정 엄마의 마음은 당신도 끼니 걱정을 하면서 딸끼니 걱정하는 게 한이 되어 돈 될 만한 것은 줄 것이 없어 보릿쌀 몇 됫박과 고구마, 감자 풋성귀 보따리에 무겁도록 싸 딸에게 고갯길에 넘어갈 때 이어 보낸다. 그때의 어미 마음은 얼마나 미어지도록 아프고 애간장이 녹았으면, 고갯길 넘어 오는 딸내미 아픔이 얼마나 뼈에 사무쳤으면 용당고개 넘어오며 흘린 그 땀방울은 바로 모녀지간의 피눈물이 변해 고여 있는 고개라고 말하겠는가. 1900년 초반경까지 서창과 남창을 오고간 대로는 (큰길)용당고개를 넘어 내광 옥수골에서 외광 노랑골 솔밭골 등너머 가래점골을 지나 남창으로 다녔다. 가래점골 인근에는 지금은 농지로 사용되고 있지만 옛날에는 큰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마을이 있었던 게 확실한 것은 인근 농지에는 도요지흔적과 재련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고 집단 고분군도 있다. 지명 역시 ‘등너머’라 지은 것은 마을 등너머라고해서 지은 것이고 점골이라는 지명은 재련했던 곳이라해서 이르는 지명이다. 집단 고분이 이루어 있다는 것은 고대 때부터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일이다. 고분군은 양지 바른 곳에 이루어져 있다. 웅상 명동 고분군, 삼호 고분군, 웅촌대대 고분군들이 다 양지바른 곳에 이루어져 있고 장례방법이 같은 방법이라 세대도 비슷하고 고분군을 조성했던 사람들도 웅상, 웅촌, 온양 사람들이 협력해 조성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래점골 고분군 근처에는 첩첩산중임에도 완만한 평지를 이룬 넓은 분지형태로 되어있고 하루 종일 볕이 드는 곳이라 사람살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지금 교동마을에 사는 이일출씨라는 이는 자기 조부님이 별감이라는 직분을 가졌던 분으로 학식도 풍부하고 가정사정도 넉넉하여 가래점골에 살면서 오고가는 이들에게 숙식제공도 하고 글줄이나 아는 선비들과 담소를 나누는 걸로 일생을 보냈다는 사실로 대단한 자부심으로 이야길 자주하는 걸 들었다. 이 근처는 당시 교통요충지로 생활용구를 제작하고 매매했던 상점도 있었을 것이다. 이곳에서 유래된 옹기기술이 남창 옹기마을로 전수되어 해마다 연례행사로 하는 옹기엑스포로 행사를 할수 있을 정도의 전통을 계승했을 것이다. 용당고개 동쪽지역에 거주하다가 웅상에 이주해와 집성을 이루거나 세대를 이루어 사는 문중도 많다. 그 문중을 열거하면 김해김씨, 고령김씨, 광주노씨, 밀양박씨, 분성배씨, 평산신씨, 광주안씨, 순흥안씨, 남원양씨, 강릉유씨, 영월엄씨, 재령이씨, 학성이씨, 연안차씨, 경주최씨 등의 문중이다. 용당에서 용당고개를 넘어 남창 현재 길의 형태는 산길 논두렁 밭두렁 길을 일정치하 때 내광에서 남창까지 우마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을 개설하여 여러 차례 확장, 보수하여 현재의 길이 되었다. 용당고개는 웅상시민의 생명수를 전달받는 관로가 연결되어 있다. 낙동강 취수장에서 취수한 물을 웅상지역을 지나 회야댐으로 유입된다. 온양 중광마을 가압장에서 내광 가압장까지 수원을 밀어올려 용당고개 물탱크를 거쳐 장흥에 위치한 정수장으로 유입되어 정수시설을 거쳐 웅상시민들에게 공급된다. 현재 용당고개 동서로 왕래하는 교통량은 출퇴근 시간에는 승용차들의 홍수로 대도시 교통량을 방불케한다. 대중교통편은 울산시 태화역에서 남창을 거쳐 용당마을까지 507번 버스가 하루 5회 운행되고 있다. 내광까지는 오래전부터 운행되었으나 용당까지는 2013년부터 연장 운행되고 있다. 주민들의 희망연장구간은 웅상농협하나로마트 주차장까지 연장하기로 하고 웅상농협 안용우 조합장에게 주차장 이용허락까지 받고 추진하였으나 기존 버스노선 회사들의 강력한 반대로 용당까지만 운행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도 울산시장, 울주군수, 양산시장과 관계자들의 많은 노고가 있었다. 정말 감사드린다. 하지만 용당고개너머 지역과 경제권이 하나되기 위해서는 덕계까지 연장운행 되어야 한다. 용당고개 너머 내광에서는 산업단지(이하: 산단)조성 인가를 받아 추진 중이다. 토지감정을 하고 보상 추진 중이나 수용된 토지소유자들은 정당한 가격으로 감정이 되지 않았다고 불평하며 보상에 원만하게 응해주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인근지역의 발전을 위해서는 산단이 조속하게 이루어지는 게 좋은 것으로 예상한다. 산단을 조성하면 산단에 종사하는 종업원이 2000여명이 넘을 것이라 예상된다. 용당에서 산단입구까지 4차선도로를 국비로 개설할 계획이고 용당고개 중간지점에는 지하터널도로를 개설할 계획이라 한다. 7번 우회국도 자동차 전용도로가 2017년까지 완공계획을 가지고 용당고개 근처로 횡단하며 용당램프가 계획되어 있다. 산단진입도로와 연계하고 남창까지 교통량을 예상하고 용당램프를 이용하는 교통량을 예상할 때 램프로서는 교통량을 감당하기가 넘칠 것 같아 인터체인지로 확장되어야 한다. (KTX)울산역까지 기존도로를 확장개설하여 이용이 용이하도록 하고 울산장례식장 하늘공원의 위치는 울주군 삼동면에 위치해 있지만 양산시 하북면 웅상 경계지점에 위치해 만약에 대기오염이라도 발생한다면 양산시민들이 치명적인 피해를 보게 된다. 양산시는 울산시와 협력하여 용당고개 도로와 하늘공원간의 도로도 개설하고 양산시민들이 하늘공원을 이용하는데 울산시민들과 같은 수혜를 누릴 수 있는 방법도 협의 되어야 한다.
 |  | | ⓒ 웅상뉴스 | 시인 박극수 (현)웅상지 편집위원장 전 웅상농협 조합장 웅상주부합창 단장 천성산문학회 회장 |
웅상뉴스 기자 /  입력 : 2015년 09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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